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x디즈니의 영화로 화제를 모은 [코코]를 보고 왔습니다.
픽사의 따뜻함에 디즈니의 인프라가 합쳐져서 높은 시너지가 뿜어져 나오더군요.
영상미는 불과 1년 전에 나온 디즈니의 영화 [모아나]보다 더 좋아졌고, 정성과 섬세함은 픽사의 전작 [인사이드아웃]보다 더 깊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성인도 보고 깊은 울림을 받는 심오한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가볍고 심심한 영화라는 평가도 일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스토리는 충분히 흡입력 있고 영상미와 사운드 역시 훌륭했으므로 저는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아래에서부터는 스포가 포함된 내용이 담겨있으니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엄마 왜 울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엄마가 흐느껴 우는 걸 처음으로 본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부모님을 대신해 무척 어릴 적의 나를 잠시 키워주기도 했던 은인이기도 했기에, 나에게 있어서도 그 감정이 무척 특별히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이후 잊혀질 때쯤 되면 죽음이란 문제는 항상 내 앞으로 다가오곤 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친구가 오열하는 모습을 봤고, 친했던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한 것이 있었다. 왜 사람은 잊고 지내다가도 타인의 마지막 소식이 전해지면 항상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억하는지를.
영화 [코코]는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한 해답을 상당히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코코]의 주인공 미구엘은 모종의 이유로 집안에서 음악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받는 소년으로 등장한다. 그의 고조할아버지가 고조할머니를 버리고 음악을 하러 가버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정을 함께 책임져야할 고조할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버렸으니 고조할머니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고조할머니는 신발 만드는 일로 가문을 일으켰고, 집안의 가훈은 암묵적으로
‘음악은 절대 하지 말고 대대로 신발 만드는 일을 하자’
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미구엘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타고난 친구였다는 것이다. 끼를 주체할 수 없는 미구엘은 마침내 멕시코의 축제 ‘망자의 날’에 열리는 음악 경연대회에 참석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당연히 할머니의 엄포와 부모님의 꾸지람으로 계획은 좌초되고 만다. 심지어 가지고 있던 기타조차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손에 의해 박살나게 된다. 크게 실망한 미구엘은 거리로 뛰쳐나가 패닉에 빠지지만 이윽고 아이디어를 짜낸다. 가족을 떠나 음악스타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의 고조할아버지 델라 크루즈의 봉안당에 있는 기타를 빼내 경연대회에 참석하기로!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구엘은 봉안당 관리자들에게 딱 걸려버렸고 그대로 잡혀갈 위기에 처해진다. 그런데 그 순간 조상의 가호라도 받은 것인지 미구엘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몸으로 변하게 된다. 미구엘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사전세계에서 사후세계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코코]에서 사후세계는 철저히 멕시코의 ‘망자의 날’을 계승한다. 이 날이 되면 멕시코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길을 꽃으로 이은 뒤, 해골분장을 한다고 전해지는데 영화에서도 이와 같은 세계관은 동일하다. 또한 이것이 묘사되는 과정에서 픽사x디즈니의 영상미는 역대 최고라 해도 좋을 만큼 빼어나니 기대를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미구엘은 사후세계에서 동트기 전에 조상의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는 몸이 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거기서 금방 고조할머니와 친척들을 만나 축복을 얻을 기회가 생기지만, 고조할머니가 축복의 조건에 ‘다시는 음악을 하지 말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바람에 미구엘은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고조할아버지 델라 크루즈. 미구엘은 그 과정에서 고조할아버지의 친구라는 헥터를 만나 이승에서 그의 사진을 걸어주어야 한다는 조건(이승에 사진이 없으면 망자의 날에 이승으로 갈 수 없으며, 기억이 전승되지 않으면 사후세계에서조차 사라지고 말기 때문)으로 델라 크루즈를 만나는 길을 안내 받는다. 그러나 고생 끝에 델라 크루즈를 만나보니 그는 헥터를 독살하고 그의 음악을 표절한 악당이었다. 더군다나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는 델라 크루즈가 아니라 헥터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따뜻한 가족영화를 주특기로 삼는 픽사답게 델라 크루즈는 영화 말미에 악행이 온 천하에 드러나며 쫓겨나게 되고, 가족들에게 배척받던 헥터는 그간의 오해를 풀고 화해한다. 헥터는 사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독살을 당하는 바람에 영영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상태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할 영화에 마지막 위기가 한 번 더 들이닥친다. 델라 크루즈와 싸우는 동안 헥터의 살아생전 사진이 없어져서 사후세계에서조차 그가 사라질 위험이 생긴 것이다. 빨리 사진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이미 동틀 녘이 다 됐기 때문에 결국 미구엘은 헥터의 사진이 없는 상태로 이승에 복귀하게 된다. 물론 이번엔 음악을 하지 말라는 조건이 붙지 않은 축복이었다.
영화의 이름이 [코코]인 이유는 이제 미구엘의 마지막 행보 10분에 드러난다. 집으로 돌아 온 미구엘은 기뻐할 틈도 없이 증조할머니인 ‘코코’에게로 달려간다. 코코의 기억이 쇠하면 사후세계에서도 헥터의 존재가 완전히 없어져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코는 이미 미구엘을 알아보기조차 힘든 고령의 할머니. 미구엘은 이 영화의 대표곡인 ‘Remember me’를 부르며 증조할머니의 기억을 유도한다. 코코는 그 음악을 듣고 자신의 아버지 헥터가 어릴 적 불러주던 Remember me가 떠올라 잠시 멀쩡한 정신을 되찾는다. 그리고는 그동안 간직해왔던 아버지의 사진을 꺼내 가족들 앞에서 그의 따스함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왜 픽사x디즈니는 이번 영화의 이름을 [코코]로 지은 걸까. 사실 극중 분량으로만 보면 미구엘이나 헥터가 압도적이었고, 코코는 전체 상영시간동안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목이 [코코]인 이유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고리가 코코를 통해 완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최초에 살아있는 사람들끼리의 공유물이며, 산 자가 죽은 자를 추억하여 그 다음 산 자에게 전승되어 이어진다. 사후세계를 차치하더라도 누군가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의식을 통하여 장례를 치르고 이승에서 잊혀질 자들을 추모한다. 설령 후대에 그 기억이 희석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타인의 마지막에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일각에서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이 나오고 있는 지점은 지나친 가족주의에 의거한다. 또한 나도 일정부분 그 의견에 동감한다. 젊은 세대가 보기에 이 영화는 전통적인 색채가 강해 보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가족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추억하는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해본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웰메이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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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yuk님 글보니 코코 보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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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픽사와 디즈니가 같이 만든 영화라니! 꼭 보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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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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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에 기반한점은 단점이 될수도 있겠지만
그걸 충분히 커버할수 있는 여러 뛰어난 점들이 많아보이는 작품이네요 ㅎㅎㅎ 꼭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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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 불호가 될 수도 있는 영화이긴 합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머지 부분에서 밸런스가 상당히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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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좋은 글인거 같은데 .. 못읽었습니다!! 어제 극장가서 예고편을 보며 색감부터 그림 하나하나 제게 깊은 인상을 심어줘서 꼭 보리라 다짐을 해서.. 스포가 담겨 있다는말에 ㅠ 아쉽지만 꼭 보고나서 다시 와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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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기대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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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꼭보고 싶습니다
정성스럽게 쓰신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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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족들과 여유있으실 때 한 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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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보다 더 깊어진 느낌이라니....
꼭 봐야겠네요 멋진글 잘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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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열심히한 티가 나더라구요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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