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이 주제에 대해 내가 느끼는 고통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크기 때문에 글을 남겨서 생각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멈춰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멈춰 있는 사람들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모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변화 거부의 양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뼈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뼈대는 자신의 존재를 ‘변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지지할 뿐 아니라 종종 남의 성장까지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괴롭게 한다.
적극적인 무지를 추구한다
이들은 게으르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자신을 변화의 궁지로 몰아넣지 않도록 부지런히 귀를 닫고 자극 요인으로부터 도망치느라 게으를 새가 없다. 또한 자신의 변화를 종용하고 삶의 태도를 반성하게 하는 자극을 마주하면 회피하는 즉시 그것에 대해서 다시는 반추하지 않으므로 굉장히 효율적이다. 마음 한켠에 남겨두고 앓지 않는다. 만약 이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를 과제로 안겨준다면 당신이 그것에 대해 다시 물어보기 전까지 그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들은 삶이 복잡하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부분적이고 단순한 결론을 숭상한다.
또한 진실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생활이란 자진해서 다가오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활을 말한다. 우리가 가진 현실에 대한 지도가 정말 유효한지 확인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의 비판과 도전을 받을 수 있게 자기 지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M.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최미양 역, 율리시즈, 2011, 73면.
남들이 자신의 삶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이들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비슷한 삶의 양식을 선택하길 원한다. 변화 거부는 일반적으로 미덕이 아니란 것을 그들 스스로도 알기 때문에 그 삶의 원리를 정당화해줄 것은 대중의 지지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사고를 남들에게 전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종종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불안정성을 감수하며 성장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특별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게 되면 위협을 느낀다. 그가 자신의 무리들을 계몽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무도 묻지 않았음에도 즉각적으로 자신이 그처럼 살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핑계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또한 그런 삶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사소한 것까지 생각해내서 자신의 동류들과 함께 뒤에서 비판하며 자신의 무리를 더 공고히 하는 재료로 삼는다.
“어떤 생각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그 생각을 더 옳다고 믿는다.” 신도들의 임무는 분명했다. 물리적 증거는 바꿀 수 없으니, 사회적 증거라도 바꿔야 했다. 설득하라, 그러면 너도 설득될 것이다.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황혜숙 역, 21세기북스, 2013, 198면.
해야 한다, 당연하다, 원래 그렇다,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할 때 사용하는 용어는 은연중에 그 판단의 주체를 불분명하게 하는 것들이다. ‘해야 한다’거나 ‘당연하다’거나 ‘원래 그렇다’, ‘어쩔 수 없다’ 등의 표현은 다시 말하면 ‘이 선택은 내가 아닌 다른 주체에 의해 이뤄졌고 나는 그것을 따르기만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언어 습관은 선택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또 자신의 선택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는 상황에서는 ‘나는 그것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바보 같은 규칙을 만든 사람들이 있어 제한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태도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세상에 굳어진 관습들이 있음을 감사한다. 그것들이 있어서 본인에게 선택의 책임이 주어지지 않음을 안도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 중 하나는 이런 사고를 그대로 남에게 가르치거나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 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왜’라고 질문할 때 견딜 수 없어 한다. 그에 대해 대답할 가치 체계가 본인에게 없으므로 분노하거나 권위로 묵살하려 한다.
선택을 부인하는 ‘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다’ ‘하기로 되어 있다’ 등의 말을 쓸 때 우리는 막연한 죄책감, 의무감, 책임 의식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우리 내면의 욕구와 단절되어 행동하는 것이 개인으로서도 불행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마셸 로젠버그, 「비폭력대화」, 캐서린 한 역, 한국NVC센터, 2017, 238면.
성공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이 변화를 거부한 채 멈춰있는 지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성공의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스스로 성공했다고 느꼈던 그 어딘가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길 포기한 것이다. 나는 많은 노인 남성들이 여전히 군대에 매료돼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겐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만 주어질 수 있었던 절대적인 권위와 복종의 경험을 성공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개인적인 의미를 주는 사건들과 취업이나 승진과 같은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들을 거치고 나면 누구나 뿌듯한 맘이 들지만, 거기서 그대로 멈춰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안분지족하는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 도취된 나머지 그것을 남들에게도 주입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만 할 때는 말이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바로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정신적으로 나이를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육체적으로는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서 결국 노쇠해서 죽기 마련이지만, 인간은 정신적으로 성장을 멈출 필요가 없다. 대체로는 까맣게 잊고 살지만, 끊임없이 달라지고 모양을 바꾸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M.스캇 펙, 「끝나지 않은 여행」, 조성훈 역, 율리시즈, 2011, 165면.
멈춰 있는 삶도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지만, 이들이 자신의 변화 거부로 인해 소외시키는 삶이 본인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좌시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성장을 고민하기 전에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어떤 종류의 선택이든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