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에서는 욥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면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해답을 보여준다거나 잠언과 지혜를 말하기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고자 하심.
4장부터 본격적으로 세친구와 논증들이 시작되어짐. 만약 3장에서 욥의 탄식이 없었다면, 욥기는 신앙논쟁만 가득한 차가운 책이 되었을 것임. 욥의 비명이 있었기 때문에 차가운 논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됨. 내용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어 가슴으로, 살아있는 영혼으로 살아가라는 메세지임.
엘리바스는 다양한 일반화의 오류를 가지고, 사회적 통념의 인과응보로 접근함. 엘리바스는 자신의 신앙적 체험도 있고 견고한 신앙적 교리의 이해도 있었음. 하지만 고통받고 있는 욥에게 공감되지 못했음. 엘리바스는 MBTI의 T였을 것임. 욥도 엘리바스가 말하는 거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임. 하지만 욥이 이걸 듣고 싶어하지는 않았을 것임. 특히 엘리바스가 했던 말은 욥에게 모욕적이었을 것임. 욥의 어리석은 죄 때문에 찾아온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음. 그 말은 사실에 가까울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교리를 초월하여 역사하고 계심.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의 여정 가운데 영적인 방황기와 알수 없는 시험, 고난 등에 처하게 하실 수도 있음. 하지만, 엘리바스 안에 영적인 교만함으로 훈계했기 때문에 욥에게는 실제적 능력으로 임하지 못했음. 욥의 친구들이 7일 밤낮을 함께 해줬음. 그 안에서 위로가 있었겠지만, 한계가 있었던 것임. 사람의 위로에는 한계가 있음. 엘리바스 하던 말은 욥을 위한 말이라고 하지만, 욥의 마음 보다는 상황과 신앙적 지식으로 욥을 다루고 있는 차가운 신앙적 지식이 보임. 엘리바스는 욥에게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말함. 욥기 1˜2장에서 사탄도 하나님께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말함. 그렇게 욥에게 고난이 시작되는데 엘리바스와 사탄이 동일한 사고방식이었음.
앞으로 많은 논쟁이 벌어질텐데, 동감하는 마음이 없음. 욥은 나를 위해 7일간 동행해줄 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구하게 됨.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됨. 하나님과 욥은 무조건적인 관계였음. 욥을 향한 섭리의 불빛을 거두지 않으셨고, 욥도 주 앞에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음. 건강한 신앙적 모습은 어려운 일 있을때도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곳으로 가는 모습임. 하나님께 가면 살것 같아서 가는 것임. 친구들의 신앙은 틀리고, 욥의 신앙만이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미련해보이고 탄식해보이는 자를 살려주실 것임. 그를 책망하시기도 하지만, 살리기 위해서임.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생각과 철학을 무력화 시키시기를 원하시는데 그 이유도 살리기 위해서임. 욥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살려가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음.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도 욥이 당했던 고난과 연약함을 동감하심으로 고난에 동참하심. 예수님께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오셨음. 우리도 세상으로 나아가 살리는데 쓰임받기를 원하심.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무조건적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나를 향한 섭리의 불빛을 거두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고난이 오직 나를 살리기 위하심임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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