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nailed by two columnist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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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쓰고 싶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 episode가 있어 그 시절 email들을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다 잊고 있던, 기겁할 내용들을 많이 발견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건, 당시 내가 주변 지인 거의 모두에게 email을 보내 sex column을 써달라고 졸라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글들을 무단 번역해서 싣는 게 주 content였지만, 문화웹진이 그랬던 것처럼 섹스웹진에도 국내 필자가 필요했다. 한국 사람이 쓴, 고급스럽고 급진적이며 생생한 체험기가 절실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을 총동원하고 친구의 친구들까지 수소문하여 글을 써보라고 부추기는 email을 보냈다. 나의 지인들은 비교적 얌전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워낙 색다른 일이다보니 흥미를 느끼며 어찌어찌 글을 써보낸 경우가, 기억보다 많았다. ‘아, 맞다... 얘가 그때 이런 글을 써서 보냈었지...ㅜ.ㅜ’

그런데 글의 수위가 너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어떤 email에서 나는 내 친구의 친구에게, 당신이 보낸 샌프란시스코 다리 밑 클럽 키스 체험기는 너무 약하니, 섹스를 한 걸로 내가 고쳐 써서 올리겠다, 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며 살아온 건지,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수위를 높이려다 보니, 야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글들을 주로 받아 화면을 메꾸는 수밖에 없었다. 창피했다. 독자들에게 돈 받고 보여주기도 미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료 결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최고의 남녀 필자가 하나씩 나타났다.

먼저 여자 섹스 칼럼니스트가 등장했다. 신문사 기자였는데, 대체 무슨 심경인지, 자기 주변 지인들의 성 경험을 소재로 칼럼을 쓰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물론 글쓴이의 정체는 기밀이며 가명으로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로, detail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등장인물들의 profile은 다양했고 이야기 속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결이 돼 있어, 실제 인물의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수집한 것임을 의심하기 힘들었다.

우리 회사 직원 모두가, 그녀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늘 email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내가 한 번 그녀를 만나서 대접하기로 했다. 그녀는 다른 (남자) 직원들은 아무도 나오지 말고 오직 나만 나오라고 요구했다. 부끄러워서 그러나 했다.

그녀와 밥을 먹고 술도 약간 하면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사이였으니 딱딱함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내가 슬슬 칼럼 얘기를 꺼내며, 소재들은 어떻게 수집한 거냐고 물어보려는데, 그녀가 고민스러운 듯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연애도 잘 안 되고 연애를 해도 성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것이다. 너무 속상해서 주변 사람들과 상담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love life에 대해서도 물었다.

처음에는 나라고 뭐 별거 있겠냐, 대답을 대충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사례라도 들어보면 뭔가 해결 방향이 생길 듯하다며, 살살 구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있는 경험 없는 경험 샅샅이 털어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경악했다. 그만 일어나자는 그녀의 말에 멍하니 따라 일어서며, 뭐에 홀렸다 깨어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다음 칼럼의 소재는 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편, 우리 웹진 최고의 남자 칼럼니스트는 couple-swapper였다. 그는 철학자이자 작가이며 자유인이고 계몽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그런 title들을 모두 비웃고 부정하는 행동가였다. 우리 webzine의 글쟁이들은 모두 그의 글에 푹 빠졌고 더욱 많은 글을 부탁했지만, 그는 몇 편밖에 보내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그런 글들을 쓴 이유는 글에 달린 email 주소를 보고 swapping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료 webzine이다보니 독자 수가 많지 않았고, 아마 별 의미 있는 연락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그는 서너 편의 글을 끝으로 이 말만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원고 말고 다른 방면의 주선을 원하시면 언제든 연락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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