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무너진 세계 - 21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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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망생 입니다.
외계인과인 전쟁 - sf 생존물 입니다.
다른 좋은 글 보시다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가는 법 - 21

"인대 좀 늘어났네. 이건 별로 치료할 것도 없다. 그냥 안 움직이면 된다."

여자아이의 다리를 대충 휙휙 살핀 의사선생이 말했다.
성의 없이 보는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의사라는 양반이 말해주니 안심이 됀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지호와 병만은 고개가 땅에 닿을 지경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의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바꾼다.

".. 근데.. 여자애가 몇 살이지? 10살? 11살?"

순간 아이들이 여자 아이를 쳐다보았다.
사실은 아이들도 갑자기 함께 살게 된 소녀의 나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여지껏 얘기조차 나눠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의사의 말에 눈만 껌뻑댈 수밖에..

의사의 입장에서는 희한한 일이다.
한 집에 같이 사는 아이들이 서로를 모를 수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복잡한 사정을 알리없는 그이니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날의 사건을 시시콜콜 설명하는 것도 아이들은 난처하고 말이다.
특히나 지호는 더더욱..

"11살 이예요..상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이상한 분위기가 이어 질 뻔한 상황에서 여자아이가 먼저 입을 열어주었다.
아이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의사를 보았다.
하지만 의사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을 주절였다.
생각보다 크게 주절여서 아이들도 들을 수가 있었다.

"아.. 애매한데.."

"네?"

"응?? 아냐 아냐.. 하여튼 이제 난 가 볼께. 혹시나 담에 또 보거든 잘 지내보자. 안녕~"

의사선생도 어색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집을 떠났다.
첫 대면은 까칠했어도 속은 좋은 사람임이 느껴지는 어른이다.
의사가 나간 후 닫혀 진 현관문을 보며 장윤은 머리를 긁적긁적 긁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잘 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지호 또한 자신과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지호의 얼굴은 장윤과는 다르게 인상이 가득 쓰여 있다.

"왜 그래? 지호야."

"... 아니.. 아무것도.."

지호도 장윤과 마찬가지로 의사선생을 좋게 보았다.
하지만 지호를 인상을 쓰게 만든 것은 문을 나서기 직전에 보였던 그의 표정이었다.
소녀의 나이를 듣자마자 그는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무슨 의미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째든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얼마 뒤면 빡빡이 녀석이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이미 거래품을 받아 버린 아이들의 입장에서 녀석들의 요구를 물릴 명분은 없다.
녀석들과의 동거는 끝내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생판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녀석들이 어떤 성향을 가진 조직인지 모른다.
물론 의사선생만 놓고 본다면 우려하는 것보단 좋은 사람들의 모임 일수도 있다.
하지만 속단 할 수도 없다.
어째든 앞으로 벌어질 협상을 아이들은 유리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지호는 어떻게 하면 그나마 좋게 될지 고심이 됐다.
그런 지호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장윤은 그저 엎어져 눕는다.
때때로 이상 하리 만치 심각해지는 지호는 그냥 냅두면 된다는 자신만의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대화를 해 본다 한들 자신은 이해하지도 못할 테고 말이다.

여자아이는 다시 자신이 있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버렸다.
이 아이도 아이들을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게 시끄러운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병만은 오랜만에 쌔근쌔근 잠을 잘 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똑똑똑 -

"친구들~ 이제 우리가 나머지 얘기를 나눠 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안 그래?"

의사가 다녀간 사흘 뒤.. 달갑지 않은 빡빡이 형님이 찾아왔다.
그의 목소리는 꽤나 중압감이 있었다.
마치 빚쟁이가 빚 갚으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약속대로 의사를 보내 주었고 그 덕에 병만은 살았으니 말이다.

항생제로 인해 여태껏 진물 범벅이었던 병만의 상처는 다음날, 곧 바로 딱지가 앉았다.
그 뒤로 하루가 다르게 팔이 회복이 되었다.
그러니 빡빡이가 큰소리를 칠만 하다.
일면식 없는 그들에게 항생제까지 보내줬으니 더 할 말도 없는 것이다.

지호는 두 말없이 집 문을 열었다.
경계심 가득,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선채 말했다.

"약속대로 집을 빌려줄게요. 큰방을 쓰도록 하세요. 우리는 작은 방을 쓸 테니까.. 하지만 동료가 되 달라는 부분은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그 쪽에서 말하는 조직이 뭘 뜻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이 옳은 지도 모르겠으니까.. 그게 싫다면 협상은 결렬 입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은 판단이야. 밑도 끝도 없이 딴소리를 지껄였다면 정말 큰 일이 벌어 졌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면 나도 나름 만족이야. 동료 얘기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 해봐도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렇긴 해도.. 이거 생각 보단 집 문을 너무 빨리 열어 주는데.. 시간 좀 걸릴 줄 알았더니.. 크크."

그러더니 뒤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얘들아! 집 생겼다! 다들 올라와라!"

"예! 형님."

이내 덩치 좋은 장건들이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섰다.
하나같이 근육질에 험악하게 생긴 사내들이었다.
그 중에 딱 두 사람만 인상이 괜찮다.
의사와 잘못된 만남의 주인공, 몹쓸 꼬맹이다.

아이들은 빡빡이의 수하들이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자 급 긴장이 됐다.
병만과 장윤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허리춤에 매여진 총으로 손이 간다.

같이 살기로 한 것은 정말 잘 한 짓일까?
병만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막상 녀석들이 집으로 들어오니 미칠 노릇이다.
소녀도 긴장 되는지, 웬만하면 같이 있지 않으려던 아이들 곁에 붙어 섰다.
철천지원수 지호 옆이지만 그래도 사내들 쪽 보단 나은 것 같았다.

그들은 집 거실에 자신들의 물건을 한 가득 쌓아 놓았다
조직이 보유한 물자들이었다.
생수 박스부터 시작해서 온갖 캔 음식과 집기류가 산을 이뤘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애지중지 모은 잡품들에 비해, 규모부터 틀린 그들의 자산을 넋을 놓고 보았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빡빡이 형님이 실실 웃는다.

"왜? 갖고 싶어? 갖고 싶으면 나눠 주지.. 당연히 조직의 일원이 되겠다는 조건하에 말이지.. 크크"

"...."

아이들은 입맛을 다셨지만 그렇다고 녀석들의 밑으로 넙죽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호는 사내들에게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공손해져 있다.

"한 번 더 말씀 드리지만.. 서로의 공간은 침범 하지 않기로 했으면 합니다. 서로 불편하잖아요.. 지켜 주실 거죠?"

그러나 빡빡이의 수하들은 지호의 말에 기분 나쁜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짐을 쌓은 후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에휴..”

그렇게 그들과의 탐탁지 않은 동거가 시작됐다.
첫 날 저녁, 서로의 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이들은 소녀까지 합쳐서 작은방을 쓰게 되었다.
셋 사이에 소녀가 끼게 되자 방 분위기는 계속 어색했고, 현관부터는 큰방 사내들 때문에 불편해서 나갈 수가 없다.
더 이상 즐거운 우리집이 아니다.
집주인은 아이들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셋방살이 마냥 쭈그려져 지내게 되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병만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호와 장윤이 앞 다퉈 괜찮다고 받아쳤다.
결과는 이렇지만, 그래도 둘은 병만을 살린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지낼 수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건달 녀석들이 조용히 지내준다 할지라도, 존재만으로도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오.. 저 새끼들 때문에 오줌 싸러 나가는 것도 쫑기게 생겼네.. 뭐 좋은 방법 없냐? 지호야.. 머리 좀 써봐라~"

"모르겠다.. 나도.. 딱히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같이 살아도 별게 아닐 줄 알았는데.. 막상 떼거지로 들어오니까.. 무섭긴 하네.."

그러자 병만이 조심스레 다가와 아이들에게 소근 거린다.

".. 그나저나.. 저 애는 어쩌지? 우리 때문에 엄청 불편 할 텐데.."

아이들은 동시에 방구석에 앉은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세상 다 산 듯 풀이 죽어 귀퉁이에 앉아 있다.
느닷없이 세 친구들과 한 공간을 써야 하는 소녀도 미칠 노릇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죽인 원수들이 아닌가..

하지만 의지할 곳 없는 소녀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빌붙어야 한다.
정말 더러운 상황이다.
소녀의 팔자도 참 기가 막힌다.

".. 일단, 문은 항상 잠그는 걸로 하고.. 방 나가야 하는 사람은 문 앞에 폰 음파센서 켜 둘 테니까 보고 나가고.. 어디 가는지 옆 사람한테 꼭 알려 주고... 무조건 총은 들고 나가고.. 솔직히 녀석들 몸을 보니까 완력으로는 못 당하겠더라. 무슨 일 생기면 일단 무조건 쏘고 봐야 된다.. 알았지? 특히, 병만아.. 저 쪽은 쪽수가 많아서 안 쏘면 안 된다. 어?"

지호의 신신당부에 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소녀에게도 말했다.

"불편해도 어쩔 수 없어.. 다리 다 낫을 때 까진 참아주고.. 화장실 등등, 방을 나서야 할 땐 장윤이랑 함께 가줘.."

"뭐? 왜 내가 같이 가!?"

하지만 두 친구가 눈총을 주자 장윤은 이내 딴청을 피운다.

"아무래도 우리 중에 니가 젤 마음이 편할 것 같으니까.. 좀 도와 줘라.. 그래도 니가 젤 듬직하잖아."

"하하~ 하긴.. 뭐.. 객관적으로 봐도 니네들보단 내가 훨씬 믿음직하지!"

병만이 지혜롭게 말하자 장윤이 거드름을 피웠다.
이때.. 문 앞에 켜둔 가브리엘 폰의 음파 센서가 조용히 소리를 냈다.
무엇인가 가까이 접근한다는 뜻이었다.

  • 삐비 삐비 -

"!"

일순간 아이들의 눈이 폰 액정에 꽂혔다.
레이더처럼 회전축이 돌아가며 반경 10m 내의 접근물체를 알려주는 음파센서는 아이들의 방문 앞으로 2개의 물체가 슬며시 접근하는 것을 점으로 보여주었다.
필시 옆방에 있던 건달들 일 것이다.
순간 소름이 돋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며 총 부터 뽑아 들었다.

"아오.. 쓰바.. 저 새끼들 이럴 줄 알았다.. 잠잠히 생활할리가 없지.. 애초부터 집이 목적 이었던 게 분명하다."

지호와 병만도 마른 침을 삼키며 방문을 뚫어지게 보았다.
무슨 의도인진 알 수 없지만 두 녀석이 문 밖에 바짝 붙어 서 있다.

녀석들의 집 탈환 작전이 시작 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아이들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 둘, 셋!”

지호가 순식간에 문을 열자, 나머지 아이들은 두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얼떨결에 조준을 당한 두 사내가 깜짝 놀라며 아이들을 보았다.
지호가 까칠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뭔데 문 앞에서 저희들을 염탐하는 겁니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횡설수설 답변하는 녀석들이 더 없이 수상했다.

"넷이서 재미 좀 보나 궁금해서 와본 것뿐이야.. 분위기 망쳤으면 미안하고.."

두 사내는 시시콜콜 웃더니 방구석에 앉은 소녀를 아래위로 훑어 봤다.
굉장히 무례하고 기분 나쁜 시선이었다.
아이들은 가족이 희롱 당한 것 마냥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겨 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었다.
이때 빡빡이 형님이 큰방에서 나온다.
갑자기 소란해진 집안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뭐하는 거야? 너희들.. 볼일 본다고 나가더니 집안에서 일보려는 거냐?"

"아.. 아닙니다 형님... 나왔다가 아이들과 오해가 생겨서.."

"오해? 잠잠히 있으라고 했지? 둘 다.. 튀어 들어와.."

"하.."

두 사내는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아이들도 긴장을 놓았다.
하지만 방금의 헤프닝으로 다시금 느낀다.
지금의 동거가 언젠가는 큰 불행이 되어 자신들을 덮쳐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러고 나니 당장 저녁에 잠드는 것부터 불안하다.
결국 아이들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잘 먹지도 못하데 새벽 잠 마저 설쳐야 한다는 것이 예사 큰일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피곤에 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지호는 어떻게 하면 녀석들을 안전하게 몰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야습을 통해 녀석들을 전부 죽여 버리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사람을 죽여 본 지호는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또한 병만과 장윤도 그런 방법은 내키지 않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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