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모두가 다 개인적인 불행,

어차피 모두가 다 개인적인 불행

시를 전공한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이다.
어디 출처가 따로 있는 건지 그 선배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이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아있었다.

어제 '아이가 맞고 돌아왔습니다' 포스팅을 쓰고 난 뒤에 정신적으로 좀 힘들었다.
첫째는 내 아이가 불쌍하고 안쓰러운데 그 아픔을 내가 함께 감내해줄 수 없음이요,
둘째는 때린 아이와 그 부모에 대한 분노, 셋째는 그런 분노를 느끼는 나에 대한 환멸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인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맘 좋은 사람 나야나 하며 한때나마 자부심을 가졌던 내가,
그런 '내가' 피해를 입으니 더없이 이기적으로 변모하는 걸 보며
그동안 가져왔던 선의는 결국 위선이었음을 깨달았고 그런 내 자신이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감상평은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고
엄마로서 내 아이의 상황에 대해서는 해결이 필요했다.
그 글을 올리고 정말 많은 스티미언들이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주셨기에 생각을 정리한 후 용기를 내 원장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그 친구가 좀 느린 친구라고 해서 잘못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지언정 내 아이는 피해를 받았다.
이 사건을 그 부모도 알아야 하고, 그 부모에게 사과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원의 조치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원장 선생님은 먼저 사과를 하셨고,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당분간 아이들을 물리적으로 떼놓을 것이며 좀 더 유의해서 아이들을 살피고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의 입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먼저 전화하겠노라 약속해주셨다.
또한 발달이 느린 친구들의 등원은 법적으로 막을 수 없고
그집 부모도 놀이치료를 다니는 등 노력하고 있으니 이해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뭐 이까지는 좋았다.
며칠 전 포스팅에서도 썼듯이 나의 이해심은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지고 드넓어지니까.
같은 부모로서 그 아이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었고
그 친구가 몇번이나 문제를 일으켰는데 퇴소를 시키거나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뒤 대화상황과 대면이 관건이었는데,
요지는 "특수학교도 알아보았으나 경증이라 차마 보낼 수 없었다.
외동 아들이고 하다보니 훈육이 잘 되지 않는다.
이해를 바란다. 죄송하다. "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럼 내새끼는 안 귀해서 맞아야해? 내새끼도 외동딸인데?
본인 자식은 귀하고 피해받을까봐 시설 말고 일반 원에 다니면서,
일반 원에서 피해받는 아이들은 생각안해?
사과를 먼저 해야지 뭘 자꾸 이해를 해달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대부분 비슷하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몇마디 가시돋힌 말들이 오고갔었는데 여기에는 적지 않겠다.
결국은 '사과가 먼저다 VS 이해를 바란다'였는데,
사실 이해가 되면서도 부득부득 이해와 양해, 배려를 바라는 그쪽의 입장이 맘에 들지 않아 더욱 더 날을 세웠다.

집에 와서 좀 감정이 정리가 되니 그쪽 부모의 입장과 그녀가 바라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발달이 느리거나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 입장이 참 안타까웠다.
'만약 내 아이라면'이라는 전제로 상상을 하다 보니 더욱 더 공감이 되어
그 집 엄마는 가뜩이나 힘든데 나때문에 더 힘들었겠다 싶어 눈물도 났다.
그래서 날카로운 말을 뱉어낸 내 자신이 더욱 더 미워졌다.

하지만 결국은 그 전제는 실제가 아닌 내 상상에 불과하며,
내가 맘 속 깊이 공감을 한다고 해봤자 그 사람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더욱 더 맘이 씁쓸해졌다.
결국 내가 깊이 공감한다며 그사람의 불행에 대해 눈물을 흘려봤자
내 뇌피셜이지 그사람의 진짜 감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집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만약 맞고온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이라는 전제로 아무리 상상해봤자
그집 사정이랑 우리집 사정은 너무나도 다르고
나의 '개인적인 불행'은 그집의 입장에선 그저 표면적인 사건일 뿐이다.
공감을 해보겠다며 지금 사건과 비슷한 일들을 떠올려 억지로 공감의 틀에 끼워넣어봤자
애초부터 다른 단추라는 것이다.
모두가 개인적인 불행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절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서로 이해를 바라는 것은 그래서 무쓸모한 건가?
그렇다면 그냥 적당히 이해하며 위선떨며 사는게 유의미한 건가?
무슨 글이 이렇게 막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고 주제도 없고 마무리도 뭣같나 싶다.
아무튼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고, 나는 이제 생각을 좀 멈춰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