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시기획사에 들어갔을 때, 덕수궁 인근에 자리잡고 있던 회사는 역사교과서에서 들어본 듯도 한 건물에 세들어 있었다. 고색창연한 석조 건물 내부는 계속 리모델링을 했겠지만, 요즘 것이 아닌 구조와 좁디좁은 공간 구획은 어쩔 수 없었고, 밤늦도록 일하다보면 으스스한 기운이 사방에서 뿜어나왔다. 당연히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압권은 화장실이었다. 옛날엔 건물 내에 화장실이 없었을 테니 아마도 그곳은 원래 그냥 ‘방’이었을 것이다. ‘방’으로서는 좁디좁았지만 1인용 화장실로서는 꽤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변기와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바닥은 짙은색 타일로, 벽은 푸르스름한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대낮에도 그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문을 닫고 일을 보자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온 세상과 격리된 듯한, 그러면서도 방 안에 나 혼자 있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날은 목을 옥죄는 기괴한 느낌을 견디다 못해, 바지도 제대로 입지 않고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옆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뭔가 대화라도 시도해 볼걸 그랬나 싶은 싱거운 생각도 들지만 그땐 꽤 무서웠다.
만일 그 방에 정말 귀신이 산다면, 그(녀)는 아마도 꽤 귀골일 것 같았다. 이런 유서 깊은 건물에는 그런 사람들이 드나들어왔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 이 전시기획사가 그 건물을 사무실로 선택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미술계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이 회사의 풍토를, 새로 들어간 직원 입장에서 따져보았을 때 또하나의 특징이 있었는데, '텃세'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직종이 몇 있다고 들었다. 문과였던 내 주변의 업계야 대부분 저소득이지만, 그래도 직업적 긍지가 높고 (여자들 사이) 경쟁이 치열한 직종들이 그렇다고 알고 있었는데, 전시업계도 그런 것 같았다.
일단 업무적 소외나 방해, 잡무 미루기 등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긴 했지만, 당분간만이라면 감수 못할 바도 아니었다. 다만 옷차림이나 취향에 대한 교묘한 비아냥거림에는 깜짝 놀라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름 공부 할 만큼 하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알만큼 아는 양반들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안 되겠다 싶던 날들이 쌓여가던 중, 마침내 기존 직원들의 술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일이 생겼다. 안건은 '컵씻기'였다. 환경 관련 전시회도 꽤 수주 받아 하는 회사였으므로 종이컵을 쓰지 않고 여기저기서 생긴 머그잔들을 모아 개인컵과 손님컵으로 사용하는 게 방침이었다. 그런데 손님컵은 물론 개인컵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탕비실 개수대에 쌓아두었다가 매일 당번을 한 명씩 정해 설거지를 하기로 돼 있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현대적인 회사지만 사장에게까지 설거지를 시키기는 뭐하니까'라는 논리였다. 거기까지는 나도 대충 수긍을 하겠지만, 그렇다면 사장의 컵과 그의 손님의 컵만 당번을 정해 설거지를 하고, 다른 직원들은 각자의 컵을 각자가 설거지하면 되지 않나? 나뿐 아니라 새로 들어온 경력직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자라났다.
게다가 아무도 노골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최고참 직원이 정한 '설거지 당번 순서'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고참 직원과 신참 직원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당번이 되도록 순서가 매겨져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고참 직원들은 고참 직원이 설거지 당번일 때는 컵을 내놓지 않다가 신참 직원이 당번인 날에만 몰아서 내놓는 거였다.
어느날 나는 회사 직원 전체에게 이메일을 돌렸다. 물론 온화하게 평등주의를 내세우며 의심스러운 정황에 대해서는 아주 우회적으로만 암시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너희 교양있는 척하면서 지저분하게 이럴래?'
최고참 직원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당번표를 찢어버리고 앞으로는 자신이 모든 설거지를 도맡아하겠다며 저녁마다 요란하게 설거지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 새 직원들은 앞으로 자기 컵은 자기가 씻자고 결의했다.
나중에 사장이 나를 불러, 자기가 그런 부분까지 신경 못 썼다며, 미안하다며, 하지만 지금의 고참 직원들은 회사가 초기에 어려울 때, 몇달씩 월급을 안 받고 심지어 카드 대출을 받아 회사 운영비를 보탰던 직원들이므로, 편을 안 들어주기는 어렵노라고 양해를 구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회사가 근처에 신축된 새 건물로 이사를 갔다. 1층에는 당시 유행을 시작한 이른바 '식물 인테리어 카페'가 들어서고 우리 회사가 빌려 쓰기로 한 3층에는 널찍한 테라스 공간이 있었다. 사장은 당시 막 유행이 시작된 검은 각파이프에 집성목으로 된 나무 책상을 맞추고 역시 검은 각파이프에 간유리를 끼운 칸막이를 만들어 사무실 인테리어를 했다.
문제는 이사였다. 업무 일에는 이사를 할 수 없으니 주말에 이삿짐을 나르며 직원들이 모두 출근을 해야 했고 당연히 특근비는 없었다. 안 그래도 전시기획사이다보니 주말 근무가 잦았는데, 거기다가 두어 달에 한 번씩 주말 대청소에도 당연한 듯 동원되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고참 직원들은 여행이다 뭐다 개인적으로 사장에게 허락을 받아 조용히 빠질 때가 많았다. 물론 신참들은 그럴 생각 자체를 못했고 말이다. 요즘 같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 문제는 내가 1년 후 퇴사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