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카와 쇼 감독의 일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는 벚꽃 날리는 봄날에 어울린다. 영화 포스터에서 주인공을 맡은 하마베 미나미와 키타무라 타쿠미는 벚꽃이 휘날리는 봄날 다리 위에서 주변 경치를 바라본다. 이것만 봐도 봄날의 정경이 주는 감흥이 떠올려진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런데 그 기억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첫 사랑은 마지막 사랑이 아니다. 그 기억은 실패의 기억인지라 소멸되기 쉽다.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간 과거완료형일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나', 하루키에게 그렇지 않다. 도서관 한쪽 구석 그녀의 흔적에 가슴 아파하고 자신도 모르게 과거로 되돌아가려 한다. 영화에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재의 하루키가 과거의 사쿠라를 마주하고 대화하는 듯한 장면에서 우리는 흠칫 놀란다.
현재가 과거가 교차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영화의 판타지에 놀란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하루키가 과거를 현재를 바라보듯 떠올리는 이유는 사쿠라가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이기 때문이다. 간절히 생을 즐기려고 했던 소녀는 묻지마 살인으로 이제 세상에 없다. 하루키는 사쿠라와 제대로 작별하지 못해 지금도 아프다.
이별을 수행하지 못한 사람에게 첫 사랑은 상처이다. 하루키가 그랬듯 이뤄지지 못한 사랑은 현재로 언제나 귀환한다. 그런데 그 모습은 일그러져 내면에 똬리를 틀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남주인공이 사쿠라를 떠나보내는 계기는 그녀가 남긴 일기장덕분이다. 사쿠라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읽고서야 그는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종영 후 떠올렸던 이미지는 환하게 웃는 사쿠라의 얼굴이다. 보조개띤 얼굴로 스크린 뒤 관객을 응시하는 시선에 우리는 조용히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기억 속에서 현재이다. 우리는 어떤 꿈을 꿨던가. 영화를 보며 과거의 인연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