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브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ㅜㅜ 요 며칠 정신이 없어서요ㅠㅠㅠㅠ
토요일에 부산교통공사가 의뢰한 건설 현장에 가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막노동이란 단어의 어감이 살짝 무례한 것 같아서 다른 말을 찾아 봤는데 마땅한 단어가 없었어요...
그럼 막노동 체험기 포스팅 시작합니다 ㅎ
저희 아버지는 조경 사업을 하십니다. 공사 입찰 받으시고, 현장 감독 하는 일을 하시는데 여름날이라서 현장 돌아다니기만 해도 살이 새까맣게 타서 집에 돌아 오십니다 ㅠㅠ
건설 현장이나 조경 현장이나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제가 느끼는 조경 현장의 최대 고비는 태양였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내리쬐는 현장에서 계속해서 흙을 옮기고 나무를 심고, 호스로 물을 뿌리고, 보도 블럭과 화강암을 옮기는데 정말 왠만한 사람 아니면 견디기 힘들겠더군요.
벌써 전날 대학생 형 한명이 점시도 못 먹고 오전 시간에 도망쳤다고... 숙달된 분들도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평소 처럼 일하기 힘들어 하신다고 하네요.
어쨌든 하루 종일 현장에서 피지컬적인 일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입도 거칠어지고(워낙 육체적으로 힘들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시나 봅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셔서 최대한 도와 드리려고 하고 있는데요.
마침 주말이라 시간이 있어서 아침 7시 부터 오후 5시 까지 일을 도와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는 14일... 부산시 신평에 현장이 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더러워져도 되는 옷으로 작업복 마냥 입은 다음에 팔토시를 착용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선크림은 발라도 땀 때문에 금방 씻겨서 소용이 없다고 하시길래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일단 선크림도 발랐습니다.
차 타고 40분 쯤 달려서 현장에 가니까 동편 아파트 너머로 해가 뜨고 있더군요. 벌써 긴바지에 땀이 흘렀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현장에는 풀을 심는 아주머니들과 삽질하시는 아저씨 대여섯 분, 나무들에 물 주시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고, 대부분 아버지 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조경부 총괄이시고, 현장 감독이 따로 계신다고 말씀하시던데, 그 분은 못 뵀습니다.
어쨌든, 맨 처음에는 그냥 아버지와 친하셔서 가끔 도와주러 오시는 삼촌(?)이 시키는대로 작은 나무들을 날랐습니다.
화살 나무라고 부르시던데 5개 씩 한 묶음으로, 들면 6,7kg 정도 나가는 듯 했습니다.
양손에 하나 씩 들고 10번 정도 왔다갔다 하면 같은 방법으로 다른 곳에 다른 나무를 가져다 놓는 식으로 일을 시키셨는데, 정말 쉬지 않고 한 시간 동안 그 짓을 하니까 팔이 날아갈 것 같더군요.
한 시간 쯤 하니까 아버지는 보이지도 않고, 해는 더 높이 떠오르는데 옮길 나무는 끝도 안 보이더군요.
시계는 없고 태양의 각도를 보니 한 10시 쯤 되었겠다고 생각한 순간 아저씨 한분이 참 먹으라고 부르셨어요.
8시라고...
일단 충격을 받았는데, 뭐 시간이라는게 항상 그러니 일단 참고 참을 먹으러 갔습니다. 참은 식혜와 양갱이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머니댁에서도 안먹는 양갱을 손에 들고 있자니 웃음 밖에 안나왔습니다 ㅠㅠㅠ
식혜가 시원해서 3초만에 원샷 때리고 양갱은 근처 벽돌 위에 올려놨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까 아빠 지인 분이 와서 호스 끌고 나무에 물을 좀 주라고 하시더군요.
이때 부터였어요. 6시간 동안 물만 준게...
지금 생각하면 한 달 동안 저희 가족이 쓸 물들을 그날 여섯 시간 동안 나무와 풀들에게 다 준 것 같네요.
500m 짜리 호스가 있는데, 그걸 끌고 와서 현장 전역에 물을 주는 것이 저의 임무였습니다.
처음에는 재밌었어요. 호스 앞 부분에 힘을 주거나 조금 구멍을 막아서 물의 세기와 방향을 조절하는게 재밌었거든요.
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구덩이를 파 놓는데, 물을 가득 채우는 곳입니다. 나무는 자리 잡을 때 까지 물을 많이 소비하거든요.
풀도 마찬가지 입니다. 계속해서 물을 세게 주어서 뿌리가 자리를 잡도록 도와줘야 해요.
제자리에 서서! 호스 끝만 잡고 있었는데!
엄청난 더위와 강렬한 태양에 죽을 것 같았어요. 그날 31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목 뒤가 따끔따끔 했습니다.
남들 처럼 뭔가 옮기고 벽돌도 나르고 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은 운이 좋기도하고 사람들이 아직 학생이니 일부러 쉬운 일을 시키셨겠지만, 진짜 한 사람의 인부로서 갔다면 점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시가 되니 아침을 주시더군요. 너구리 라면이였습니다.
매콤한 국물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질문도 받고 신발 아작난 걸 보고 웃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두 시간이 흐르고
혼자서 외롭게. 이제는 누군가 명령을 내리지도 않습니다. 계속 돌아다니면서 물을 주지 않은 곳에 물을 주고, 물로 포크레인 바가지를 닦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 제 일이였습니다.
호스는 자꾸 다른 건설 자제에 걸려서 끌고 다니기가 상당히 힘들었고, 머리 위에서 태양이 뜨겁게 빛났으며, 세상이 핑돈다는 게 어떤 건지 경험했습니다.
무언가를 참는 것에 있어서는 남의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제게 일을 시킬 때, 서로의 오더가 잘 맞지 않아 제게 일이 동시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저는 시켰는데 왜 안하냐는 타박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점심이 되자 길 맞은편에 있는 돼지국밥 집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이라서 사람이 많았는데, 하나 같이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더군요.
많아 봤자 고등학생 쯤 되보이는 놈이 먼지 가득 묻혀가며 일하다가 아저씨들과 국밥을 먹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사실 전부터 길거리를 다니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살짝 힘이 들었거든요.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내 또래 애들 놀러 다닐 때 땡볕 아래 일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고달팠습니다.
몇몇 부모들은 저를 보고 자식들에게 저렇게 되지 말라고 가르칠 수도 있겠지요.
아버지 도와드리려 온 것이니 딱히 신경 쓰진 않았지만, 확실히 마음 한쪽에서 몰아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밥을 먹으면 1시 까지 조금 휴식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잠깐 앉아있었는데, 주변이 조용해서 일어나니까 제가 한숨 잤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제가 진짜로 지쳤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2시 쯤 되니까 아버지가 돌아 오셨습니다.
수영에 있는 다른 현장에 갔다 오셨더군요.
조금 배신감도 들었습니다만 ㅋㅋㅋㅋ 아버지가 오시니까 일이 끝나가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포크레인이 모래를 퍼나르면서 길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고, 인부 아저씨들도 일에 박차를 가하는게 느껴졌어요.
감독관의 역할을 몸소 느낀 날이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
4시 쯤 되서 저는 물 뿌리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나무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끝날 때가 되니까 힘이 나더군요. 묘목을 몇개 나르고, 현장에 이리저리 널부러진 플라스틱 파이프와 여러 도구들은 옮기고 나니 4시 50분이 되었습니다.
포크레인 아저씨가 제일 먼저 돌아가셨고, 나머지 아저씨들도 트럭을 타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 때 만큼 안도감이 몰려오는 순간은 찾기 힘들었어요 ㅋㅋㅋㅋㅋㅋ
차에 돌아오니 선크림 팩이 녹아서 흐물흐물 하더군요 ㄷㄷㄷ
아버지께 수고하셨다고 몇 마디 드리고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나 보니 집에 도착해 있었고, 6시가 안되서 골아 떨어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장에서 물을 주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그건 다음 포스트에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고생많으셨어요! 젊을때 고생은 사서도 하는거라잖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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