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무너진 세계 - 15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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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망생 입니다.
외계인과인 전쟁 - sf 생존물 입니다.
다른 좋은 글 보시다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들 - 15

아침이 밝으면 세 친구는 어김없이 폐허 속 생필품들을 찾아 헤맸다.
벌써 일주일째다.
집 주변은 이미 뒤질 대로 뒤져본 터라 멀리까지 나가야만 했다.
쳐들어 온 외계인놈들은 무슨 짓거리를 벌려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고, 일단은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기 바쁘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할진 몰랐다.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삶..
아이들의 생활은 그저 연명을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외계인의 폭격 후 사흘이 지나자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들 중에서도 시체가 나온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자들의 죽음, 희망 잃은 자들의 자살이 그것이었다.
고단한 생활에 힘겨운 아이들도 때때로 느꼈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죽은 사람들 때문에 그들이 숨겨놓았던 여러 가지 물품들은 다른 생존자들의 양식이 된다.
아이들도 덕을 많이 보았다.
내일이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을 유심히 보았다가 다음날 그들의 유품을 쓸어오는 것이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다.
그런 때면 죽고 싶던 아이들도 살맛이 났다.
예전의 풍족에 비한다면 쓰레기 같은 망자의 선물들이지만, 아이들은 줍는 데로 집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쌓여가는 잡품더미를 보며 때때로 아이들은 이상한 행복을 가끔씩 느끼곤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간절한 항생제는 구하지 못했다.
못 먹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병만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 졌다.
이제는 깨끗한 붕대도 없어, 주워 다 놓은 천 조각을 팔에다 묶었다.
떡 진 피고름을 대충 털어내고 오만상을 찡그려 천을 두르지만 병만은 친구들을 위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지호는 폐허가 된 병원만 보면 불에 홀린 나방 마냥 필사적으로 뛰어 들었다.
제발 병만이 각종 감염 등으로 부터 죽지 않기를 염원하며 말이다.

".. 애들아.. 혹시.. 너희들 중 몰래 음식 먹은 사람 있니?"

어젯밤 지호가 뜬금없이 한 말이다.
아이들은 질문의 의도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오해 하지마.. 몰래 먹었다고 뭐라 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쌓아둔 음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묻는 거야.."

병만은 깜짝 놀라 큰소리를 냈다.

"무슨 소리야? 그게!.. 피 같은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니? 확실한 거야? 장윤아! 혹시 네가 몰래 먹었어?"

난데없이 불똥이 튀자 장윤도 폭발 한다.

"뭐래?! 내가 먹었으면 먹었다 그러지! 뭐 대단한 음식이 있다고 몰래 먹어? 지호 이 새끼야! 넌 갑자기 무슨 말 하는 거야?"

아이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지호의 눈빛이 날카롭다.

"아니야.. 분명히 음식이 사라지고 있어.. 여기를 잘 봐봐."

지호가 가리킨 것은 음식포장지에 쓰여진 작은 숫자였다.
지호는 구해 온 모든 음식물의 포장지에 조그맣게 숫자 표시를 해 두었었다.
빨리 상하는 것이 있고, 오래 두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어, 지호는 식량관리 차 음식마다 번호를 기입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비는 번호가 나왔다.
그래서 지호는 두 친구 중 몰래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야! 난 진짜 안 먹었어!"

평소 덤벙대는 장윤에게 지호와 병만의 눈총이 자연스레 향하자 장윤이 세상 억울하단 표정이다.
그러자 털털한 상남자 기질인 장윤을 잘 알기에 두 친구는 이내 의심을 거뒀다.
녀석은 걸리면 두말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아니라고 하면 진짜 아니었다.

"그럼.. 우리 중엔 절대 없단 거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우리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란 것 아냐?"

그래서 다음날 지호와 아이들이 채집활동을 일찍 마무리 하고 자신들의 집을 급습했다.
아침까지도 말이 안 된다며 푸닥거리를 했지만 지호가 원채 강하게 주장을 해 대니 마지못한 친구들이 양보한 것이다.
오는 내내 장윤은 지호가 숫자를 잘못 기입 했을 것이라 궁시렁 거렸다.
나갈 때는 문을 철저히 잠그고 나간다.
그러니 도둑이 들었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설령 밤손님이 들었다 한들 꼴랑 음식 몇 개만 털었으랴?
집기 도구부터 괜찮게 쌓아 올린 물건들이 꽤 많이 있다.
우습지 않은가?

더군다나 열쇠는 장윤이 가진 것 하나 뿐이다.
다른 열쇠라고는 돌아오지 않은 장윤네 가족들이 가진 것뿐이다.

"!... 설마.."

그래서 집을 향하는 장윤의 발걸음이 가장 빠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대 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제발 가족들이 드나든 것이기를.. 음식물을 훔친 것이 제발 생존한 가족이기를.. 걸어오는 내내 장윤의 머릿속은 간절함이 헤집는다.
도착하자마자 집 문 손잡이를 급하게 돌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은 아침에 잠근 그대로 굳게 잠겨 있다.

".. 아무도 안 왔나..??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건가?"

실망한 눈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둘러본 장윤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찾았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지호는 빠르게 총을 빼든다.

"뭐.. 뭐하는 거야. 지호야?"

"병만아.. 너도 총빼.."

뜻밖의 행동에 장윤이 깜짝 놀랐다.

"너네!... 총도 있었어!? 왜 나한텐 얘기 안 해줬어?!!! 이 새끼들!.. 와~~ 이 나쁜 새끼들이.."

지호는 친구들 몰래 문틈에다 조그만 종이를 끼워 놓았었다.
꽤나 빡빡히 꽂아 둔 터라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절대로 빠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종이는 보란 듯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침입자도 항상 문을 잠궈 놓고 돌아갔던 터.. 문이 잠겨있다고 녀석이 안에 없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미 빠져나갔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다.
그래서 지호는 일단 총을 빼든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우리 가족이면 절대 쏘면 안 돼! 알았지? 어? 어서 대답해!"

장윤이 걱정 가득 두 친구들을 보았다.
당연하다.
두 친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문이나 열라는 시늉을 한다.

  • 철얼~컥.. 벌커덕! -

문이 열리자마자 두 친구가 총을 겨눈 채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일단 조용했다.
장윤은 총을 든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초라한 두 주먹을 모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권투선수 시늉을 하며 따라 들어간다.
누군가 숨어 있다고 생각 하니, 외출 전 그대로인 집안 집기가 하나하나 낯설게 느껴졌다.

"병만아.. 모르는 사람이면 무조건 쏴! 알겠지? 응?"

지호의 말에 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 때문에 흘리는 땀인지 환부 때문에 흘리는 땀인지 알 순 없지만 녀석은 이미 땀범벅이다.
그런 병만을 보는 지호는 편치가 않다.
녀석의 지친 듯 한 눈빛이 마음을 번잡스럽게 한다.

간단한 사인교환을 끝으로 각자 흩어져 맡은 방을 뒤져보았다.
장윤은 걱정스런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혹시나 기대로 거실에 머물렀다.

"누.. 누구야! 너 누구야!"

이내 날카로운 병만의 목소리가 울린다.
놀란 두 친구가 재빠르게 병만이 있는 곳으로 뛰어 들었다.

지호의 예상대로 집안에 침입자가 있었다.
낯선 남자 하나가 병만의 목에 칼을 들이 댄 채 친구들을 맞았다.
병만보다 훨씬 왜소한 남자였지만 병만은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해 인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너 이 새끼!!"

지호는 생짜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장윤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녀석은 장윤이 집으로 돌아온 첫 날, 밤늦게 무단으로 현관문을 연 남자였다.
병만은 두 친구가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총을 급히 장윤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총을 받은 장윤도 허둥지둥 남자에게 총을 겨눴다.

"칼 내려! 어서! 죽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해! 이거 장난감 아니까!"

지호가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범인에게 물었다.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창문으로 넘어 들어왔다."

"거짓말 하지 마! 현관문에 끼워둔 종이가 떨어져 있었어! 넌 분명히 문으로 들어 온 거야! 안 그래?! 어떻게 문을 열었지? 열쇠를 어디서 났어?"

지호의 추궁에 남자가 당황했다.

"훗.. 내 직업이 열쇠공이라.. 이딴 낡은 집 문 따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남자는 가만히 두 사람을 살폈다.
목을 쥐고 있는 병만은 덩치에 비해 비실비실해서 안심이었다.
하지만 총까지 들고 있는 두 사람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물론 가짜 총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 손 치더라도 2대 1로 싸우는 건 위험하니 말이다.

"음식 훔친 건 미안하다.. 하지만 해코지 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어.. 용서해줘..

이어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집이 필요해.. 말도 안 되는 부탁인건 알지만.. 이틀정도만 쓰게 해 주면 안 될까? 부탁이야.. 딱 이틀만 쓰고 나갈게.. 제발.."

"뭐라고?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야! 턱도 없는 소리를!"

장윤이 버럭 끼어들었다.
지호가 계속 협상을 이어갔다.

"그건 안 돼! 네 놈이 무슨 사정인진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때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들어 줄 순 없어. 너무 과한 요구야.. 친구를 풀어준다면 무사히는 나가게 해줄게.. 이게 우리가 배려할 수 있는 전부야. 선택해! 우리도 사람 헤칠 생각은 없으니까..!"

단호히 받아친다.
남자는 단 칼에 묵살된 자신의 요구에 갑자기 울상이 되었다.
하긴.. 들어 줄 리가 없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부탁은 상식적이지 않다.

"..알았어.. 그럼.. 그럼 다른 부탁이 있어.."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먹을 것 좀.. 얻을 수 없을까?"

장윤이 또 버럭 끼어들었다.

"이 미친 새끼! 계속 무슨 헛소리야!"

"장윤아.. 가만있어봐.. 너 어제도 음식을 훔쳐가지 않았냐?"

"아니야... 어제가 아니라.. 그제야... 정말 미안해.. 돌봐야 하는 동생이 있어.. 아픈데다가 먹은 것도 없어서 곧 죽을지도 몰라.. 부탁이야.. 조금만 가져갈게.. 제발 나눠줘.."

이제는 눈물까지 그렁였다.
처음 사나웠던 남자의 눈빛이 점점 쳐져만 갔다.
지호는 한 숨을 쉬었다.
장윤은 쇼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지만 요즘 같은 때에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장윤아.. 총 내리자.. 그리고 오늘 주워온 음식을 좀 줄 테니까 당신은 이거 들고나가! 하지만 한 번 더 도둑질을 하면 그땐 정말 가만있지 않겠어! 우리도 음식이 남아도는 건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지호! 너 미쳤냐?? 저 새끼! 순 거짓말이구만! 뭘 음식을 나눠줘!! 날강도 놈한테!"

지호는 급히 오늘 주워 온 통조림과 빵 봉지 하나를 가방에서 빼 범인의 발밑으로 던졌다.
장윤이 말릴 새도 없었다.
깜짝 놀란 남자는 이내 병만을 풀어 주었다.
그러더니 대성통곡을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나 했다.

"에이.. 새끼.. 빨리 들고 꺼져!"

남자의 눈물 앞에 장윤의 마음도 녹았다.
아픔이란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것이다.
녀석의 얼굴이 눈물콧물로 범벅이다.
주섬주섬 통조림과 빵을 챙겨 실랑이를 벌이던 방 문을 나가려고 했다.

  • 탕! -

하지만 그 순간..
지호가 재빨리 걸어 나가는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화약소리가 무섭게 방안을 흔들었다.
불시에 총격을 당한 남자는 현관에 그대로 쓰러져 피 웅덩이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지호의 돌발행동에 사색이 된 채 넋이 나가 버렸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도 꽤나 충격이었다.
당사자인 지호도 온 몸을 덜덜 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지.. 지호야! 너 왜 그런 거야!"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에 얼어있던 장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호는 눈까지 풀려 눈거풀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녀석은 우리처럼 언제든지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야.. 어느 때에 위험이 될지 몰라. 그러니까... 지금 결단을 내려야해. 이게 옳아.."

"아니.. 그래도..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죽인다는 게.. 이게 말이 되는 행동이냐?"

"장윤아.. 정신 똑바로 차려! 하루에도 몇 사람씩 죽어나가는 밖았 꼴 못 봤어? 예전 같이 생각해선 안돼! 그럼 못 살아 남는다고!"

오히려 호통을 치자 장윤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 씨.. 씨발!.. 씨발!..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뭐야! 이렇게 까지 해서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냐고?"

푸념 같은 장윤의 말이 지호의 가슴에 매섭게 박혔다.
장윤의 말도 맞다.
굳이 이렇게 악착같이 생존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 삐..걱.. -

하지만 더 기막힌 일이 잠시 후에 벌어졌다.
갑자기 화장실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10살쯤의 어린 여자애 하나가 다리를 질질 끌며 홀린 듯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딱 봐도 남자가 말한 아프다던 동생이었다.
아이들은 갑작스런 소녀의 등장에 할 말을 잃었다.

소녀는 쓰러진 남자의 곁에 앉아 피 범벅이 된 남자의 머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다 아이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마치 시선이 호되게 뺨을 치고 가는 느낌이었다.
이게 지금 무슨 꼴이지? 무슨 광경이야?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망부석이 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 상황을 소녀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지.. 지호야.. 너 뭐하는 거야?!"

지호의 총구가 지호의 관자노리를 향해 있는 것을 보자 병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비극이 괴롭고 부끄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살아보려고 한 결단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신을 나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소녀의 울음소리 앞에 지호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대고 미칠 것만 같았다.
꺼억 대는 울음소리가 고막을 칠 때 마다 심장이 돌로 찍혀나는 것 마냥 아파왔다.
나의 생존이라는 명분으로 남의 생명을 빼앗은 자신..

방아쇠에 넣은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충혈 된 눈에서는 눈물이 미친 듯이 흘렀다.
아무리 냉철한 듯 굴어도 결국 사람이다.
지호는 갑자기 살아가는 모든 것이 힘에 부쳤다.

"지호야... 지호야!! 정신 차려!! 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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