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in kr •  6 years ago 

술 마시는걸 좋아한다

아니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술 자체를 마시는걸 즐기지는 않지만 술마시는 분위기를 즐기는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모든 술자리와 행사에 참여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학과, 동아리에서 어느정도의 직책을 맡아 생활하기도 했는데 이런 나를 주변 사람들은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요즘 혼자생활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혼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은데 나는 혼술을 즐기지 않는다

해외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지났을 땐 괜히 외롭지도 않으면서 나는 외로워! 라며 외로움 코스프레 하며 혼자 캔맥주를 사서 마시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다
혼자 술을 마시면 괜히 속도 더 쓰린 것 같고 숙취도 더 심한 것 같다

입이 심심하고 뭐가 먹고싶은 마음에 마트에 들렀다 오랜만에 취해보고 싶은 느낌에 술 코너 앞에 섰지만
혼자서 마실 술을 고르는 일은 어렵다

집에서 맥주를 마시긴 죽어도 싫은 마음에 동네 고깃집에 들렀다
다들 회식중이거나 여럿이 즐기는 분위기라 혼자 들어가기 뭣해서 밖에서 서성이다가 한참 후에나 들어갔다

아직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못해서 손가락으로 1을 만들어 보여주자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막상 앉고 보니깐 혼자라고 신기해하거나 눈치주는 사람도 없고 괜찮았다
먼저 마실걸 정해달라는 말에 메뉴판을 보는 척 했지만 컴퓨터 타자글씨가 아닌 손글씨로 만들어진 메뉴판은 더 머리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냥
'비ㅡ루 오히토쯔 오네가이시마스'

두잔이나 마시고 나왔다

나와서 걷는 거리는 꼭 우리 학교 앞 같은 냄새가 났다
술과 안주가 어우러진 향기
학교 앞 술집거리가 생각나서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그냥 또 그냥 막 걸었다

밤의 산책은 항상 뭔갈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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