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1)

in kr •  6 years ago  (edited)

칸트.jpg

이마누엘 칸트

문제의 문제


   몇 해 전, 저는 우연한 기회로 단 하루 한 고등학교의 교단 위에 선 적이 있습니다. 수업 과목은 수학으로, 고3 수험생들의 질문을 받아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부담도 없었고, 고교 수학 쯤은 우습게 봤던 터라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응한 수업이었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발걸음도 달에 착륙한 암스트롱처럼 사뿐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어쩌다보니 저는 우수반 학생들을 맡게 되었고, 제 자만을 벌하듯 수업 내내 버거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잘못하면 체면을 구길 판이었습니다. 속으로는 타들어갔으나 짐짓 아는 체하며 필사적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법 여유로운 표정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질문이 뭐였지? 잘 못들었는데 다시 한번 설명해 주겠니?”

   첫 번에 다 알아들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다시금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 두뇌는 입이 벌어놓은 시간동안 치열하게 풀이법을 찾아 나갔습니다.

   “학생은 어떻게 풀려고 했지? 음.. 그게 왜 안되었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도 훌륭한 시간 지연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다 학생이 스스로 해법을 깨닫기라도 하면 더할나위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겉으로는 순조로이 수업이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small_good.gif



   그러나 진짜 위기는 방심한 틈을 타 불시에 찾아오는 법. 요령이 생기니 만만하다 싶은 문제가 나오면 거침없이 풀어 면을 세우고자 하는 갈망이 동하던 참이었습니다. 우수반 학생들 전원이 질문해 온 한 문제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치고 전형적인 미분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껏 고양된 저는 시간벌이 없이 바로 백묵을 들어 자신있게 풀이를 시작했습니다.

   “????? ??”

   “선생님, 우리도 그렇게는 풀었어요”

   “????? !!”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고, 학생들은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칠판으로 돌아선 제 등 뒤로 날카로운 시선들이 꽂히고 있었습니다. 오만에 오만을 부린 대가였습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문제에 깊숙이 관여한 상태였습니다. 퇴로는 없었습니다.

   문제의 문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 문제.png

풀이를 보시기 전에 한 번 직접 풀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풀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 문제2.png

   먼저 [0, 1]의 변역을 갖는 변수 t로써 D의 좌표를 (t, 0) 이라 설정합니다. C의 좌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따라, (0, )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Ax축으로 내린 수선의 발 A' 에 대하여, ∠A'AD = ∠ODC 이고, ∠ADA' = ∠OCD이므로, △AA'D 와 △COD가 빗변과 양 끝각이 같은 ASA 합동을 이룸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 이고, A의 좌표는 가 됩니다.

   이제 의 길이를 t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는 단조증가함수이므로, 식의 괄호 안 수식만을 미분하여 미분계수가 0인 극점을 찾습니다.

위 식의 양변을 열심히 정리하여 다항식으로 만듭니다.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으로 t값을 구합니다.


   드디어! 찾아낸 t의 두 값을 에 각각 대입하여 나온 값을 비교해 더 큰 값을 찾기만 하면, 주어진 문제가 해결됩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됩니다!

i) 일 때,

... ...

small_anger.gif

   아무튼, 답은 일 경우를 잘 정리하면 최댓값 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만족스러운 풀이로 보이십니까? 사실 이같은 풀이 방식 자체는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과과정상 흔하게 등장하는 뻔한 풀이법이였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계산이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풀어야 해???”

   “선생님, 우리도 그렇게는 풀었어요”

   “이래서는 시간 내에 풀 수 없어!!”

   학생들도 답을 구하지 못해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주어진 시간동안 답을 낼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했던 탓에 제기된 질문이었습니다. 더욱이 실전에서 이렇게 계산이 복잡해지면 수험생은 심리적 압박에 못 이겨 지레 문제를 포기하고 맙니다. 결국 그들이 제게 던진 질문의 정확한 내용은 “계산이 보다 간결한 풀이”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봤더라면 얼버부려 다른 문제로 넘어갈 수 있었을텐데...

   ‘어디서부터 계산이 꼬인걸까’

   ‘첫 변수 설정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tx로 바꿔볼까?’

   시간이 갈수록 가슴속은 답답해졌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카이지.png

   선생님 자존심에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만가지 풀이법을 떠올려 보았으나 미력한 저의 능력으로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이렇게 절박한 심정을 읊조리던 그때였습니다.

   ‘그래! 무당은 장군신과 접신하여 운명을 점친다고 했지? 나도 과학신을 영접하여 문제를 물어봐야겠다!’

   문득 떠오른 기발한 생각이었습니다. 완벽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저는 들뜬 마음을 감추고,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칠판으로 몸을 돌려 눈알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신들이시여! 저를 어엿비 여기사 도움을 주소서!!



장군신.jpg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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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삐! : 말 그대로 갑자기 눈알을 굴려 흰자만 노출한채 거품 물며 쓰러지는 연기를 했다

그렇게 병원으로 도주....ㅋㅋㅋㅋㅋㅋ

이럴 수도 있는거군요 ㅎㅎ

옳소~~~~~

헐! 제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검은건 문자 흰색은 종이!

한 때는 꽤 했던것 같은데, 지나고나면 하나도 기억이 안나죠ㅎㅎㅎㅎ

한 십년전인가? 그보다 더 오래전인가? 수학1의 정석을 어느 구석에서 찿았습니다. 하루에 한장만 보자! 생각을 하였습니다.
미쳤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다시는 안 그랬습니다.

ㅎㅎㅎ 등에 식은땀이 주륵~하는게 느껴집니다~과학신들이 도와주셨나보군요!^^

보우하사 잘 빠져나온 이야기입니다^^

제목도 보고 글도 보고 풀봇 ㅎ 그러나 할말이 없음 ㅜ

감사합니다ㅎㅎㅎ 원래 수학/과학이야기라는 것이ㅠ

수학을 과학으로? 다음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요 ㅎㅎ

얼른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보고 저도 일화가 하나 떠오르네요. 제가 학생 입장이었고, 물리학 박사해놓고 철학도 학위 따서 철학 강사를 시작한 사람이 선생 입장이었는데...포스팅으로 한번 써야겠습니다. ㅋㅋㅋ

오오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ㅋㅋ

제목만 보고 일단 풀봇 ㅎㅎㅎ

감사합니다! 내용이 무거워서 형식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는 그저 내용 이해 없이 보팅만...

(실은 저도 다 못읽었어요... ^^, 슬립프린스님은 좋은 글 쓰시니 응원 한것 입니다 ㅎ)

저도 그저 좋은 글일것이란 믿음으로....ㅎㅎㅎㅎㅎㅎ

반성합니다...ㅠㅠ

일단 루트가 나오는 순간 스크롤 ㅜㅜ

엉엉엉 나른 공업수학까지 배웠는데... ㅜㅜ

본문과 상관없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 기억은 내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만을 기억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네요

좋은 글(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으셨군요ㅎㅎ

@wakeprince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친구는 이 동네 감히 못 옵니다ㅋㅋ

읽는 내내 어쩌나? 했어요.
저같음 잘 모르겠네 하고 끝! 했을 것 같아요. 어쩌셨을까 ?

일단 과학신부터 모시겠습니다ㅎㅎ

저도 내일 중3 아이들 수업인데
조금 걱정되네요.
잘 보았어요.

감사합니다!

우수반은 어렵겠군요. 해당 학년의 수준 위를 공부할때가 많으니....

하루동안이라 괜찮았습니다ㅎㅎ

  ·  6 years ago (edited)

오호👀
중간에 푸는 과정빼고는 다 읽었어ㅎㅎㅎ
그래서 잘생기고 용감하고 똑똑한 왕좌님은 빠른 문제풀이로 코페르니쿠스의 어떤점을 이용했을까요
코페르니쿠스라면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고 하던 그분 아니던가요

네이버에 좀 검색해봤네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임마누엘 칸트 이후로 확고한 의미를 띠게 되는데, 이것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공전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자기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자전에 관한 개념이다.

움직이는 것은 별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주변부로 물러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로 들어가서 그곳으로부터 사물을 관찰하고 논의를 펼쳐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연법칙은 자연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연에 부과하는 것이라는 칸트의 형이상학적 전환은 이처럼 중심부로의 이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새로운 풀이법은 도형중심에서 시작되나봅니다? 허허 기대하고 있겠쏘요

오오 비슷합니다. 대단하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엿븐 왕자님 ㅋㅋㅋㅋ 다음 시간이 기다려져요 현기증나여 ㅠㅠ 빨리 포스팅해주세요

재빠르게 2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ㅎㅎ


왕자님께 드릴수 있어서 가문의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두 얼굴의 왕자님 부탁해요~~

우왓 정말 감사합니다!!

????머여 갑자기 장르가 퇴마록으로 바뀌는 것인가요???? 그렇게 슬립프린스님은 뉴턴 오버소울로 학생들을 적분해버리고 미분해주지 않은 채 남겨놓는데....

요즘 장르의 크로스오버는 예삿일아닙니까ㅋㅋㅋ

너무 재미있네요. 자주와서 예전 쓰신 글도 읽어보고 싶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오페드님이 출타중이시니 수학문제가 왕자님에게서 나오는군요 ㅎㅎ

수학문제를 빙자한 과학이야기입니다ㅋㅋㅋ @beoped님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뻘소리(?)지만 폰 노이만의 다음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ㅋㅋ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긴 해도 이런 거 들으면 또 기분이 묘해져서 흑흑

누군가 “200마일 길이의 철로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두 대의 기차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서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때부터 두 기차가 서로 충돌할 때까지 파리가 시속 75마일의 속도로 두 기차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파리가 이동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일까요?”라는 질문을 폰 노이만에게 했다. 폰 노이만은 1초의 지체도 없이 150마일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실망하면서 “역시 당신은 속임수에 걸리지 않는군요. 대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무한급수를 이용해서 풀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간단한 논리를 이용해서 파리가 2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알아내면 금방 풀리죠. 당신은 그렇게 풀어낸 거죠?” 폰 노이만은 대답했다. “아뇨.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

천재 폰 노이만의 유명한 일화로군요ㅋㅋㅋㅋㅋ 운동하면서도 많이 느낍니다. 기술 아무리 많고 숙련도가 높아도 어마어마한 힘과 크기 앞에서는 재롱잔치 밖에 안됩니다. 역시 피지컬이 최고..ㅋㅋㅋ

수학 풀이가 저의 눈을 공격해올 때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는데, 왜 다음 얘기가 궁금한 거죠ㅎㅎ
이경규의 눈알 굴리기를 시전하여 위기를 모면하진 않으셨겠죠. 담편 기대합니다^^

이경규 눈알 굴리기는 정말 옛날 이야기 아닙니까ㅎㅎㅎ

뭔가 쉽게 답이 딱 나오는 방법이 있을것만 같은데 으으으
수능 공부할땐 수학이 진짜 싫었는데 이렇게 부담없이 보니까 재밌네요 ㅋㅋㅋ
물론 다시하라면 안할거지만서두 ㅎㅎㅎㅎㅎ
얼른 간결한 풀이 올려주세요

깔끔한 풀이는 손으로풀었을때 너댓줄이면 됩니다. 최대한 다음글도 빨리 적어보겠습니다!

앗 궁금합니다.

다음화에 계속!ㅎㅎ

문과생은 웁니다...ㅠㅠ쥬륵

쓸모없는 숫자따위ㅋㅋㅋㅋㅋㅋㅋ

그저 덧셈만 잘해도, 세상 사는데 지장 없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

그게 아니었군요...

화학도 왜 배우나 싶었는데, 중국 애들이 멜라민으로 분유를 만드는 것을 보고 ....

수식이 들어가도 이렇게 흥미진진하다니!!!
코페르니쿠스를 영접하면 어찌될지 ㅋㅋ

감사합니다ㅎㅎ다음편이 재미있어야할텐데요..

  ·  6 years ago (edited)

휴가 갔다와서 오랜만에 스팀잇에 들어와서 본 첫글이 이 글이라니...ㅋㅋㅋ 직관적으로 생각했을때 선분 CA가 x축과 평행할 때 OA가 최대값이 될 듯한데요? 그럼 직각삼각형 OA'A의 빗변이 되니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해결될 것 같은데...^^;;; 이렇게 쉬울 리는 없으니 좀더...;;;

첫 글부터 숫자가 나와서 당황하셨습니까ㅋㅋㅋ 나온 답을 보건대 직관적인 값은 답이 아닌가 봅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ㅋㅋ

뭔가 장면을 상상하면 읽게 되네요. 진땀;;ㅋㅋ

감사합니다ㅋㅋㅋ 다음 화도 기대해 주세요!

<풀이를 보시기 전에 한 번 직접 풀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권하신 것을 할 수 없는 이 비통함...

권하기만 할 뿐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식이 나오면 컴퓨터님이 풀어주십니다!

컴퓨터님을 찬양하라!

이런 문제는...ㅠㅠ
수포 만들어용...ㅠㅠ

bluengel_i_g.jpg Created by : mipha thanks :)항상 행복한 하루 보내셔용^^ 감사합니다 ^^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이런 문제를 고3 교과에 넣다니 교육부가 잘못했군요!

그러게 입니당...ㅠㅠ
사람은 이 아닙니당...
당근도 안주면서 채찍을 맞은 기분...ㅋㅋ

bluengel_i_g.jpg Created by : mipha thanks :)항상 행복한 하루 보내셔용^^ 감사합니다 ^^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