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격

in kr •  6 years ago 



엄마는 8년 전 어느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었다. 몇십프로가 사망하고, 또 몇십프로는 평생 휠체어에서 반신불수로 살아가야 하는 뇌졸중이 원인이었다. 그날 응급실에서 진단을 받고 엄마는 울었다. 하지만 그 날이 내가 본 엄마의 마지막 울음이었다. 이후로 엄마는 수 년간 특유의 초긍정적 마인드와 불굴의 의지, 그리고 나머지 99%의 행운까지 더해져서 기적적으로 몸의 기능을 70%정도 되찾았다. 혼자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은 물론, 자유의 상징인 외출을 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절뚝거리는 걸음, 어딘가 어색한 손놀림 등 자신과 '다른 점'을 귀신같이 포착하여 기꺼이 응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행인들의 시선에서 엄마가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55년만에 그 특유의 노골적인 시선을 알게 되었다.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한국은 장애인을 부끄럽고 불행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껏 낮잡아 본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장애인이 요구하면 그것을 시혜나 혜택으로 여기고 대단한 생색을 낸다. 나는 매년 장애인들이 명절마다 고속터미널에서 시위하는 것을 언론으로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애인에게 주어진 버스는 언제나 한 대도 없다. 돌아가신 박종필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제목이 오죽하면 <버스를 타자> 일까.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임금을 인상하라>, <정규직을 보장하라>도 아니고,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투쟁 다큐멘터리로서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이 나라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볼까. 장애인이 아니고서야 모를 일이다.


이것은 엄마에게 들은 말이다. 엄마가 재활병원에 입원했을 때 외출해서 지하철을 타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평지, 계단을 거쳐 병원 주위를 한바퀴 돌 수 있게 되자 이제 대망의 지하철 코스가 남은 것이다. 엄마는 용기를 내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엄마는 왼쪽 뇌가 손상되어서 오른쪽 몸이 불편하다. 그래서 계단을 이용할 때 항상 왼쪽 난간을 잡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측 통행이 아닌가. 엄마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올라오는 한 여성과 마주쳤다. 길이 막힌 여성은 엄마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들리는 말로 짜증을 냈다.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다.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한 후에 내뱉는 말이라는 것을, 그 뉘앙스를 엄마가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왜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라는 그 여성의 말을 듣고 나서, 엄마는 찰나에 수만가지 생각을 했다. 사과할까. 아니면 그냥 모른척 지나칠까. 엄마는 결심했다. 이 순간을 그대로 지나치면, 좀처럼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반경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데시벨로 그 여성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병신이라 그런다, 이 개같은 년아!" 여성은 놀라 허겁지겁 사라졌다.



slogo.jpg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멋져부러요. 제가 다 시원합니다.

어머니가 욕을 참 찰지게 잘 하시거든요..

그 여자의 일생에 남을 따끔한 일침도 되었길..
저희집도 장애 등급 받은 식구가 있어요. 참. . 속시원히 읽었습니다.

글이라도 시원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 배려심 없는사람은 그런 대우를 받아야
맞습니다.!! 엄마 화이팅^^

  ·  6 years ago (edited)

다니다보면 도시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아요. 옆동네 일본만 가더라도 어느 장소에나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거든요. 빨리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생각해보니 거의 그런것 같아요.!!

조금전에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받는순간 기분이 너무 좋았고 빨리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손편지엽서 고맙습니다.

오쟁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좋은일 많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오쟁님을 만나게 되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항상 즐거운시간 되세요^^

받으셨군요! 엘로캣님도 새해에도 많이 파시구요 ^^ 건강하세요 고양이들과 함께요.

저도 받은 책 포스팅 했습니다. ㅎㅎ

  ·  6 years ago (edited)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유튜버가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이신데, 추천해드려요. 세바시에도 출연하셨고 다큐도 찍으시고 책도 내셨어요. 장애에 대한 돌봄을 그 가족에게만 오롯이 부과하는 관점과, 그런 관점을 가진 사회를 상대로 맞서싸우며 정말 열심히 사는 분이세요. 더군다나 어제 <배워서 남줄랩 시즌2> 열세 번째 이야기 마지막 강연자로 동생과 함께 출연하셨답니다.
https://www.facebook.com/haemeong

혜영언니 혜정언니도 정말 멋진 분들인데, 오쟁님 어머니도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스모모님 역시 저랑 통했네요. ㅎㅎ 저 이분이 만든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작년 말에 봤는데 저의 인생 다큐였어요. 저도 세바시 비롯 유튜브를 몇몇 봤는데 정말 개인적으로 존경할만한 사람인것 같아요.

보셨군요!!
맞아요. 이 선배님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분이세요.
알고 계셨다니 진짜 기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