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조언에 관하여

in kr •  7 years ago  (edited)

우연히 “말하는대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 채사장의(이하 ‘작가’라고 한다) 짧은 강연을 보게 되었다. 무려 1년 전에 방송된 재방송이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여 채널 돌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침 ‘작가’는 왜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여행 중 큰 교통사고로 함께 있던 동료의 죽음을 지켜 본 경험으로 꽤 긴 시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했다. 그리곤 자본주의 사회안에서 얽매인 삶이 아닌,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쓰고 강연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작가’는 비록 현실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큰 벽으로 다가와도 세상에 맞춰 살아가지 말고(가족의 기대 등) 본인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보라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다.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좋은 강연이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로 인하여 분업화된 사회안에서 소외되고 있는 지금 세대의 모습을 짚어 준 것은 매우 통찰력있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왠지 또 한편의 자기계발서를 읽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맞춰 살아가지 말고, 타인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다보면 행복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위와 같이 말들이 위로가 아닌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작가’는 교통사고로 인해 죽어가는 동료를 지켜보며 막연하던 죽음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고 나서부터 본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하였다. 나도 ‘작가’와 같이 죽음이라는 막연했던 단어가 암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 나는 삶에 대해 가장 자신이 있던 시기였다. 실패를 두려워 하기엔 어렸고, 무엇인가 이루어 내겠다는 패기도 넘쳤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은 삶을 한 순간에 멈추게 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털이란 털은 다 빠져버린 채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병원 밖의 세상은 마치 다른 행성 같았다. 나의 시간은 멈췄는데 세상의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시간과 맞춰 살아가던 때의 나는 세상의 중요한 일부라 여겨졌었다. 오직 자아라는 앵글에 비춰진 세상만을 보고 살아가던 시기였기에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세상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털이 없는 인간으로  털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병원 밖 세상을 바라보니 그 동안 큰 착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시간은 고장나 멈춰 있는데도 세상의 시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알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 당장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세상에 흘러 넘치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존재의 보잘것 없음을 인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왜 하필 내가 병에 걸렸을까라는 울부짖음에서, 나라고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내가 중심이었던 나의 사고가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향하였다. 지금 당장 사라져 세상의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미약한 인간이었을지라도 나를 평생 기억해줄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내일 당장 끝이라고 하여도 기억할 추억을 만들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였다. 세상이 있어 내가 있었고, 그 세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다보니 꼭 죽지말라는 법도 없는 것처럼 살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인지 항암치료를 모두 마치고 완치되었다. 그리고 다시 털 있는 사람으로서 세상의 시간에 맞춰 살아온지 이제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의학기술의 발전이 아니라면 받지 못했을 덤과 같은 필자의 삶은 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치료를 받고 난 뒤,  사람다워 질때까지 생긴 내 삶의 공백의 시간은 오로지 스스로 다시 쫓아가야만 하는 세상의 시간과의 간격이었다. 일을 시작하기에도 공백의 시간은 걸림돌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였고,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도 잦은 좌절로 한 풀 꺽였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온 현실이 혹독하지만은 않았다. 필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전에 생각하지 못한 직업이지만 일을 시작하기도 하였고, 더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세상의 시간에 다시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내왔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온 세상에서 나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다보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살아가다가도, 그 고통을 잊게 만드는 행복한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말이다. 


물론 '작가'의 강연 주제처럼 한 번 살다가 갈 인생이라면 타인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멋지다. 본인이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 와 같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세상에 인정을 받아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간다면 그보다 성공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 신경 쓰지말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보세요'라는 말은 조금은 아쉽게 다가온다. '작가'와 같이 본인이 하고 싶은 글을 쓰며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떻게 세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우연히 찾아온 삶에 대한 조언에 관한 작은 나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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