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길삼봉전' 2화

in kr •  7 years ago  (edited)

2화

그 찰나에 순간 이 자식의 계산이 읽혔다. 이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구른 나다. 분명 우리 조직이 그렇게 허술하게 주요 자료를 가진 놈이 잠수를 타게 놔둘 리 없다. 나는 한숨을 깊이 쉬고 기다렸다. 분명 이 자식은 다음 수를 놓을 것이다.

‘하지만 금방 놈의 거처가 잡혔습니다. 가서 묻어 버리겠습니다. 다만 그러려면.......’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침묵을 깔았다. 놈은 지금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하고 있을 거다.

‘그래 강릉에 있는 거 지금 주자. 어차피 줄 거였는데 조금 빨리 주는 거다’

나는 나긋한 목소리로 녀석의 긴장에 회를 쳤다.

“그래, 일단 강릉에 있는 거 정리하자. 그래서 다 잘 다독여서 이제 이런 일 없게 막아.”

놈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그리고 녀석의 풀린 긴장감에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대신, 또 이런 일 있으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말했듯이 우리 조직은 그 정밀하다는 경찰청 지능 수사대 자료에 있는 거보다 다섯 배는 더 크고 정교하다. 전화를 하고 있는 이놈도 내 조직에선 수뇌급이지만 우리 조직의 전부는 모른다. 하지만 놈도 막연하게 두려워할 정도만 감을 잡고 있다.

전화를 끊고 뒤로 몸을 눕히자 기사가 올라탔다. 막내가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다가 차가 출발하자 조용히 물어왔다.

“다시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평창동으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막내가 기사에게 눈짓을 하고 전화기를 꺼내 껐다. GPS로 조직 전산팀 마무리 조가 추적 중이었다. 그 전산팀은 경찰의 무전 내용까지 따서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내 위치를 추적해 알아서 대비했다.

미국에서 가져 온 시스템이었다. 삼십억 짜리다. 그러나 평창동에 갈 때엔 그 프로그램을 껐다. 그 위치로 가면 더 큰 조직의 관리 시스템으로 들어간다. 자세한 건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알면 당신이 다친다.


평창동에 도착하자 막내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몇 군데 집에서 초정밀 망원경으로 감시조가 감시를 시작하고 방어망이 발동된다는 것을 막내는 알고 있다. 내가 막내에게만 알려준 것은 이 녀석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다. 칼받이로 한 번은 써야 될 거 같아서였다. 그러자면 적절히 자신은 다른 팀원들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막내도 모르는 비밀 하나, 늘 놈을 주시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설사 막내가 배신을 하려고 해도 경찰서나 언론, 어디든 들어가기 전에 죽는다. 아니면 병신이 된다. 사후처리는 생활고로 만들어서 비관 자살로 처리될 것이다.

평창동 안가에 들어서니 스승 옆에 석가 놈과 염가 놈이 붙어 있었다. 스승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앉으니 역시 염가 놈이 염장을 질러온다.

“아이구, 전설이 되셨더만, 아주, 그 기록 당분간 깨지기 힘들 거야? 안 그래?”

스승 앞임을 의식한 건지 염장을 지르는 것도 혼자는 안 하고 옆에 있는 석가 놈까지 끌어들였다. 석가 놈이 덧붙였다.

“제일 큰 걸로 여섯 장이니 당분간 그 기록 안 깨지겠지. 우리 같이 그 다음 걸로 몇 장씩 하는 놈은 나오겠지만.”

그래, 저 놈들 말대로 이번 프로젝트로 총 엮은 돈이 6조다. 언론에선 4조라고도 하고 8조라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6조가 조금 넘는다. 당연히 내가 다 챙긴 건 아니다. 나는 정산해보니 겨우 1장, 즉 1조를 조금 넘게 챙겼다. 나머지는 조직이 나눠가졌다. 내 조직에 2장정도 풀렸고 저 두 놈과 스승님 조직에 2장, 세 사람에게 한 장이 풀렸다.

그리고 또 밝히는 비밀 하나, 내 조직조차도 사실은 모른다. 저 세 사람의 조직이 로테이션으로 받히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피해자 중에 내 조직원들도 모르게 섞여 있다. 그렇게 우리 넷은 서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나눠먹는다. 내 조직의 규모만 해도 경찰이 다 조사할 수 없을 정도인데 그런 조직이 철저하게 가려져 세 그룹, 더 있는 거다.

스승께서 먼저 일어서셨다. 아마도 일본에 가실 것이다. 요즘 골프에 푹 빠지셔서 일본으로 자주 건너 가셨다. 거기 야쿠자 조직들과도 다리를 열어서 더 큰 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아직 그 속은 누구도 모른다. 그게 스승이 무서운 이유다.

스승님을 문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오자마자 염가 놈이 바로 스승의 자리였던 상석에 앉아서 인터폰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중국 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들어왔다. 손에는 화려한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엔 접시에 알약들이 올려져 있었다. 여자가 그 알약 하나를 입술로 물더니 염가 놈 옆에 앉아 입으로 염가 놈에게 전해주었다. 받아 삼킨 염가 놈이 흐음 하고 신음을 하고는 내게 권했다.

다른 중국 여자가 알약 하나를 입에 물고 내 옆에 앉아서 입술을 내밀었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지금 염가 놈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되는 타이밍이지만 역시 약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망설이자 놈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건너 온 거야. 시중에 도는 그런 약들과는 다른 거라고. 그 거 하나에 5만 불짜리야. 검사해도 안 나와. 왜? 이 약은 성분이 다르거든. 인디언들에게만 비전으로 내려온 비법으로 만든 거니까. 해봐.”

‘그래도 마약은 마약이다.’

난 술에 취해도 이성을 잃는 것을 싫어해서 그 전에 끊는 사람이고 아직까지 절대 의식을 잃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딱 한 번 어릴 적에 거리를 떠돌던 시절, 감기약이지만 많이 먹으면 마약이 되는 약을 넙죽 받아먹고 의식을 놓은 적이 있다. 깨어보니 경찰서였고 들은 말로는 내가 돌아다니며 온갖 망나니짓을 다 했다고 한다. 난 그 어린 나이에도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 뒤론 절대 의식을 놓는 짓을 하지 않는다.

내가 고개를 살짝 젓자 아니나 다를까 옆에 앉아 염가 놈과 나를 살피던 석가 놈이 거들었다.

“역시 조보한이야. 무서운 놈이지.”

나는 석가 놈을 살짝 노려봤다. 놈이 움찔했다. 놈은 엄밀히 따지면 후배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내게 처음 일을 배웠다. 내가 염가 놈에게 그렇게 배운 것처럼. 하지만 염가 놈에게 붙어서 내 등 뒤에 섰다. 스승께서도 내가 돌아서면 바로 내 배를 찌를 놈으로 놈을 선택하신 거다. 하지만 그래도 놈은 후배인 거다. 석가놈이 슬쩍 중재를 해야 한다는 걸 느꼈는지 말을 돌렸다.

“선배님, 요즘 이래저래 쪼이고 있으니 좀 예민한 거 같습니다. 오늘은 그냥 쉬게 해주죠.”

염가 놈이 둘을 훑어보곤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 알 삼켜보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알았어. 좀 쉬어. 아니지, 참, 뭐 할 말이 있어서 온 건가?”

‘개자식 빨리도 물어본다.’

난 일부러 한숨을 크게 내쉬고 말했다.

“마무리가 조금 힘드네요. 이것들이 좀 더 챙기려고 혈안이라서.........”

석가 놈이 과장된 큰 소리로 내 말을 낚아챘다.

“뭐? 이런 미친놈들. 두 장이나 풀었는데. 이 바닥에서 그렇게 풀어 준 경우는 첨이고 그거 때문에 조보한이 얼마나 애먹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한 장만 풀어도 된다고 했잖아. 더 주면 고마워하는 놈 세상에 없어. 거기서 더 달라고 하지. 확 이 자식들을 그냥.”

염가 놈이 서서히 흐려지는 눈으로 말했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내 식구들 움직여 줄게. 가서 쉬어. 나도 밥값은 해야지.”

나는 인사를 하고 일어나서 나왔다. 아마도 지금 누군가 전화를 받고 움직이기 시작해서 곧 다른 프로젝트를 띄운 다며 내 조직의 수뇌부를 흔들기 시작할 거다. 그 프로젝트를 띄우는 사람들이 염가의 식구들이니 내 새끼들은 그 미끼를 무조건 덥석 물것이고, 나 몰래 다른 프로젝트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니 내 앞에서 더더욱 움츠릴 것이다.


차가 평창동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자 막내가 전화기를 켰다. 그러자 바로 전산팀 부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저 회장님. 일정을 좀 더 당겨도 되겠습니까?’

그래 벌써 미끼를 물었구나, 이 자식은 다음 프로젝트엔 내 식구가 아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닙니다. 좀 불편하실 것도 같아서 좀 더 빨리 편안하게 모시려고요.’

“안 불편해. 다 뜻대로 돼가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눌러줄 필요가 있다.

“우리 식구들 다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내가 마음 좀 불편하다고 막 당기고 그러면 어긋날 수 있잖아.”

놈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식구들 생각을 좀 더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돈이 막 보이니 조급해지겠지. 그래서 너희들은 소모품인 거다. 수뇌부면 뭐하냐.’

나는 갑자기 짜증이 밀려와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바로 전화기를 그냥 막내에게 전했다. 막내가 받아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네, 지금 좀 피곤하신 거 같습니다. 네. 잘 모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고 막내가 내 눈치를 보다 말했다.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봤다. 한강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강에 가보자.”

“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막내를 다시 지긋이 바라보며 나는 다시 말했다.

“한강으로 가자고. 가서 맥주 한 병만 사와라.”

“알겠습니다.”


한강에 도착해 주차장에 댄 차를 등지고 나는 한강 뚝 바로 앞에까지 와서 앉아 막내를 기다렸다. 막내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맥주를 내밀었다. 그리고 돌아서는 막내를 보고 나는 옆에 앉으라고 눈짓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홀짝 홀짝 맥주만 마시자 막내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어왔다.

“혹시, 평창동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살아보니까 말이야. 누구나 천적은 있더라.”

나도 모르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와서 나도 놀라고 막내도 놀랐다. 갑자기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막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자는 천적이 없습니다.”

그런 녀석이 귀여워져서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저 놈도 지금 나름대로는 세파에 길들여져 저런 말을 하고 있지만 더 찌들고 찌들면 지금 한 말이 얼마나 귀여운 말인지 알게 되겠지.

문득, 스승님과 지금처럼 한강에 앉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분도 지금의 나처럼 다 정리할 시점에 갑자기 나를 데리고 한강에 가셨다. 그런데 그때 스승이 한 말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어디선가 써먹고 또 써먹어서 내 말이 돼버리고 그 말을 한 내가 짜증나서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차분히 막내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말해줬다.

“사자는 그래서 굶거나, 늙어 죽는다. 사자에겐 시간이 천적인 거다. 잡혀 먹히는 거보다 더 서글픈 죽음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깊은 뜻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단지 사자는 천적이 없다는 것이고 대표님은 그 어느 사자보다 더 강한 분이라는 겁니다.”

그 말을 하기 전까진 귀여웠는데, 이젠 녀석이 얄미워졌다. 나는 녀석의 뺨을 손바닥으로 톡톡 치고 눈으로 차를 가리켰다. 그러자 녀석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차로 달려갔다.

혼자 흐르는 강물을 보며 맥주를 다 마시고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 있는데 막내가 다시 달려왔다. 그리고 전화기를 내밀었다.

‘나도 밥값 좀 하려고 중국에 있는 친구들 좀 깨웠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 지금 어디야? 만나서이야기 해야 할 거 같은데?’

석가 놈이었다.

ㅡ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졸작이지만 35화 연재를 마치면 교정을 해서
자비를 들여서라도 전자책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스팀잇 연재 소설 전자책 출간이라는 목표가
드라마 공모에서 떨어지고 시체와도 같았던
저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네요.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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