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보다연애] 사랑은 다시 태어나는 것

“사랑은, 둘이 있다는 후 사건적인 조건 아래서 이루어지는, 세계의 경험 또는 상황의 경험이다.”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는 사랑에 대해 정의한 말이다. 조금 어렵다면, ‘둘이 있다는 후 사건적인 조건’을 연애라고 생각하자. 바디우는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시작한 후에 벌어지는 상황의 경험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둘’이 있는 사건 후에 벌어지는 경험이 사랑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이 말은 그 ‘둘’의 조합이 바뀌면, 즉 그 둘이 각각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면 그 후에 벌어지는 상황의 경험도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사랑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선빈이 같은 장소에 갔지만 예전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새로운 상황의 경험을 한 것도 이해가 된다. ‘둘’의 조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한 번쯤은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너무나 익숙한 장소였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가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말이다. 선빈의 경험과 알랭 바디우의 통찰을 헤아리다보면 알게 된다. 연인이라는 ‘둘’이 존재하고 그 뒤에 일어나는 상황의 경험이 사랑이라면, 결국 모든 사랑은 첫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많은 연애를 했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둘의 조합이 바뀌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이다.

남자든 여자든 연애를 시작하면서, 상대도 그리고 나도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으면 하는 불가능한 일을 바랄 때가 있다. 과거의 상처, 추억, 흔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내 모습에서 옛 연인의 흔적을 찾고, 옛 연인과 행복한 기억을 나를 통해 복원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도, 불안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그건 이미 첫사랑이니까. 모든 사랑은 이미 첫사랑이다. 사랑은 마법 같은 것이라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랑을 확인하는 묘책, ‘변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단히 복잡 미묘한 감정이기에 종종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여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묘책이 있다. ‘사랑하면 사람이 변한다’는 진부해보이기까지 하는 사랑의 공식이 바로 그 묘책이다.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먼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되돌아보자. 분명 익숙한 음악이었는데 연인과 함께 들었을 때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들린 적이 있었던가? 수도 없이 갔던 장소인데, 연인과 함께 갔을 때 무언가 미묘하게 낯선 느낌이 피어오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예전과 분명하게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던가? 만약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랑이다. 사랑하면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다고 믿지만 자신이 예전과 변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연애를 하고 있지만 삶의 관성은 그대로라면, 그건 진짜 사랑과 연애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고 있다면서 다시 태어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그럴듯하게 사랑과 연애를 흉내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짜 사랑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변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변한 만큼 사랑하고 있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