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과 무쾌감에 대해서 미하이가 설명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무쾌감(無快感)증으로 시달린다. 무쾌감증이란 문자 그대로 ‘즐거움의 결핍’ 상태를 일컫는다. 이 증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자극을 선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자극의 과잉 포함(stimulus overinclusion)’ 때문이다. 즉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부적절한 자극에 주의를 두고, 그러한 자극이 좋든 싫든 간에 입력된 정보를 처리한다. 이 환자들은 어떤 자극이나 사건을 지속적으로 의식 안에서 유지하거나 혹은 의식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최인수 역, 한울림, 2004, 162면
즉 무쾌(無快)감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정서적 장애인데 '자극의 과잉 포함'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정신분열증의 주요한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를 알게 되면서 먼저 나는 나의 자극 관리 정책(?)이 견실한지 돌아보았고 또 조직 차원에서도 이것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쾌한 조직
무쾌한 조직은 흔하다. 저마다 원인과 양상은 다르겠지만 조직적 정신분열증과 무쾌감이라는 구도로 바라보니 새로운 발견들이 있다. 조직이 명확한 방향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집중하지 못하고 외부의 자극을 분별 없이 수용하는 것을 조직적 자극의 과잉 포함, 즉 조직적 정신분열증이라고 하고 거기서 비롯된 사기 저하나 성취감 결여, 영혼 없음(?) 같은 현상을 조직적 무쾌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직에서는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하게 된 일들, 벌여 놓았더니 포기하기가 아까워진 것들, 누군가 이것저것이 좋다고 해서 시작한 것들에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해야 할 중요한 것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조직은 자극의 과잉 포함 상태에 빠져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무쾌감의 상태에 이르는 것 같다.
이런 조직은 건강하다고 할 수 없고 대단한 일을 할 거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만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아틀라시안의 컨플루언스에서 제공하는 제품 요구사항 정의서 템플릿에는 '이 프로젝트에서 다루지 않는 것(Not Doing)'이라는 섹션이 있다. 자극의 선별적인 유지 또는 제거가 이뤄지지 않는 데서 무쾌한 결과가 예고되는 것이라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의하는 것은 쾌(快) 한 결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 될 것이다.
조직의 자극 관리 기준
그러면 어떠한 자극을 조직의 의식 내에 유지할 것인지 밀어낼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으로 해야 할까. 나는 그것이 조직 안에서 공감된 비전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무엇을 할지도, 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두 거기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일반적인 조직의 관성대로 히포(HiPPO, Highest-Paid Person's Opinion)에 의해 모든 판단이 좌우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히포가 주로 조직에 무분별한 자극을 들여오는 장본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조직에서 누구도 임의로 훼손할 수 없는 공동의 방향을 세우는 것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없어서 발생하는 일들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다.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이 무쾌감에 빠져있다면 자극의 과잉 상태를 의심해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자극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지도. 없다면 만들어야 할 것이고 있는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면 공감의 수준과 품질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