[기자 아닌 척]한 번 써 보는 군대이야기-(4)사고뭉치

in kr •  7 years ago 

이럴 때 코인얘기 아닌 글도 좀 있어야... 하는 생각으로.


군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으라면 두번째에 꼽히는 일이 일병 때 있었다. 내가 친 사고였다.

당시 우리는 미군 군복을 동계, 하계 3벌씩 받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데 제대할 때 반납하는 건 두 벌. 부대원들은 훈련소에서 받은 한국군복도 있고 하니, 대부분 남는 한 벌은 기념품 삼아 집에다 갖다 놓곤 했다. 부대 내 군장점에서 별별 장식이며 '오바로크(계급장이나 명찰, 마크 따위를 군복에 박아 넣는 것)'를 달아서 가져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개념없는 일병이었다. 첫 외박 때 집에 가져가는 군복에 미군 병장 계급장을 달아서 가져가려고 했다. 당시에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선임 일병은 그 군복을 보고 부러워하며 주변에 다른 선임들에게 얘기도 했다. 제대한 지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이었다. 병장 때는 내 밑에 막내가 그렇게 한다면 얄밉고 좀 개념없게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당시엔 그게 대형 사고였다.

외박을 나갔는데 옆분대 병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복귀할 때 그 군복 그대로 갖고 들어오라"고 했다. 외박에서 돌아와보니 소대(한국군으로는 중대 규모)원 모두가 나를 무슨 탈영병 보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계급사칭, 군용물 밀반출 같은 혐의로 엄벌하기 위해 소대장과 부소대장에게 보고가 된 상태였다.

소대본부분대였던 나는 북쪽 근무 교대일에, 처음 만난 본부분대장에게 맞았다.

북쪽에 올라가 보니 마당에 내 위-그의 아래 모든 소대원들이 한줄로 서서 순서대로 본부분대장의 갈굼을 당하고 있었다. 본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전 소대원 갈굼을 마치고 들어온 분대장의 발길에 걷어채였다. 나중에 씻을 때 보니 명치 쪽에 워커 발자국이 나 있었다. 분대장은 상욕을 하면서 본부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을 내게 집어던졌다.

분대장이 한바탕 구타와 가혹행위를 끝내고 남쪽 부대로 내려갔다. 나와 북쪽에 남은 부분대장 차례가 돌아왔다. 내 사수이자 부분대장은 미치도록 머리가 좋은 악마로, 그가 제대한 뒤부터 내 군생활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유명한 대성동 대형 태극기 밑으로 불려갔다. 완전군장을 하고. 미군 완전군장엔 검나 무거운 방탄조끼가 포함돼 있다. 소총을 손등에 올린 채로 엎드려 뻗쳤다. 등에 멘 군장이 내려와 방탄헬멧을 눌렀다. 방탄헬멧 턱끈이 목을 졸랐다. 부분대장은 물을 한 대접 떠다 놓고 굴렸다. 나는 물을 마시면서 굴렀다. 5월의 땡볕에 죽을까봐 걱정됐나 보다. 물을 한 번 마신 뒤엔 스콰트를 시켰다. 말이 좋아 스콰트다.

두시간 쯤 굴렀나. 씻으라는 지시에 샤워장에 들어가니 머리부터 발끝, 군복부터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샤워장 앞에서 한 선임이 "지금이 아마 니 군생활에서 가장 힘든 시간일 것 같다"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북쪽 근무를 하면 매일 일과를 마감하며 분대원들이 한 데 모여 회의를 했다. 나는 그날 밤 회의에서 앞으로 나가 반성 연설을 했다. 갓 병장을 단 부분대장은 군복 팔뚝에 붙이는 왕병장 계급장을 내 이마에 붙이고 "이번 근무 내내 씻을 때만 빼고 이대로 붙이고 다니라"고 했다. 치욕스러웠다.

근무 내내 엄청난 갈굼을 당했다. 병장 왕계급장을 이마에 붙인 채로 눈 뜨자마자 3층 건물 빗자루질을 다 하고 사무실에 갔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은 부분대장이 얼굴에 대고 트림을 하며 "야 멍멍이 새키야. 나 존내 때리고 싶지? 덩치 보니 존내 팰 수 있겠네" 하면서 갈궜다. 뒤 돌아서 있을 때 정말로 까 버리려고 키보드를 들었다 그냥 내려놨다.

바로 그 북쪽근무 기간에 여친이 이메일로 이별을 통보했다. 제대 뒤에 알고 보니 복학생이랑 바람이 난 거였다. 하하

그 기간에 두 기수 아래 이병이 담배를 권했다. 그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취직 뒤 수습이 끝날 때까지 약 7년 간 담배를 피우다 말았다 했다. 피울 때는 하루에 한갑 반씩 피우고 안 피울 땐 입에도 안 댔다.

부분대장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야 하므로 여기선 이쯤 한다. 악마 같았던 분대장은 서울소재 4년제 법대를 졸업하고 광화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해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회사 근처에서 두어번 눈에 띄었다. YHR처럼 죽이고 싶진 않아서 그냥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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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이 글은 아내분께서는 읽으시면 안되는 글인건가요..?

흠.. 아내가 스팀을 안하기 때문에? ㅋㅋㅋㅋ

모두의 군생활에 조금씩다른 버젼으로 존재하죠 갈굼천재 악마와 나의 사고들

갈굼 천재 저 부분대장에 관해서 조만간 쓸 예정입니다. ㅋㅋㅋ

기자아닌척 실패하신듯. 생생한 현장 사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글입니다.... ㅋㅋㅋ

으핫... 기사를 이렇게 쓰면 데스크에서 대번에 칼질을...

악마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군요.
맞은 놈은 발뻗고 자도 때린 놈은 편히 못잔다고 그랬는데.. -_-;;

그것이 악마와 보통사람의 차이가 아닐까요 ㅋㅋㅋ

생생한 묘사가 잘 와닿는 글입니다..ㅠ 고생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홋카이도 잘 다녀왔습니다.

오랫동안 안보이셔서 찾아왔습니다. 얼른 돌아오세요 시호님 ㅎㅎ

ㅋㅋㅋ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ㅋㅋㅋ 오늘부터 후기 올리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