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우리나라로 치면 심청전과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전에 심청스토리를 올리면서 그것이 수련 비법을 스토리화 한 것이라고 언급했었죠? 이런 뜬금없어 보이는 제 해석에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셔서 참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제 백설공주 스토리를 통해 좀 더 치밀한 이야길 해보려 합니다. 그런 때가 온 것 같아요. 인간의 영혼과 육체 간에 있어온 비밀한 역사를 알고픈 분은 자리에 차분히 앉으세요. 수프리모 커피 한잔하시면서 차분히 젖어들어오셔도 좋겠네요.
아름답고 치열한 우화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며 어른을 위한 동화도 아닙니다. 의식의 봉인이 깨어나고 있는 신인류를 위한 비밀문서입니다.
목소리로 들으실 분은 여기서-
글로 보실 분은 계속 보심 됩니다.
스노 화이트-언제 누가 쓴 걸까요?
백설 공주의 스토리에서 초판본과 개정본은 7차에 거쳐 상당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초판본은 너무 중요한 핵심이 그냥 드러나기에 세상은 그것을 억누른 것이고 그 결과 일반인이 받아들이고 깨물어 먹기 좋게 변화된 것입니다.
백설 공주의 저자는 200년 전 독일의 그림형제로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 독일 민담이었으며 저는 그 최초의 영감을 중요시하므로 그것을 골자로 풀어갈 것입니다. 좀 생경하실지 몰라요.
오늘 당신은 왕비입니다. 왕비가 되어 이 스토리의 숨결을 느껴보세요.
백설공주 생모 왕비-타타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어여쁜 왕비는 흑단나무 자수틀을 돌리고 있다가 가시에 찔립니다.
아야!
세 방울의 피가 눈 위에 떨어졌네요.
참 아름답고도 자극적인 서두이지요?
이 장면에서 왕비는 자신이 원하는 아기의 모습을 오버랩합니다.
눈처럼 피부가 하얗고 입술은 저 피처럼 붉고 머리채는 흑단처럼 검은 딸을 낳게 되기를!
백설공주 엄마-딸을 낳고 싶어
그러면 그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바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죠. 고운 딸이 생겼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백설이었답니다. 흰 눈!
당신도 그런 꿈이 있을지 모릅니다. 내 안에 위대한 신성이 깨어나게 되기를 꿈꾸지 않았나요?
진화는 한 존재가 점점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승은 한 존재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일어나지 않죠. 기존의 존재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유충의 꺼풀 속에 나비가 태어나듯이 진화와 상승은 이뤄지지요. 그래서 그것은 늘 아픔을 동반하고 죽음의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준비되셨나요?
당신은 어떤 존재가 되길 바라시나요?
모든 먼지를 벗어난 순결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저 하얀 눈처럼.
당신은 따스한 피가 도는 존재, 그 따스함으로 모든 존재와 공감하고 하나 되어 흐르고 싶습니다. 저 피처럼 말이죠. 그것이 붉음이 주는 아름다움이죠.
당신은 모든 것의 측면을 다 품은 전체성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 검은 밤하늘처럼.
당신이 그런 꿈을 꾸자 그것은 온 우주의 지원을 받게 되었고 이윽고 현실화를 시작합니다.
당신 안에 신성의 빛 한줄기가 심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존재를 백설 공주라 했을까요? 진홍 공주도 흑단 공주도 아닌?
그것이 신성이 육체에 깃든 후에 일어나는 순서입니다.
우선 순결한 백색광이죠.
우주 중심 태양은 당신에게 한 점의 생명광을 쏘아주었습니다. 당신의 몸은 그날부터 신의 불꽃 한 송이를 담은 존재로 커가기 시작합니다.
수십만 년 동안 원시 유인원의 상태로 살던 물질족 인류에게 신의 알이 심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놀라운 진화의 가속이 붙기 시작합니다.
마치 밀가루 죽에 이스트가 한줌 들어간 후 열기와 함께 향긋한 빵이 부푸는듯한 기적입니다.
아기 백설은 어여쁜 소녀로 자라나 일곱 살이 됩니다.
몇 살? 일곱 살…이 아닙니다.
여기서 일곱은 작은 완성을 뜻합니다.
현생인류가 탄생한 것입니다. 아직 은하 인류는 아니지만 그 중요한 도약대에 선 인류가 현생인류입니다. 네! 우리들이지요.
그런데 현생인류가 바로 의식의 초탈을 이뤄내며 은하 인류가 되어버리면 이야긴 간단할 텐데…진화는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죠? 이제 엄청난 도전을 마주해야 합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까요? 실은 왕비는 계모가 아닙니다. 원래 생모인데 생모가 자기 애를 괴롭히는 게 좀 그렇다는 세상의 의견 때문에 계모로 바꾸었다죠.
왕비는 당신이었죠? 당신은 나비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초월을 꿈꾸었지만 아직은 그게 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신성을 둘로 보는 환상에 취해 있거든요.
아닌가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분리감과 결핍감에 허덕이며 쫓기듯 살아가는 생존 모드의 왕비 아닌가요? 백설이라는 신성을 넘의 이야기로 알고 괴리감을 느끼는 그런 존재 아니던가요?
우리가 바로 백설과 하나 되었더라면 우린 샤카무니에게 제바닷다가 되어 대들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겠지요. 그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인류집단의 일입니다.
왕비인 당신은 거울을 보고 묻습니다.
거울은 누구인가요?
나 아닌 남이 모두 거울입니다.
그들을 통해서만 이 나를 비쳐볼 수 있으니까요.
모든 남은 마법의 거울이지요. 남에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묻죠. 나 잘하고 있느냐고. 나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냐고. 아…그들이 나를 전폭적으로 인정해 주고 내게 감동해 주고 나를 칭찬해서 하늘 높이 띄워준다면 난 그때마다 나와주는 도파민 몇 방울에 행복감을 느낄 텐데…그들은 그래주질 않습니다. 너무너무 간지러울 만큼밖에 나를 인정해 주지 않죠. 왜냐하면 그들도 인정에 굶주려 있으니까요. 결국 왕비는 알아차리게 됩니다.
내 안에 언젠가 심어진 그 백색광-신성 크라이스트, 불성이라고도 불리는 그 한 점의 순결한 빛이 결국 내가 이르러야 할 곳이라는 것을.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지고의 존재임을.
그런데 왕비 입장에서는 자기가 더 안전하고 더 믿을만한 존재로 보입니다. 자기 안의 한 점 빛은 아직 발현될 것 같지도 않고 얼핏 너무 어려 보이고 이 격렬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도 않아 보이죠. 무엇보다…우선 이번 달에 카드 금액을 갚는데 그런 내면의 불성 따윈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그런 것은 묻어버리기로 하고 자신이 삶을 꾸려가기로 합니다.
이것이 에고가 삶의 전방에 선 의미입니다. 신성은 죽여버리고 마인드가 전면에 나선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백설-신성이란 죽인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생겨난 적이 없기에 죽음도 없거든요. 그것을 일러 불생불멸이라 합니다. 알파요 오메가라고도 하지요.
백설공주-신성의 빛은 인체 속에서 이리저리 길을 헤맵니다. 신이 다니는 길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신경(神經)이라 합니다. 가다가 멈추어 숨을 돌린 자리를 경혈이라 하지요. 신이 오래 머문 자리는 신의 파동이 남아있기에 에너지 볼텍스가 됩니다. 그러다가 여섯 감각기관을 만나게 됩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생각…그들이 신의 빛을 담게 되면서부터 놀라운 진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 모든 감각기관이 엄청난 대도약의 가능성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 감각기관은 여섯 개가 아닌 일곱 개입니다.
위 여섯 개에 혼각이 더해지지요. 혼각(魂覺)이란 수(受)의식이라고도 하며 반야심경에서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의 두 번째 의식이기도 합니다.
혼의식이 열리면 가시광선 이상의 광선을 보게 되고 가청주파수 이상이나 이하의 소리도 듣게 됩니다.
남이 못 맡는 후각이 발달하며 호흡이 단전까지 감각되는 촉이 열리기도 합니다.
혀의 혼이 열리면 방언이 나오기도 하고 예언이 튀어나오기도 하며 외계어를 발사하기도 합니다.
촉혼이 깨어나면 피부에 파동의 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의 혼이 열리면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눈앞에 펼쳐져서 이도공간 속을 여행하기도 합니다.
에고라는 왕비, 마인드라는 월급바지사장이 몸이라는 회사를 좌충우돌 이끌어가는 사이 신의 불꽃은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육체의 모든 감각과 연결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곱 난쟁이입니다.
그들을 왜 난쟁이라고 했을까요? 신이 흐르지 않는 상태의 감각기관들은 너무나 하찮고 약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눈은 보는 것에 휘둘리며 속고 귀는 듣는 것에 휘둘려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코는 이제 생명의 기미를 더 이상 알아채지도 못하곤 합니다. 촉감은 거칠고 둔해져가고 고통을 피해 달아나며 쾌감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는 동물적 상태를 못 벗어나죠.
생각은 어둡고 침침하여 분리의 악몽 속을 매일같이 떠돌아다닙니다.
그 일곱 난쟁이는 백설을 만나자 엄청난 예감을 느낍니다. 이런 느낌이죠!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귀한 존재네?! 아…..주인이다. 주인이 돌아왔다!’
일곱 감관이 신의 불꽃과 적응해 가는 동안 외부 세계에서 에고라는 왕비는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불안에 떱니다. 본래 주인이 아닌 에너지체가 주인 노릇을 하려니 죽을 맛이죠. 그러면서도 자기를 내면의 신에게 항복하는 것은 더욱 두렵기만 합니다. 마치 수영 못하는 이가 물속에 들어가 몸을 물에 맡기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에고는 일곱 감각기관마저 자기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분노하고 더욱 불안해집니다. 몸은 점점 늙어가는 것 같고 번뇌는 주기적으로 전신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왕비는 이제 자기 존재 목적마저 아득히 잊은 상태입니다. 신이 육체에 안착하기까지 몸의 임시 주인이 되어 최소한의 에너지로 삶을 단순하게 영위하라는 존재 목적을 말입니다. 자기 책임감만이 자동화된 프로세서가 되어 작동하면 또 바쁘게 신들린 듯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걱정합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다 백설 때문이야!
‘이게 다 저 백설공주 때문이야!’
이 말은 뭐죠?
‘영이고 신이고 기운이고 그런 건 애초에 없었어. 우리 인간이 상상으로 지어낸 환영이고 미신일 뿐이었어! 그런 잡스러운 돈 안되고 일생에 도움 안 되는 생각을 다 쓸어버려야 해!’
에고 왕비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것을 모두 비현실로 규정해버리는 우를 범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비현실의 중심에 있는 백설을 완전히 제거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이것은 중세로 치면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 때 한의학과 무속을 전부 미신 나부랭이로 치부해버린 것과 같은 우를 범한 것입니다.
유물이 유심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이것은 신성에 대한 에고의 반란이며 중심 태양에 대한 변두리 우주의 궐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잠깐!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의 어느 시점에 와 있을까요?
당신의 백설은 안녕하신가요?
살아 숨 쉬고 계시나요?
일곱 난쟁이는 잘 성장하고 있나요?
오늘은 여기까지-다음 2편에서 그다음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