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참혹했네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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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 2월도 거의 다 지나가고 3월이 다가온다. 대학 시간강사로 밥벌이를 하는 나에게는 곤궁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이다. 이번 겨울은 계절학기를 맡고, 특강도 하게 되어서 곤궁함은 사실 좀 줄었다. 그런데 1월 중순까지 이어진 강의를 마치고 나서 몸에서 여기저기 이상 신호가 왔다. 병원 가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했다. 그뿐 아니라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몇해 전과 똑같이 신호 대기중에 뒷차가 내 차를 받아버렸다. 할일이 밀려 있었는데 제 시간에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일주일 간 입원을 했고, 지금은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2. 인생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 자체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될 수 있는 한 순조롭게 내 계획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방학 때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지 했는데 그건 이미 물 건너 가버렸고, 이제는 3월부터 새학기에는 어떤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무리하지 않고 처리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3. 2018년 1학기에는 3개 대학에서 7개 강좌를 맡았다. 강의 준비도 준비지만 강의하는 것 자체가 체력 소모가 많이 된다. 멀리 있는 곳에 운전하고 갈 경우에는 오고 가는 데만도 파김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내 일이고, 주어진 일은 해야 한다. 이것이 또 나의 밥벌이고 생계수단이니까. 강의가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양질의 강의를 하면서도 체력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중간/기말 고사 기간에 밀려드는 과제물도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적절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방안까지 생각해야 한다.

  4. 학기 중에도 간간히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좀 걱정스럽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동네 의원에만 가봐도 아픈 사람 천지다. 고령화사회라는 게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닐 게다. 이렇게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으며 유지되는 것이다. 병원에 갔다 올 때마다 아,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하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병원 같은 건 일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던 때가 그립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지금이 그리워질 테니 지금을 좀 더 잘 보내도록 노력하자.

  5. 올겨울엔 난생 처음 깊은 우울에도 빠져 봤다. 내 인생관을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그동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였다. 그런데 올겨울에 처음 그 인생관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스러운 삶을 꾸역꾸역 버텨내야 한다면 그것이 꼭 죽음보다 좋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이렇게 약해졌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텨냈다. 한밤 중에 깨어 멍하니 침대에 걸터 앉아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6. 켄 모기가 지은 <이키가이>(밝은세상, 2018)을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이 책의 제목인 '이키가이'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삶의 즐거움과 보람' 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면서 '오늘 커피는 참 맛있네'하며 감탄하는 삶이 '이키가이'라는데, 그건 평심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서 '이키가이'를 찾고 있는지 여러 실례를 보여주고 있어 유용하다.

  7.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군대 신병훈련소에서 처음 들었다. 사격장에 들어가기 전 '피알아이' 교육을 하던 조교가 했던 말이다. 정말 잔인한 말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기까지 하라니.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즐길 수 없는 것은 피하라. 그러나 역시 인생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 도처에 도사리는 유격 훈련장과 같다.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들에 패배하고 싶지는 않다.

  8. 그해 겨울은 참혹했네. 그러나 나는 살아냈어. 봄에는 또 봄의 바람이 불어오니까. 그 바람이 어떨지 한번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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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7개라니.. 최소 2시수라해도 14시간인데 이미 내공이 쌓이신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준비를 해야하는거까지 생각하면... 정말 바쁘시겠네요.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도 있어서, 딛고 일어나려고 하면 어떻게 기회가 와서 일으켜준다고 합니다. 한 학기 안아플 사람도 아플만한 스케쥴이시지만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계획대로 안되는게 인생이지만 그래도 해야된다라는 말이 참 공감되네요.

한주의 시작!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