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준비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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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몇 개월간 백수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간만에 주어진 자유가 너무 좋았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잘 수도 있었고 조조영화를 보고 오후 내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간만에 친구와 만나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딱 1주일 만에 끝이 났다.
행복했던 1주일이 지난 후 월요일을 맞았을 때 난 내게 주어진 엄청난 시간을 채울 꺼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혼자 중얼거렸다.

'뭘 하지?'

이 아까운 시간을 '무위'로 그냥 보내버릴 수밖에 없다니..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단순히 시간이 많다는 것을 '자유'라 착각한 것이었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넓은 바다가 앞에 있지만 난 할 줄 아는 게 없는 머저리 같았다. 느긋하게 낚시를 할 줄도, 폼나게 파도를 타며 서핑을 할 줄도 모르는 머저리.. 그 머저리는 그저 해변에 멍하니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유인 줄로만 알았던 시간이 '무위'의 시간으로 전락한 순간 그때부터 이 빈 시간들은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워라밸' 이 핫한 이슈다. 이것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한다. '워라밸'이 중요한 이유는 일이 삶의 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을 마치는 순간에 일한 기억 밖에 없다면 참으로 허망할 것이다.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을 벌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거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을..

아직도 우리 이전 세대 분들 중에는 일이 삶의 전부인양 사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에게는 '난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삶에는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 있다. 사실 일을 통한 성취만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은 생각처럼 크지 않다. 게다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생에 적어도 몇 번은 긴 공백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야 할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 시간을 위해 우리는 일 이외에 우리 삶을 의미 있으면서도 풍성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그때 자유의 시간이 주어져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 당시 몇년 동안을 일이 전부인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을 살다가 갑자기 맞이한 삶의 공백이 자유가 아닌 부담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브룩스 노인이 가석방 후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일이 내 삶에서도 벌어진 것이었다.

자유는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다.
바쁜 일상이라도 조금씩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고 그것에 어느 정도 내공을 쌓아놓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큰 파도와 같다. 이것은 노련한 서퍼에게는 극한의 재미와 쾌락을 누릴 기회가 되지만 수영도 못하는 맥주병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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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놀다보니 바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ㅠㅠㅋㅋㅋㅋㅋ

완전한 자유인이겠죠..ㅎ
그대로 사시면 될 듯..ㅎ

저도 조금씩 연습중이에요. 시간을 내껄로 만드는 것...!
시간을 흘려보내는게 아니라 잘 쓰는 법. 언제 마스터 할 수 있을지는..잘 모르겠습니다ㅎㅎ

이미 어느 정도 마스터 하셨을 것 같은데요..ㅎ
앞으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삶이 되시길..^^

저는 지금 공백을 맞이했답니다
저의 공백을 너무도 기다렸기에
아직은 너무도 소중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랍니다 글을 보고 더욱 느끼는 바가 크네요

의미 있는,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저는 직장 생활을 해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방학이 그렇더라고요. 사실 중학교 때부터 방학에도 학교에 가느라 수능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방학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수능이 끝나고 자유를 얻으니 마냥 좋기는 한데 정말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더라고요.
이번에 일주일정도 짧은 방학이 있었는데 그 방학도 그렇게 훌륭하게 보내지 못했네요. 시간을 잘 사용하는 연습, 자유를 누리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학이 있을 때면 정말 좋은 시기네요..ㅎ
그 시간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보세요..^^

공감합니다. 자유가 주어졌을때 '일정'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목적' 정도만 준비해두어도 그 시간이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글 잘 봤습니다.^^

그 정도만 준비해도 무의미한 시간은 보내지 않을 수 있죠..ㅎ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