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서울시] 의미없는 조례들만 만들어 지다: '인센티브'만 가능한 자치조례의 양상들
지방자치의 주요한 축이라면, 관 내의 주요한 행정사무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치행정권, 그리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부과하고 조성할 수 있는 자치재정권, 그리고 해당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규제와 인센티브를 적용할 수 있는 자치법률권을 들 수 있겠다. 특히 2008년 이후 소위 혁신지방정부의 실험들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이런 변화가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적인 중앙정부와 갈등을 야기함으로서 '사회적 상상력'을 촉발시킨 것을 기억한다면 지방자치라는 건 단순한 관념적인 원리를 넘어선다.
개인적으로 재정에 대한 독립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자치법률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법률이란 것이 해당 사회의 룰을 의미한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규정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으냐는 자율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가 가지고 있는 자치법률권은 편향적이다.
편향적인 자치법률권
현행 자치법률권이 편향적인 이유는 '현상유지'를 강화하는 방식의 인센티브 구조 밖에는 가지지 못하는 한계 탓이다. 이를테면 현행 지방자치법 상의 규정은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하다.
제22조(조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자치법률인 조례의 내용은 인센티브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니까, 융자를 해주건 지원을 해주건 한다. 문제는 그럼으로서 상대적으로 침해되는 이해관계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고려가 없다. 이것은 반대로 생각해도 그렇다. 규제를 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주민의 편익이 크다면 이를 '침해'로만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없다. 사례를 통해서 보자.
지난 9월 14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는 총 33개의 조례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면 서울시장에게 이송되어 조례규칙심의회를 거쳐서 공포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위의 조례들은 10월 4일에 공포될 예정으로, 별다른 규정이 없는 한 공포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33개의 조례 중에서 개인적인 관심사에 맞춰서 3개의 제정안과 1개의 개정안을 골랐다. 통과된 전체 의안이 궁금하면 서울시의회의 처리의안 목록을 살펴보도록 하자(http://www.smc.seoul.kr/info/billTransactList.do?propTypeCd=&generationNum=&billNo=&billTypeCd=&billNum=&pageIndex=1&menuId=006004001&boardTypeId=&schCsel=*&pageSize=30&url=%2FbillTransactList.do&schText=)
(1) 프리랜서 권익보호 조례(제정안)
첫번째로 살펴볼 조례는 프리랜서 조례다. 이 조례는 상위법의 근거없이 서울시의 자체 제정 조례로 아마 전례가 없는 조례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례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간소하다. 총13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조례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제9조의 '공정거래 지침'을 정하도록 한 것과 제10조로 '공정거래 지원센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원래 발의안에는 '공정거래 지침'을 제정하고 이를 서울시 및 산하기관 등의 계약과정에 적용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해당 계약을 '해지하도록' 해두었다. 그러니까, 공정거래 지침이 있고 이에 따라 계약을 했는데 과정에서 지침을 위반한 사유가 있으면 이를 해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이 딴지를 걸었다. 앞서 말한 '강제 조항'이 조례의 위임범위를 넘어선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해당 내용이 하도록 한 강제규정에서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정말 문제가 있다. 일단 판례에도 맞지 않는다. 이를테면 진주시와 진주시의 위탁에 따라 생활폐기물을 수집하던 위탁회사와의 소송에서 쟁점은, 애초 계약에 없던 '사후정산 의무화' 규정을 강제한 것이다. 그랬더니 위탁회사가 소송을 제기했다. 2심까지는 위탁회사가 승소했으나 최종심인 대법원에서는 진주시가 승소했다. 법알못 이지만 간단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자세한 내용은 판례를 직접 보도록 하자 http://www.law.go.kr/LSW/precInfoP.do?mode=0&precSeq=193387).
- 민간위탁 관계는 공평한 사인 간의 계약관계를 전제로 함으로 협약의 갱신은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 '민사법 대상'이다
- 적용되는 내용이 피해로 보인다 해도 그 정도와 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취지를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즉 사후 정산 의무규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프리랜서 권익보장 조례의 사항도 여기와 다르지 않다. 애초 지침에 근거해 계약을 했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이를 해지할 수 없다니 무슨 공공계약은 한번 계약하면 끝나는 노예 계약도 아니고. 문제는 이런 '전문위원'의 지적에 대해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의회의 의원들이 판례나 법리 해석 없이 그냥 해당 규정을 수정했다는 점이다. 에효효.... .
다음으로 공정거래 지원센터의 경우에는 원래 독자적인 센터로 건립되는 모양이었는데 이 역시 전문위원의 지적에 따라 기존의 권익보장센터의 내용으로 통합될 것 같다. 기존의 노동권익센터가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특징이나 사례들을 모으고 살펴보긴 했다. 하지만 노동권익센터가 프리랜서 권익보장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적극적인 문제해결에 나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국내 최초의 조례라는 가능성 하나는 확실하게 남았다.
(2) 청년창업지원 조례(제정안)
이 조례는 심의 과정에서 한 부분이 수정되었다. 그것은 청년의 범위에 대한 것이다. 원래는 29세 이하로만 잡았다. 현행 <청년고용촉진법> 상의 청년은 15세에서 29세까지다. 그런데 이렇게 잡을 경우에 창업 대상로는 정책 범위가 너무 작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전체 창업자 중에서 29세 이하의 창업자 수가 2%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해당 청년 규정을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시행령>을 근거로 39세 이하로 잡았다. 이 정도 하니 15% 이상이 된다. 여전히 청년과 관련된 정책은 한계가 많다. 아쉬운 것은 이를 현황에 맞춰 39세 이하로 잡은 것이다. 오히려 29세 이하의 실업률에 비춰 저조한 창업률은 그만큼 청년층의 창업에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1.4%에 불과하다면 이를 3%로 만드는 지원 정책은 의미있다.
이 역시 시의원들은 전문위원의 쓰잘데 없는 지적에 대해 반론없이 수정해 통과시켰다. 언제까지 39세의 아저씨들을 청년이라고 치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20대의 청년들은 계속 기성세대의 종속 변수로만 남게 될 것이다.
(3) 의료관광활성화 지원 조례(제정안)
솔직히 이 조례는 정말 의미없는 조례라고 생각한다. 일차적으로는 이 조례가 없다고 해서 의료관광에 저촉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조례의 핵심적인 내용은 의료관광 협력 병원과 의료관광 업자에 대한 융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협력병원으로 삼은 곳은 주요한 종합병원을 제외하면 이런 곳이다. 죄다 성형외과들이다.
그리고 이런 의료관광은 보건복지부에 등록한 의료관광업자만이 알선할 수 있다. 그들은 대략 이런 곳들이다.
(4) 청년주택 조례(개정안)
마지막으로 청년주택 조례다. 사실 역세권 청년 주택은 민간주택업자에 대한 지원이지 청년에 대한 지원정책이라고 보긴 힘들다. 실제로 주거 빈곤에 놓인 청년계층들이 이렇게 공급되는 청년주택에 적절하게 입주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아마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면 공실이 생길 것이고 민간업자들은 서울시에 일반 임대를 하게 해달라고 징징댈 것이다. 거의 의도된 시나리오 대로 일반 임대를 하게 될 것이고, 이의 이윤으로 청년 대상 주택의 임대료를 좀 더 낮추라고 할 것이다.
너무 뻔한데 어쨌든 서울시의 청년주택 정책은 청년주거 공급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원래 애초부터 소규모 건설회사들의 출구전략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관련 정책 발표회때 대회의실을 가득채운 사람들은 청년들이 아니라 다 건설회사 임직원들이었다, 그리고 SH공사는 정확하게 이런 타겟팅을 해왔다). 개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다.
- 역세권의 범위를 기존의 250미터에서 350미터로 넓혔다. 이건 좀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 사업부지가 역세권에 걸쳐 있을 경우 50%를 넘지 않더라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갈음해주는 기준이 만들어졌다(아마 이런 조항은 '맞춤형 규정'일 공산이 크다)
- 기존의 주차장 기준 완화에 이어, 아예 차량통행 금지구역 등이 지정되면 주차장 기준을 별도로 완화해줄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규정은 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로 보인다. 애초부터 이런 인센티브 대로 건물을 지었는데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면 추가된 용적률을 어떻게 환수할 것인지, 부족한 주차장을 어떻게 부담시킬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사업자의 '선의'에만 의존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미 주변 지역 주민들과 갈등이었던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나친 용적률로 인해 주변 경관과 부조화를 이루는 부분이다.
주차장 문제는 나중에 청년주택 주변의 주차난을 이유로 공공주차장 건립에 대한 요구가 나올 것이고 서울시 관련 부서는 수백억원을 들여서 부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짓게 될 것이다(사실 이 구도는 사업자와 서울시 해당 부서가 윈윈하는 방식이고, 부지를 내다 팔수 있는 지역 기득권자 역시 원하는 구도다).
보면 알겠지만 서울시의 조례는 대부분 '인센티브' 조례다. 그래서 인센티브에 비해 기존 방식이 더 이익은 사업자나 기업은 인센티브를 무시한다. 그래서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효과적인 넛지는 규제와 인센티브가 함께 있어야 기능한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법을 '스스로' 형식적으로 적용하는 시의회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말하는 지방자치라는 것은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참고로, 단체장의 인사권에 제약을 가하는 인사청문회 조례는 대법원에서 부정되었지만, 대형 마트 입점에 대해 단체장에게 권고할 수 있는 조례나, 민간위탁 계약 변경시 의회의 사전의견을 듣도록 한 것들은 모두 대법원에서 인정되었다. 그러니까, 해당 조례의 궁극적인 편익이 주민들에게 '이익'이라면 표면적인 의무와 규제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히려 문제는 이런 논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는 관료집단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현상유지의 힘으로 작용하니까. 그러면 의회가 그 기능을 해주어야 하는데 별로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