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일기 (#1 ~ 10)

in kr •  6 years ago 

#1.
마음을 비웠더니 온갖 잡상이 찾아 날아든다.
복잡한 게 싫어 다시 마음을 채우자니 번뇌가 늘어날 것이 뻔하기에
이제는 마음을 잊어야겠다.

#2.
속 시원히 결정 내렸다.
내가 속한 배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야 한다.
그럼 보지 못했던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다.
지금 내 눈에는 반 줄기 정도의 빛이 보이는데
하루 자고 일어나면 한 줄기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3.
세상살이가 힘들다. 아니 무척 힘든가 보다.
그나마 나는 또박또박 찍히는 월급통장과 함께 살기에 고달픔이 비교적 적지만,
밥벌이를 해와야 하는 분들에겐 참 어려운 시기다.
지금도 어려운데 2~3년 후는 어쩌지?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걱정이 든다.

#4.
내가 없어도 행복해 보였다.
다양한 감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글쎄다. 잘하려고 하는데 컨트롤 안되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한참 미숙하다.
그리고 미숙하다고 변명하면서 내일도 미숙한 하루를 보내겠지?
나는 미숙의 인생이다.

#5.
나는 내 나름의 전투를 치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근데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보니 전투보다는 허우적대며 공중에 춤추는 꼴이 너무 웃겨 보인다.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무거운 것들이 어쩌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6.
나는 오늘도 내 하루를 의심과 초조함으로 보냈다.
난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을 못 하기 때문에, 그러긴 싫지만, 내일도 이렇게 보낼 것 같다.
오늘 너무 괴로웠다.
그럼 내일도 괴로울 텐데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7.
내가 향하고 있는 궁극점은 어디일까?
있기나 한 것일까?
왜 매일 스스로 다그치면서 찾지 못할까?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그곳이 없던가, 내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거나, 누가 내 눈에 안대를 덮어놨거나,
아니면 내가 눈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눈이 있었으면 좋겠다.

#8.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쉽지 않다.
매일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의미 없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을 안 해야 진정한 인생의 참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다.

#9.
한 15살 때까지는 내가 몇 년도를 살고 있고 몇 살인지 생각하며 살았다.
근데 지금은 내가 몇 살인지도 가끔 가물가물하고, 몇 년도를 살고 있는지도 가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 나는 지금 2018년을 살고 있다.
1990년대 살고 있던 나는 2018년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 2018년에 살고 있는 나는 매우 무기력하고,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이 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동물 무리의 구성원이 되었다.
이건 내가 그리던 멋진 꿈과는 매우 다르다.
내 꿈은 다들 아시다시피 과학자였는데 말이다.

#10.
“돈을 쫓지 마라”
아주 예전에 한 분이 내게 해주셨던 말이다.
근데 말이다, 돈 없으면 먹을 것이 없고 살 곳이 없고 입을 것이 없는 차가운 세상인데,
돈을 어떻게 안 쫓고 살겠나
돈을 쫓으려고 하다 보니 가랑이 찢어질 것 같아서 그냥 잠깐이라도 걸터앉아 있으련다.
언젠가 돈이 내 옆을 지나가다가 잠깐 머물러 준다면 그때 한 번 물어봐야겠다.
왜 사람들이 너를 쫓고 있을까 하고
물론 너는 빙그레 웃으며 아무 대답도 안 하겠지.
참 너는 정떨어지는 자식이다.
그리고 이걸 알면서 너를 쫓으려고 오늘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나도 정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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