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4월의 금요일, 그 남자와 나는 대학 교정의 어느 벚나무 아래 벤치에서 만났다. 일종의 면접이라서 남색 정장 원피스를 차려 입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그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나와 맞추기라도 한 듯, 같은 남색의 말끔한 정장에 점잖은 분위기의 노신사였다.
정식 면접일은 다음주 월요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 주 일찍 따로, 그것도 벚꽃 흩날리는 야외 벤치에서 만나자고 했다. 면접은 부총장과 함께 치러야 했으므로, 자기가 편하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대학의 출판부 부장이었다.
내가 나온 대학의 출판부에서 경력 직원을 뽑는다고 했다. 가끔 그런 자리가 드물게 생기는데, 아직 대학원에 남아 있는 친구의 귀띔으로 운좋게 소식을 들었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대학의 교직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모니터에 주식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A4 종이로 반쯤 가린 채, 졸업예정자의 질문에 짜증을 내던 입학처의 직원이 아직도 기억난다. 알고 보니 ‘교직원’이란 교원(교수)과 직원을 합친 말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학교의 직원’이라서 ‘교직원’인 줄만 알았다.
야외 면접에서 출판부장은 모세5경에는 뭐뭐가 있냐, 직접 조판을 할 수 있냐, 등의 질문을 던지고 나서 나의 답변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전에 다녔던 소규모회사들에서 돈이나 제대로 받았냐고,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며 버젓하게 일해보라고 했다.
다음주에 부총장과 면접을 봤다.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향수 냄새 짙게 풍기며, ‘나는 권력을 가져서 너무나 자랑스러워!’라는 카리스마를 온몸으로 내뿜는 신학과 노교수였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커프스링크를 소매에 한 사람을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내 주변에서도 커프스링크를 쓰는 사람은 모두 신학과 출신인 것 같은데...
기독교계 학교라서, 기독교 신자임을 대충이라도 증명해야 직원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단 들어와서 오랜 세월 일하다보면 대부분 나이롱이었던 신자들도 독실하게 변모한다고 했다. 특히 독실한 신자인 부장은, 우리 부서에서는 아침마다 예배를 볼 터이니,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오라고 했다. 그리고 책을 편집할 때는 ‘하나님’이라는 글자가 행갈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