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5] '비교하기'는 인간의 '본 투 비'일까?...식당에서 밥먹다 문득 든 생각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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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를 비롯한 회사 밀집 지역은 주말이 되면 밥먹을 식당이 없다.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설, 추석 등 국가 공휴일엔 골목골목이 적막함으로 가득 찬다.

이런 날 당직이 걸리면 난감하다. 고등학생처럼 도시락을 2개씩 싸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 회사 바로 앞에는 '연중무휴' 식당이 있다는 점이다. 메뉴도 5~6개로 다양한 편이라 골라잡을 수 있다.

매번 명절 당직이 걸리는 관계로,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때웠지만 저녁은 제대로 먹어야 했기에 연중무휴 식당을 찾았다.

해물된장찌개를 마구 흡입하고 있는데 자꾸만 오른쪽 왼쪽에서 꾸당꾸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피니 남자아이들이 팽이 모양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제부터 두 소년을 각각 A와 B로 칭하겠다.

내 오른편에 있는 소년 A는 엄마, 아빠, 두 명의 여동생과 함께 있다. 여동생들은 나란히 엄마 품에 기댄 채 잠들어 있다. A의 아빠와 엄마는 꽤나 심각한 얘기를 하는 모양인지 중간중간 언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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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표정의 A는 한 칸 옆 테이블에서 홀로 팽이만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왠지 모를 쓸쓸한 표정이 눈에 밟혔다.

고개를 돌려 소년 B의 테이블을 바라봤다. B는 엄마, 아빠, 남동생 한 명과 식사 중이다. 열심히 짜장면을 먹던 B는 A의 팽이 소리에 미어캣처럼 반응했다.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은 B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팽이를 꺼내 A가 있는 테이블 바로 옆 자리에서 팽이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게 쳐다보는 A. 그저 바라만 볼 뿐 별 반응이 없다.

A의 반응에 실망했던 것일까. B는 별안간 동생에게 달려가 가게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야, 우리집에 팽이 몇 개나 있지?"하고 말을 건다.

동생이 "10개?"하고 대꾸하자 B는 "아니야. 20개야"라고 즉답했다. 20개, 20개, 20개... 연달아 몇 번을 말하고 또 말했다. 마치 누굴 향해 들으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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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B는 동생이 가지고 있던 팽이까지 빼앗아 A의 옆에서 쌍팽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 A는 별안간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A가 B 옆을 스쳐지나갈 때 B는 또 다시 동생을 향해, 하지만 시선은 A에게 고정한 채 "우리 집에 팽이 20개 있지?"라고 외쳤다.

B의 태도가 어찌나 득의양양하던지 나도 모르게 꿀밤을 때려주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A는 오랜 침묵을 깨고 아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집에 가자"

A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와 엄마는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A는 테이블에 고개를 푹 박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 눈엔 A의 팽이나 B의 팽이나 별 차이도 없어 보였는데, 아마 두 개의 가격이 꽤 차이가 났던 모양일까?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내가 더 나음을 자랑하고, 이런 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데. 고작 10살이나 됐을까? 어째서 B는 A에게 저토록 '20개'를 강조하는가.

'같이 놀래?' 이 한 마디면 됐다. 설 연휴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남자아이와 팽이 돌리기를 하는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치욕감에 물들지 않아도 됐다.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을 무렵 두 소년의 테이블은 동시에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간절히 바랐다.

'제발 그 말 만은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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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비교를 통한 우월감을 즐기다가
점점 배려라는 걸 알아가는 것 아닐까요...ㅎㅎ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해간다면 참 좋겠네요..ㅎㅎ 결국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결론에 봉착하고 맙니다..

인간은 워낙 불완전하고 결핍이 많은 존재이기에 자꾸 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중요한 건 비교의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상대를 깔아내리고 우월감을 얻기 위한 비교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비교는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기 마련이죠. 그러나 비교를 통해 다른 이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자신에게 여유있는 부분을 덜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비교는 그다지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쓰다보니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자신이 가진 것을 무기 삼아 다른 아이를 기죽이려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져 이렇게 되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ㅎ 정성스러운 댓글 감사드리며 팔로우합니다ㅎ

사람들은 비교를 통해서 자아실현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기준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면 정말 좋을텐데요 ㅠㅠ

그나저나 어린이들까지 그러는 건 본능인가........?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본능인지 배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