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이 된다: <Me Too>의 발목을 잡고 있는 법

in kr •  7 years ago  (edited)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이 된다: [Me Too]의 발목을 잡고 있는 법


최근 한국사회를 들끓게 만드는 미투 사태를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무겁다. 몇 가지 기억 때문인데, 마침 내가 겪었던 일과 유사한 사건을 접했다.

미투하다 명예훼손으로 70만원이 구형된 이야기

내용은 간단하다. 예전에 성적인 접근을 했던 사람을 다시 모임에서 만나게 되어, 이 내용을 모임의 대표에게 전달한 사실을 가해자 측이 알게 되었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했고 경찰에 이어 검찰에서 유죄로 판단, 70만원의 약식 재판을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없던 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있던 일을 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 된 것이다.

한국의 [형법]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 뿐만 아니라, 공연한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사회적 인격인 명예에 대해 재산권 수준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작성한 글이 명예훼손 05.jpg

상식적으로 '그것이 뭐가 나뻐?'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 발생하는 미투 운동과 같이, 특정한 개인이 과거에 행한 행동을 공개적으로 말한 것을 예로 보자. 만약 상대방이 지금 논란이 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익의 목적'을 주장할 수 있어 명예훼손을 벗어날 수 있다. 이 경우엔, 비방이 아니라 비판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아니, 비방과 비판의 구분이 그렇게 쉽냐!고 말할 수 있지만,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쉽다고 답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보자).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 발생한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알릴 경우, 즉 사인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는 공익성이 인정되기 힘들다. 그러니까, 아무리 손버릇 나쁘고 주변에게 피해를 준다해도 그 사람의 과거행적을 말하는 것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처럼 사회적 공익이 있다고 하기엔 힘들테니 말이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일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난 2014년 청와대는 정윤회에 대해 사찰한 내용을 공개했던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 사건은 2016년에 이르러서야 검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결정한 덕분에 해결되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50006001&code=940100). 생각해보라, 2년 동안 세계일보 기자들이 경찰과 검찰에서 얼마나 연락을 받았을지.)


사실 개인적으로 몇 해전에 명예훼손 소송을 3건이나 당한 적이 있다. 이유는? 내가 책임자였던 단체에서 사건이 있었는데, 나는 이 문제를 단체의 규칙에 의거해서 처리할 입장이었다. 당연히 공개적으로 터져나온 사건이었기 때문에 관련된 절차를 진행하면서 경과를 알렸다.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이들은 피해자와 더불어,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작성한 글을 옮긴 사람, 그리고 그에 대해 비판한 사람을 포함해 그 사건을 처리하고 있던 나까지 명예훼손을 걸었다. 내가 알기로 하나의 사건에는 20여건이 넘는 명예훼손 고발이, 다른 사건에도 10여건의 명예훼손 고발이 있었다. 사실 가해자의 입장에선 자신이 한 행위 보다 더 심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불만이 있을 수도, 혹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비난을 받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명예훼손은 이런 '사실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작동한다.

그러니까, 사실을 말하는 것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 이것이 소위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된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런 사실적시가 '공익적 목적'이 있다는 증명을 하는 것 밖엔 없다. 그러니까, A로 부터 성폭력을 당한 내가 가해자인 C와 사귈지 말 지 고민하는 B에 대해, 그 사람의 행적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공익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문제는 나를 조사했던 영등포경찰서의 지능범죄과 형사들이 집요하게 물었던 내용이고, 서부지검의 검사가 추궁했던 내용이다. 이들에게 '사실관계'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런 상황은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유리하다. 즉, 한국 사회에서의 명예란 대부분 사회적 지위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나같은 갑돌이의 명예와 내가 가끔 만나는 교수의 명예는 전혀 같지 않다. 또한 이런 상황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유리하다. 생각해보라, 통상 힘이 약한 사람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은데 강자인 가해자가 구태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무기가 '명예훼손 소송'인 셈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와 국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다. 이를테면, 가장 최근의 헌법재판소의 위헌소원에 대한 판결인 2016년의 결정문을 보자(http://search.ccourt.go.kr/ths/pr/ths_pr0101_P1.do?seq=0&cname=&eventNum=37546&eventNo=2013%ED%97%8C%EB%B0%94105&pubFlag=0&cId=010200&selectFont=).

"(1) 또한,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표현하는 ‘비판할 목적’은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고, 대법원도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판시하여,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에 대한 판단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2) 심판대상조항은 이러한 명예훼손적 표현을 규제하면서도 ‘비방할 목적’이라는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을 추가로 요구하여 그 규제 범위를 최소한도로 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정보통신망에서의 명예보호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위축효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민사상 손해배상 등 명예훼손 구제에 관한 다른 제도들이 형사처벌을 대체하여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의 악의적이고 공격적인 명예훼손행위를 방지하기에 충분한 덜 제약적인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판결문의 일부)

그러니까, 비방할 목적과 비판할 목적을 가르는 기준으로서 '공공의 이익'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명예훼손의 대상으로서 국가기관 등을 배제하기 때문에 충분히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보자유운동 단체인 오픈넷은 최근 미투 운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이 어려운 이유: 진실적시 명예훼손죄와 임시조치 제도'(https://opennet.or.kr/14463)라는 논평을 냈다. 아마 이런 심리적인 위축은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면 느끼기 힘든 것이라 생각한다. 고작 좁은 의미의 '공익성' 잣대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성별 위계나 직장내 위계 등과 같은 것에 무지한 법원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는 명예훼손을 폐지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명예훼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형법] 상 범죄로 다루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주변에선 명예훼손으로 벌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거봐라, 너가 잘못하지 않았냐'고 말하는 가해자들을 확인한다. 기본적으로 경찰과 검찰이 개입하는 형법은, 그 법에 의해 기소되는 것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충분히 [민법]상, 평등하게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이를 국가기구가 개입해서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정도까지 괴롭힐 수 있는 현행 명예훼손죄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론 최근의 미투 운동이 좀 더 일상의 공간으로 확산되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명예훼손의 굴레가 있는 한 힘들 것 같다. 이것이 요근래 마음이 무거운 이유다. [끝]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살펴보았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짐으로 참고로 대체한다.

1.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명예훼손죄·모욕죄에 대한 판례의 판단 기준 연구 : 최근 10년간(2005~2015)의 판례를 중심으로 ](http://www.ndsl.kr/ndsl/search/detail/report/reportSearchResultDetail.do?cn=TRKO201600001152) 공연성, 사실적시, 허위, 비방목적 등 주요한 판례의 기준을 다루지만, 이런 판단의 법정책적 판단의 정당성을 다루지 않는다. 얼마나 웃기냐면 사실적시에서 핵심은 사실성인데, 사실성이 부정되면 허위의 명예훼손이 된다는 식이다.

2.휴먼라이트워치, 2018년 한국보고서(https://www.hrw.org/world-report/2018/country-chapters/south-korea) 국제인권기구인 휴먼라이트워치는 인권변호사인 문재인대통령이 '말 뿐인 인권'에서 벗어나려면 현행 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3. 금태섭 의원의 [협법일부개정법률안](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G1S6K0E9O2E0R1O4R5L4F5P4D6E1O8)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의견의 법률개정안이다. 이전 국회에선 유사하게 박영선 의원이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법무부의 반대의견으로 상임위 통과를 하지 못했다. 금태섭 의원의 개정안도, 메뉴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법무부에서 '강력하게 존치'를 주장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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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웃기는 법이긴하죠 맞는말을 해도 명예훼손이라니.. 기득권 보호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폐지되어야 하는 법안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프라이버시나 차별 문제도 있으니 판단을 조심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형법에 있다는 문제가 있었군요.
민법만 되어도 개선이 될 것 같습니다.
지리한 법정 다툼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약자에 대한 공격이 된다는 것도 놓치면 안될 것 같아요.

역시 어려워요... 반대대는 글을 아침에 봤는데..양쪽다 맞는 말이라 어렵네요

네, 사실 이 부분이 논란되는 이유가 그런 판단의 어려움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예훼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형법으로, 그러니까 범죄 여부로 판단하는 것으로 좁혀 생각하면 좀 명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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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판례의 인용부분이 겹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구요 ㅠㅠ(뭐, 봇에게 말해봤자겠지만...)

어려운글이네요,

어려워서 사실은 약한 쪽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법정 투쟁이죠.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