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

in kr •  6 years ago  (edited)


불편하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이다. 감독이 의도한 바였다면 내가 잘 느낀 것일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이렇게 찝찝했던 감정을 느낀 건 오랜만인 것 같다. 독립 영화들은 대개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파수꾼'이 그랬고 '소셜포비아'가 그랬으며 '한공주'가 그랬다. 이번에 내가 본 불편함은 '박화영'이라는 아이의 삶이었다.

아이들은 주인공인 박화영을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에게서 버려진 화영이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며 큰 소리를 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야, 넌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그런 건 엄마가 다 카바 치는 거야,임마."



화영이가 아이들에게 매번 하는 말이다.




화영이는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있을 곳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모습들을 보인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친구인 척하며 화영이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화영이의 집에서 생활하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심지어 어처구니가 없는 문란한 생활까지 가볍게 소비하며 가치에 대한 관념 자체가 없는듯이 행동한다. 이 아이들은 자신을 과시하며 남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함부로 대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월감에 도취된 이들은 그만큼의 열등감의 깊이도 깊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으니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고.



극 중에서 화영이는 엄마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쉽게 내뱉고 친구들을 제외한 남들을 조롱한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떠도는 영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은 가장 낮은 자리를 자처한다.


외로움에 발버둥 치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며 깔본다. 그 고독 속에서 한참을 헤매도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화영이는 누군가의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것같이 행동한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친하다고 생각하거나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착각이라는 것에 빠지기 쉽다.

온전히 한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관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멀어지는 것이고, 마음은 외로워진다. 깊게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이 멀어질 때는 내 일부가 뜯겨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세상에 나혼자 존재하는 것 같은 고독에 빠져들 때도 있다.

특히,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이 행동한다. 길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주저 앉아버리기도 한다. 화영이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신이 외로운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 자신을 맡긴다.

그런 화영이에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은 뚜렷히 드러난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고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 나는 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화영이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야,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이 대사는 화영이의 모든 걸 말해준다. 우리도 화영이와 다를 것 없다. 다만, 우리는 화영이보다 조금 더 건강할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들과 교감하면서 살고 싶어 하며, 외로움에 떨고 싶지 않아 한다. 집단에서 소외되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에 집착하고 지위에 집착하며 행위보다는 자신의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서 집중한다.

화영이를 통해 나를 봤다. 우린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는지. 혼자 일어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얼마나 품고 살아가는지 말이다.





아이들은 화영이의 불안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고, 결국 화영이는 비탈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그 선택은 화영이가 한 것이다.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그들에게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려고, 느끼고 싶어서 자신을 구덩이에 빠뜨렸다.





이 영화는 우리의 마음속에 숨겨진 불안을 들춰내고 얼굴에 들이민다. 학창 시절, 주변에 한 명쯤은 있었던 '박화영'을 보여주어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아마 내가 영화를 다 보고 느꼈던 찝찝함은, 그때는 모르는 그런 아이들이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그들은, 그때는 알지 못할 것이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만이 칼을 쥘 수 있다. 칼을 쥐어준 건 그들이지만 휘두르냐 마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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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혼자 종종 보는데 한번 봐야겠습니다~^^

부디 그 칼날이 자기자신에게 휘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곰돌이가 @bbooaae님의 소중한 댓글에 시세변동을 감안하여 $0.002을 보팅해서 $0.021을 지켜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1615번 $21.771을 보팅해서 $20.057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수준 높은 영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리뷰를 읽으면서 많은걸 생각하게 되내요.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첫번째 방법인거 같네요. 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