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25오늘의서울시] 우리가 상상했던 서울시에 대해

in kr •  6 years ago 

[오늘의서울시] ‘노회찬의약속’이 그렸던 서울시, 아직 오지 않은 희망의 도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나는 진보신당이라는 조그만 정당에서 서울시당이라는 지역지부의 정책기획국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8년 전이니 막 30대 중반을 거치고 있었고 당직자로서의 생활은 6년차가 된 시점이다. 이게 참 애매한데 연차로 보면 꽤 경력이 쌓였으나 당 안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고 성장했기 때문에 크게 역할이 바꾸고 그러지 않았다.

아마 나에게 서울이라는 지역의 정치를 떠올리면 가장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정책을 담당했어도 사실 말단이어서 선거운동기간 내내 한 것이라곤 각종 단체, 언론사 등에서 쏟아진 질의서의 답변서를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아침에 눈이 떠지고 난 후, 클라우드 드라이브에서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쳐보았다. 거기엔 2010년 선거 당시에 생산했던 거의 모든 문서가 있었다. 맞다. 나는 선거 직후 선본에서 내가 사용했던 컴퓨터를 반납하기 전에 보관용 백업을 하고 또 별도의 저장물을 챙겼던 거다. 그 사이엔 ‘노회찬의 약속’이라는 책자의 화일도 있다. 서울시장 선거를 나가면서 만들었던 정책공약집이다. 판매를 했었고 초판정도는 좀 넘게 팔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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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자료집을 만든 분은 따로 있다. 이제는 따로 연락을 드리는 것이 죄송할 정도의 권oo 당원이셨는데 그 분의 감각이 이것을 만들어 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정책 과제 몇개를 작성하고 소요 예산에 대한 추계와 방법을 단 것 밖에 없다. 많은 것들이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0쪽이 살짝 넘는 내용이었는데 맨 뒤에 개조식으로 공약의 내용을 정리해놓았다. 당시 시장이 오세훈이었기 때문에 ‘하겠다’는 공약 외에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별도로 잡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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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선거전략상 보육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진보적 3-40대를 타겟팅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맨 앞엔 그 정책이 있었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해’ 보이는 내용들이 있지만 그 땐 그렇지 않았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과 맞춤보육, 공기질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가장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책은 ‘일과 여가의 조화’를 내건 휴 프로젝트다. 노동시간 단축, 휴가비 지원, 공공도서관 확대, 천만인의 오케스트라라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문화시설에 대한 통합관람권... 이 중 몇개는 이후 도입되기도 했고 여전히 안되는 것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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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집, 건강을 지방정부의 역할로 조명한 세번째 공약은 아마 가장 현재성을 갖는 내용일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진보신당의 핵심 의제였던 탈핵과 더불어 제시된 지역 에너지 공약이 있다. 지금이야 노동, 건강, 에너지가 지방정부의 일로 생각되지만 2010년 당시만 하더라도 ‘그건 중앙정부의 일이 아니냐’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이야 당연히 사용하는 사회주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주택의 탈시장화를 분명히 했다. 뉴타운 재개발에 대해선 전면 중단을 걸었다. 그리고 다른 대안사업으로의 전환을 공공투자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강의 수중보를 철거해 한강 재자연화를 하고 탄소감축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대안에너지 생산을 돕기 위해 서울형 발전차액제도를 도입해 추가적인 유인구조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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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정보의 공개를 강화하고 참여예산제 도입을 약속했었다. 도시계획위원회 등 주요 위원회에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화하고 시민참여를 보장하기로 했다. 또 별도의 ‘반차별조례’를 만들어서 적극적인 시정조치가 가능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다.

공공 R&D 센터를 만들어 지원하고 종로통 자체는 역사문화벨트로 묶어서 현재 세운상가 주변에 공공문화시설을 설립하려고 했다. 또 종로통의 층고 제한을 해서 종로거리 자체가 보행 중심의 서울 중심 가로로 만들고 싶었다.

하고 싶었던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안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시청과 광장에서 시민을 쫒아내지 않겠다는 것, CEO 시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 뉴타운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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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세훈 시장이 하겠다고 했던 오페라하우스, 디자인 서울 그리고 이제서야 사회적 논란이 되는 지하도로 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중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한강운하는 여전히 여의도 수변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살아 있고 지하도로는 외려 다양한 지하개발로 확대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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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당시의 서울공약은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우리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4년간 싸워가면서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의 경계로 생각했다. 아마 개인적으로는 이 내용들이 이후 서울에서의 정치활동에 근거가 되었던 것 같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진보신당 후보들은 굉장히 심한 따돌림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양자 구도로 만들어진 판세에서 서울의 노회찬와 경기의 심상정은 1위와 2위 사이의 미세한 변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을 앞세워 했던 선거는 행복했다. 지금까지 그 정도가 가장 구체적으로 가장 높게 잡혔던 가능성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때의 주요 정책은 이후 진보신당이라는 작은 정당이 서울이라는 지역 내에서 지속적인 정치활동을 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물론 이 때의 선거빚을 갚기 위해 1년 가까이 서울의 당원들이 힘들었고 이후 ‘노회찬으로도 안되는 정치구도’를 확인하곤 세력 통합 방식의 몸집 불리기의 알리바이가 되기도 했다.

앞서도 썼지만 내가 이 선본에 크게 기여한 바는 없다. 하지만 하나의 거의 ‘완벽한 팀’으로서 했었던 선거이자, 노회찬이라는 프론트 맨의 영향력 하에서 하고 싶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던 때였다는 기억은 남았다. 이후 나는 그와 같은 팀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하지만 2010년 종로의 그 선거사무실에서 꾸었던 꿈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의 사라짐이 슬픈 건 다시 그때와 같이 현실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우리의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멀리 연기되었다는 실망감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도 포기하지 않았듯이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2010년 함께 꾸었던 서울의 모습은 시간에 발맞춰 실현되고 또 새롭게 갱신될 것이다. 약속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것 밖에 없다.

여전히 나의 마지막 서울시장 후보인 노회찬의 명복을 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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