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민족경전의 보물 삼일신고의 마지막 단락 진리훈입니다.
진리훈
제가 그 웅대한 말씀에 소소한 토를 달아보는 것은 제 의견이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앎의 견지에서 말씀드릴 뿐이며 제 이상의 경지에 계신 분은 더 발전된 견해가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이 건조한 세상의 명리정의 탁류 속에 자그마한 번득임을 보여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 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몸짓 말입니다.
제 5 장 眞理訓[진리훈]
人物同受三眞(인물동수삼진)
사람과 만물이 다같이 세 가지 참함을 받나니,
曰性命精(왈성명정)
이는 성 명 정이라.
인물이란 사람과 그 외 만물을 뜻합니다. 만물에는 동물 식물을 포함하지요. 사람과 만물이 모두 우주 섭리, 근본대법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아! 당신이 창조된 공간도 있겠지요?
그건 이 협소한 지구의 극동아시아, 전라남도 둔전부락이 아닙니다.
우주의 성결한 공간이며 그곳이 당신의 고향이며 그곳으로 돌아감을 반본귀진(返本歸眞)이라 합니다.
우리가 우주 창조주의 섭리로 태어났으니 그래서 참된 성품 세 가지를 이어 받았지요.
그것을 성명정(性命精)이라 합니다. 우선 성명이라는 단어를 음미해 봅니다. 당신의 성명(姓名)은 어떻게 되시나요? 하는 그 성명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대표성을 가지는 그 무엇입니다.
성은 본성입니다. 지극히 순수하고 흠없는 본성이지요. 이게 남의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의 당신의 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본성은 지금 이 속세에서도 물들지 않았으며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안개구름 같은 미혹에 가려져 있을 뿐. 죽음 따위조차 그 본성품을 훼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여! 안심하세요.
명(命)이라 함은 목숨입니다. 목숨은 육체의 일이니 때가 되면 끊기기도 합니다. 목숨은 다하기도 합니다.
목에 숨이 넘어가고 돌아오지 않으면 내 원신은 이 분자구조의 몸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나지요. 그걸 죽음이라고 합니다. 두려우신가요?
본인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은 그 죽음을 맞이하여 울기도 합니다. 이 몸을 뒤집어쓰고 살던 그 게임에 취해 있었는데 게임 그만하라고 하니 아이처럼 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 알아요?
훨씬 위대한 게임이 당신 앞에 바야흐로 펼쳐질지?
그래서 성명을 같이 닦는 것을 성명(性命)쌍수(雙修)라고 합니다. 성품과 몸을 함께 닦아간다는 뜻이지요. 몸을 낡은 옷으로 보고 벗어 던지는 게 아니라 그 몸도 온전히 정화하여 정신을 담은 채로 온전히 갈 곳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을 닦음을 전하셨지 육체를 닦음을 말씀하지는 않았습니다. 몸마저 버리라고 하여 열반을 주장했죠. 하지만 성명쌍수를 전하는 대법이 세상에 나타났으며 그것은 과거 전대문명 중에 이미 있었고 수많은 대각자를 길러낸 바 있습니다. 정(精)이라 함은 생명의 근원, 씨앗 같은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의 정이 있고 음식물로 섭취한 후천의 정이 있습니다. 선천정은 유전자로 보셔도 무난하고 후천정은 양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오장육부 속으로 스며들어 육체라는 공장을 가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性命精은 만물,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주어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人全之物偏之(인전지물편지)
사람은 온전히 받고 만물은 치우치게 받는다.
동물은 횡행(橫行)이라고도 부르는데 네 발을 이용하여 엎어져 다닌다는 뜻입니다. 머리가 앞에 달려 있죠. 도망가거나 잡아먹기 좋은 구조입니다. 식물은 머리를 땅속에 박고 거꾸로 선 모습입니다. 뿌리가 머리거든요.
사람은 하늘을 향해 바로 선 모습입니다. 그래서 상승할 수 있고 추락할 수도 있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만물의 영장이 될 수도 있고 동식물보다 못한 잡것이 될 수도 있지요. 사람이란 신의 형상을 분자구조 인피(人皮) 속에 품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온전할 수 있고 완전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동물은? 동물은 발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는 본능이 있고 감정도 있습니다. 기억도 하지요. 다만 정화지기가 없습니다. 영성, 영지(靈智)가 없어서 정도 이상 발전이 불가합니다. 여우나 뱀이 오랜 세월을 살아도 영지가 생기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영지가 탐나서 사람의 정화지기를 노리는 것입니다. 그 동물령들이 욕심많은 사람에게 부귀를 조금 주고 정화지기에 빨대를 꼽는 이야기는 아주 흔하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眞性無善惡上哲通(진성무선악상철통)
참성품은 선악 분별이 없으니, 이는 상철로서 두루 통하며,
당신의 성품은 어떤가요?
아니아니 그 후천적 관념 말고 원래의 참 성품 말입니다.
깊이 숨 쉬어보세요.
안개 같은 관념과 사상업력이 쉬어진 자리에 천천히 본래의 순수자기가 드러날지 모릅니다. 그것을 참성품이라 하고 진성(眞性)이라 하는데 우주와 같은 성품이어서 선악의 분별 따윈 아득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잘 보셔야 합니다. 우주는 선악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주는 본래 선합니다. 선악의 분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의식자리를 상(上)철(哲)이라 하며 막힌 바가 없으니 통합니다. 역대의 대성인을 보면 상철입니다. 그래서 세인들이 그들을 본받고자 모여드는 것입니다.
眞命無淸濁中哲知(진명무청탁중철지)
참목숨은 청탁 분별 이전이니 중철로서 다 알며,
목숨은 기본적으로 맑고 탁함이 있습니다. 착한 이는 맑고 욕심 없는 이는 맑습니다. 못된 이는 탁하고 집착 많은 이는 탁하지요. 그런데 참 목숨에 이르면 그런 구분이며 분별조차 툭 떨어진 자리입니다. 그러한 경지를 중철이라 하며 막힌 바 없이 트이니 지혜입니다.
眞精無厚薄下哲保(진정무후박하철보)
참정기는 후박이 나뉘기 전이며 하철로서 잘 보전하라
우리 몸은 유전자에 따라 보기 좋거나 보기 흉하고 음식양분에 따라 통통하거나 마르곤 하지요. 한데 궁극의 몸이라 함은 그러한 후박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이 몸이 완전히 순화된 상태는 투명합니다. 영원히 투명에 가까운 살결이지요. 다만 아련한 색깔이 느껴집니다. 적등황록청남자색 그리고 있는듯 없는듯한 색채가 아롱거리는 몸입니다. 그것을 하철이라 하며 잘 보존해야 합니다.
몸을 잘 보존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미혹의 구름이 쌓이지 않게 공부하고 집착의 끈적임이 쌓이지 않게 수련함을 이릅니다. 삿된 마음을 품지 말고 거친 언어로 몸을 물들이지 말며 이기적 행위로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返眞一神(반진일신)
참함을 돌이키면 다같이 하느님이라.
그렇게 알고 심신을 다스리면 원래의 그 자리가 드러나리니 그것이 반본귀진이며 줄여서 반진(反眞)입니다. 그때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으니 당신 역시 한 신입니다.
惟衆迷地(유중미지)
사람들이 미혹의 땅에 살다보니
그러한 순수생명, 신들이 군체를 이루다보니 조금씩 분리감의 환영에 취하게 되고 아상이 생겼으며 그것이 불안을 야기했고 미혹함을 불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서의 삶이 바로 그 미혹함의 늪 속이기도 합니다.
三妄着根曰心氣身(삼망착근왈심기신)
세 가지 망령됨이 뿌리 박나니, 이는 마음과 기운과 몸이니라.
미혹 속에 푸욱 잠겨 있다 보니 세 가지 거친 것이 몸에 의식에 뿌릴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게 심기신(心氣身)입니다. 쉬운 단어들이죠? 잘 아십니까? 잘 다스리고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지배받고 있지는 않나요?
心依性有善惡(심의성유선악)
마음은 성품에 의지한 것으로서 착함과 악함이 구분이 있다.
나뉘기 전에는 그저 청정무구할 뿐인데 점차 이기심이 창궐하다보니 악이 생겨납니다. 악이 지배하고 남은 부분이 선입니다. 즉 더러워지지 않고 아직 남은 순결한 부분이 선입니다.
善福惡禍(선복악화)
착하면 복되고 악하면 화가 된다.
선은 우주의 본성 중 하나인지라 선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면 복이 옵니다.
악은 우주의 본성을 거스린 바라 악한 마음으로 악을 행하면 재앙이 옵니다. 잘 알고 계시죠?
아는 분은 많은데 삶에 적용하는 분은 좀 적습니다.
氣依命有淸濁(기의명유청탁)
기운은 목숨에 의지한 것으로서 맑고 탁함이 있으니
목숨은 기운인데 그건 맑음과 탁함이 있습니다. 구하는 마음이 경직화되면 그것을 집착이라 하는데 집착이 많을수록 기운은 탁해지며 시커멓게 되어갑니다. 수련이란 근본적으로 모든 집착을 하나하나 놓는 작업입니다.
淸壽濁妖(청수탁요)
기운이 맑으면 오래 살고 탁하면 오래 못삽니다. 기계도 물건도 그렇겠지요?
身依精有厚薄(신의정유후박)
몸은 정기에 의지한 것으로서 두텁고 엷음이 있으니,
유전자의 순서대로 형성된 것이 이 육체인데 그것에는 두터움과 얇음이 있지요.
厚貴薄賤(후귀박천)
후하면 귀하고 박하면 천하게 되느니라.
그래서 예로부터 잘 먹으면 태깔이 좋고 못 먹으면 빈상이라 하였지요. 그건 주로 부모로부터 받아먹은 유전자와 후천적 음식의 영향이기도 한데 사실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법을 섭취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지요. 바른 진리를 잘 씹어 먹고 또 먹으면 삿된 마음따윈 쳐다보기도 싫어져서 자연히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점점 귀해집니다. 귀한 티가 나지요. 그 반대로 억울함을 자주 느끼고 남탓을 하며 생색을 내고 질투에 쩔어사는 반응형 인간은 하염없이 얇아 보입니다.
眞妄對作三途(진망대작삼도)
참함과 망령됨이 서로 맞서 세 길을 지으니,
본성의 참됨이 미혹의 안개를 만나면서 세 가지 길이 생기는데요.
曰感息觸(왈감식촉)
감정과 숨쉼과 감촉이다.
자, 이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轉成十八境(전성십팔경)
이것이 굴러 다시 열여덟 경계를 이루나니라.
3*6=18, 그렇게 열여덟 경계입니다. 3은 정립하는 수요, 6은 현상화되는 수이니 그 수가 18로 분화되는 것입니다. 우선 감(感)이 무엇인지 감 잡아볼까요? 어쩌면 우리 삶에 수많은 번뇌와 고통을 주는 범인을 일망타진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습니까?
感喜懼哀怒貪厭(감희구애로탐염)
느낌에는 기쁨, 두려움, 슬픔, 성냄, 탐냄, 싫음이오,
감이라 함은 감정입니다. 감정이 우릴 요동하게 하지요. 감성과는 사뭇 다르게 우릴 물들이고 우릴 중독시키며 우리 코를 꿰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게 감정입니다.
기쁨에도 젖어들지 마세요. 기쁨이 뜨면 요망함이 일어나고 기쁨이 안정되면 안락해집니다.
두려움에 물들지 마세요. 그 두려움이 두려운 현실을 창조합니다. 당신은 신이니까요.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의 본체는 언제나 슬픔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아득히 넘어선 자리에 말입니다. 슬픔은 착각입니다.
선잠에 깨어난 아기의 울음 같은 것이죠.
성낼 일 이 아직 있습니까? 성낼 일이 느껴 질 때마다 깊이 감사하세요. 그 일은 당신 앞에 다가온 시험의 허들입니다. 도약대이지요.
그것을 사뿐히 뛰어 넘으세요.
당신이 넘어설 수 없는 시험은 오지도 않습니다. 성내면 동물처럼 반응해 버린 것이고 업이 쌓여 더욱 무거워집니다.
성냄을 초월하면 내 업이 일정량 소멸하며 덕으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나는 한 단계 또 솟아오릅니다. 그게 바로 고향 가는 이의 걸음걸이입니다.
탐나는 것들이 있지요?
그게 점점 줄어드는 것이 수련이며 마침내 아무 것도 탐나지 않을 때 당신은 유아독존이며 하늘 위에 우뚝 선 존귀한 존재입니다. 탐 즉 집착이며 그것은 당신을 이 삼계에 붙들어 맨 보이지 않는 거미줄입니다.
싫은 것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자랑질하는 친구가 싫고 무례한 이웃이 싫고 얄밉게 자기만 챙기는 친척이 미운가요?
내 안에 인정에 굶주린 나는 어떤가요? 내 안에 예의 격식 같은 것에 자유롭고 싶은 나는 어떤가요? 나를 좀 더 챙기고 모아서 안심하고픈 나는 어떻습니까?
저 밖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어떤 것들의 반영입니다. 타인은 나의 거울이지요.
그렇게 알 때 당신은 감정을 다스리는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息芬爛寒熱震濕(식분란한열진습)
숨쉼에는 향내, 술내, 추위, 더위, 마름, 축축함이요,
숨 쉬는 것 하나도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몸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지요.
향내는 신계의 연결 통로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제를 지냅니다. 또 한 숨 속에서 향이 느껴지면 그런 타차원과의 통로가 열리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착하지 마세요. 집착하면 또 그 수준에 머뭅니다. 술내는 고층차의 신들이 혐오합니다. 착한 신들을 멀리 떠나 보내고 싶으면 술에 빠지면 됩니다.
숨이 차고 더움은 몸 안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치우침이지요. 건조하고 습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잘 고르면 차분해지고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게 되며 고아한 자태가 유지됩니다. 이른바 깨어있는 숨쉬기입니다. 숨쉬는 비강 바로 위가 뇌하수체이며 숨이 격해지면 바로 뇌하수체에 신호가 가서 흥분홀몬을 분사합니다. 마치 양치기소년의 거짓말같은 효과가 생기곤 하지요. 괜히 지나치게 반응하곤 합니다. 나중에는 숨이 격해지건 말건 무반응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위기상황에서 끝장이 날지도 모릅니다. 뇌화수체가 함부로 반응하면 그 남편 격인 송과체는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송과체는 우리 존재의 원신이 기거하는 성소입니다. 당신의 숨이 평화로워지면 당신이 안락해지고 주변이 편안해지며 세상이 그 평화의 율려에 춤추게 됩니다.
觸聲色臭味淫抵(촉성색취미음저)
감촉에는 소리, 빛깔, 냄새, 맛, 음탕, 닿음이니라.
촉이라 함은 감각을 뜻합니다. 모든 감각이란 결국 접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그 파동입자가 청각신경을 지잉 울린 것입니다. 소리야말로 거의 모든 번뇌의 촉발자입니다. 당신이 본 것보다 당신이 들은 것이 당신을 반응하게 하고 허우적 거리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바른 법을 듣거나 하면 큰 상승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 소리에 익숙해지다보니 고층차의 소릴 듣는 귀는 봉폐되고 말았습니다. 맞죠?
입자가 시각신경에 닿으면 봄이 일어나는데 사람은 본 것에 굉장한 신뢰도를 주고 있습니다. 보아야 믿고 보지 못하면 무반응하고자 합니다. 그만큼 눈이라는 신하를 총애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각이란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요? 멀리 있는 건 못보고 가려지면 바로 못 봅니다. 색안경을 쓰면 왜곡되게 인식하고서도 그것이 맞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그 결과 미시세계를 보는 눈, 온 생명의 진상을 보는 눈, 이치와 인연까지도 보아내는 눈 등은 모두 닫히고 먼지 쌓여가고 있습니다. 가장 싸구려 눈만을 붙들고 애지중지하는 게 세인의 모습입니다.
냄새는 아까 말했듯이 차원계의 미묘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냄새 하나가 고향을 기억나게 하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아시지요? 그리고 당신의 몸 안에서 나는 냄새에도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간의 냄새가 있고 심장이 순화되며 뿜는 단내가 있고 폐가….등등의 냄새들은 내 장부들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일체의 향기와 악취에 담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하다면 당신에게는 천상의 꽃향기가 아련히 느껴지기 시작할지 모릅니다. 담담할 수 없다면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淫)이라 함은 음욕, 정욕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이성간에 접촉에서 유발되는 감각을 이릅니다.
어떤가요? 참 좋습니까? 참 좋다는 것은 쾌감홀몬이 대량 분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건 참 좋은게 아니며 일시적으로 제한적으로 좋은 것이며 그런 좋음은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그 중독은 당신을 끝장으로 이끌어가며 가장 쉽게 당신을 밑바닥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많은 수행자가 그 음욕 앞에 무너져 끝장나곤 했습니다.
저(抵)는 저항입니다. 저항은 반응이며 본능적 행동입니다. 동물적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상승하는 증거는 반응을 넘어서는 모습입니다. 가령 신랑이 나에게 반찬에 대해 지적질 하면 바로 저항감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중생이며 속인이라는 증거입니다.
동창생 숙희가 만나기만 하면 새로 산 집이며 차를 자랑하는 게 정말 혐오감 일어납니다. 네, 당신은 정확한 속인입니다.
반응이며 방어를 초월하기로 해요. 그 길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衆善惡淸濁厚薄相雜(중선악청탁후박상잡)
뭇 사람들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두텁고 엷음을 서로 섞어서
세인들은 그런 감정과 감각에 끄달리며 거친 숨 속에 쫒기듯 살아가죠.
바쁘다고요? 당신은 쫓기며 살고 계신 겁니다. 그런 잡다한 신기루에 말이죠.
從境途任走(종경도임주)
경계의 길을 따라 함부로 달리다가
반응하며 치달리는 삶-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墮生長消病歿苦(타생장소병몰고)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 떨어지고 말지마는
병이고 늙음이고 죽음이고 또 떠밀리듯이 태어남입니다. 결국 그래서는 이 육도윤회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떡할까요? 환웅님! 답을 주실건가요?
앗! 세상에…이제 네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안에 그 승화의 법을 담아주실 수 있는 건가요?
哲止感調息禁觸(철지감조식금촉)
밝은이는 감정을 그치고, 숨을 고르며 감각을 금하여
감정을 그치라-하십니다. 이것은 감정에 끄달리는 쫄보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쁨에 담담하고 슬픔에 담담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심의 경지입니다. 그게 재미없는 경지일 것 같습니까?
어린애처럼 사탕 하나 장난감 하나에 천하를 얻은 듯 환희하다가 천하를 잃은 듯 우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담담함 속에 무수세계가 열립니다. 담담함이란 한없는 감수성의 바다와 같습니다. 진정한 자미(滋味)의 세계이지요.
그게 지감(止感)의 뜻입니다.
두번째- 숨을 고르라 하십니다. 조식(調息)이지요.
저 바깥에는 세상의 욕망의 파도가 세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의 미혹과 함께 요란하게 말이죠. 그런데 당신은 차분이 고요하고 유장하게 숨을 쉽니다. 그 순간 이미 당신은 그 탁류에서 독립된 존재입니다. 영화 속 장면이 아무리 끔찍해도 당신은 그걸 차분히 바라보는 관객이며 그 칼과 총알에도 훼손될 수 없는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세번째-금촉(禁觸)입니다. 당신의 모든 감각-안이비설신의가 접촉한 색성향미촉법에 담담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무너질 듯 난리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감각에 담담하기 쉽지않아서 오만 잡생각이 침노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중합니다. 한 형상, 또는 한 음악소리, 한 주제 등에 집중합니다. 일념을 세워 만념을 제압하는 이치입니다.
그 다음은 入定이며 입정(入靜)입니다. 고요함에 깊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 기본자세가 있으니 다리는 결가부좌하며 손은 결인을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대각자들의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결가부좌가 잘 안 되는 분들이 많지만 요령이 있습니다.
一意化行返妄卽眞(일의화행반망즉진)
한뜻으로 되어 가서 망령됨을 돌이키니, 곧 참이라.
한마음 일념으로 올곧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가끔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다시 일어서서 가야합니다. 이게 바로 역류이며 망령된 미혹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존재의 모습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당신의 고향-당신이라는 생명의 불꽃이 처음 피어난 자리, 어버이가 계신 그 자리, 그 고향으로 가는 장대한 귀로입니다.
發大神機(발대신기)
크게 하느님의 기틀을 발하나니
그 길을 가고 가고 가다보면 개공(開功) 개오(開悟)의 순간이 옵니다. 잠재되었던 모든 권능이 깨어나고 생명과 우주의 진상이 일시에 확 떠지며 드러나는 일대장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性通功完是(성통공완시)
자성을 통하고 공을 이룸이 바로 이것이니라.
이제 당신은 자성을 관통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과위를 가진 것이며 진정으로 육도윤회의 지붕을 박차고 넘어선 위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삼일신고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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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님 생소한 용어도 있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잔잔하고 행복해졌어요. 감사드립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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