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석가 놈은 바로 한강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품에서 위스키를 꺼내 내밀었다. 놈은 위스키 광이다. 아마도 놈이 내민 저 술은 당신들은 이름도 듣지 못한 술일 것이다.
내가 놈이 오기 전에 막내에게 시켜서 사 놓은 맥주 병을 들어 보이자 놈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앉으며 말했다.
“왜 천하의 조보한이 이런 곳에서 지지리 궁상인가? 뭐 문제가 있나? 아니지, 설사 문제가 있어도 조보한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로 움찔할 건 아니고. 왜? 아쉽나? 좀 더 땡길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나도 놈의 옆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내 심정 헤아리자고 달려온 건 아닐 테고? 뭐지?”
석가 놈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 우린 속을 보이면 안 되는 사이지.”
놈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중국, 얘들이 굉장히 관심을 갖고 우리 일을 파헤치고 있다고 하네?”
“뭐?”
“중국에 돈이 넘쳐나잖아. 물론 거기도 대부분은 쫄쫄이 굶고들 있지만 그래서 우리 사업을 확장해서 프로젝트를 띄우고 싶어 하나봐. 그러자면 먼저 좀 배워야 되겠다는 거겠지.”
난 괜히 놀라 얼굴로 속내를 보인 것을 후회하며 다시 한강을 바라보며 계산을 시작했다.
먼저, 이 놈 말이 사실일까?
내가 이 번 사업에서 땡긴 것을 발라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염가나 스승님이 있는데 독단적으로 이놈이 나에게 회칼을 들 순 없을 것이다.
그럼? 설마 셋이서?
아니, 사실일 수도 있다. 스승님은 내가 등 돌리지 않는 한 나를 회 뜨진 않으실 거다. 뭣보다 그래봐야 득될 게 없다. 염가 놈도 마찬가지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그렇다면, 사실이라면 중국에 가 있는 식구들과의 마무리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세 손가락이면 삽합회를 말하는 것, 그들의 조직은 지금 전성기의 마피아를 능가 한다. 나 하나 바다에 던져 넣는 것은 일도 아니다.
석가 놈이 위스키를 삼키고 크~, 하고는 한 바탕 크게 웃더니 말했다.
“아주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데굴데굴 들리네. 이봐요 조보한 선배. 당신이 나 다 가르쳤잖아. 그렇다는 건 당신의 대부분은 다 읽힌다는 거야. 걱정마. 아마도 두 번째 생각한 게 맞을 테니까. 감히 스승님이 계신데 당신 작업했다가 죽으려고? 난 두 군데서 날아올 회칼을 피할 자신이 없다고. 염선배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그래. 놈들이 그냥 사업만 배우겠다고? 삼키는 게 아니라? 마음 먹으면 그럴 수도 있을 건데?”
석가 놈이 내 말을 듣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놈이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놈은 지금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 걸까?
내가 맥주병을 다 비우고 옆에 놓을 때까지 생각에 잠겨있던 석가 놈이 위스키를 다시 삼키곤 입을 열었다.
“대안이 있겠지 당연히. 그런데 여기서 계속 이야기 할 건가? 자리를 좀 옮기고 싶은데.”
“어디로?”
“송파로 가지.”
거긴 석가 놈이 자릴 잡은 터다. 그럴 순 없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홍대로 가지.”
거긴 누구의 터도 아니다.
“얘들 시끄러운 곳에 왜?”
“거기 오는 얘들은 노느라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 내 얼굴도 모를 걸. 뭐 설사 안다고 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시끄러운데 가야 집중이 더 잘 되잖아. 왜 싫어?”
석가 놈이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홍대는 누구의 터도 아니라고 안심할 것이다. 평창동을 나오면 우린 우리에서 나온 야수들이나 다름없다. 서로의 터엔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린 차에서 내려서 홍대의 시끄러운 골목 어딘 가에 있는 술집에 들어갔다. 역시 얘들이 많았다. 석가 놈과 내가 자릴 잡자 막내가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승훈이 들어왔다.
내가 홍대로 옮기면서 막내에게 시킨 것이다. 승훈은 나와 싸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암호를 아는 놈이다. 이렇게 민감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에 필요하다.
놈은 블루투스로 전화기를 켜 놓고 내 싸인을 받아 내 식구들 중에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문의를 하거나 지시를 한다. 당연히 석가 놈은 모른다. 이건 아마 염가 놈도 모를 것이다. 내가 개발한 거다.
난 우선 승훈에게 싸인을 보내 변호사와 중국 통 지원팀장과의 라인을 연결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석가 놈에게 물었다.
“스승님과 선배님은 아시나? 아까 별 말씀 없었잖아?”
그래 일단 놈의 속내를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 역시 놈이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바짝 내 귀로 입을 가져왔다. 나는 슬쩍 상체를 뒤로 빼며 말했다.
“여긴 누구도 듣지 않아. 관심도 없을 테고.”
그러면서 나는 슬쩍 승훈을 바라보며 다른 싸인을 보내 물었다.
‘안테나는?’
승훈은 으레 부르면 혼자 오지 않았다. 입술의 움직임을 읽을 줄 아는 여자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각기 다른 자리에 앉아서 승훈은 내 사인을, 여자는 내 상대의 입술을 읽어 승훈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승훈은 내 지시 싸인과 여자가 보내온 판독을 같이 읽고 필요할 땐 함께 응용했다. 승훈은 멘사클럽에도 가입한 수재였고 사시까지 패스했지만 찌질한 인간들의 집안 때문에 발목 잡혀서 인생을 버리려고 하던 걸 내가 주워서 키웠다. 승훈은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은 내 또 다른 귀며 손이다.
승훈이 여자도 자릴 잡았다는 싸인을 보내왔다.
석가 놈이 내 행동에 약간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더니 위스키를 마시곤 말했다.
“아직은 그 쪽에서 확실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놈들 수뇌부에서 오고가고 있다는 정도야. 그래서 아직 보고는 안했어.”
미친놈. 놈은 아직도 스승과 염가 놈을 모른다. 그 두 사람은 승훈과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설명할 또 다른 비밀 말고는 내 모든 것을 샅샅이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만나서 이리로 온 것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눈앞에 이놈과 그 놈이 가져 온 문제, 뒤에 있는 두 사람까지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 거기에 내 식구들과 미래가 걸려 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땡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이렇게 시시각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라 오는 문제들이다. 나는 중국 통에 이놈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라고 승훈에게 싸인을 보내고 시간을 벌기 위해 우선 석가 놈을 다독였다.
“역시 이제 나도 그 속을 모를 정도로 변했어. 곧 큰 건 하나 하겠는 걸? 청출어람이라고 그러나 이런 걸?”
놈이 호탕하게 웃고는 대답했다.
“무슨 소릴, 당신이 세운 기록은 아마 깨지기 힘들 걸? 뭐 사업이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서로의 식구들이 이제 다 머리가 커서 잔머리들 굴리기 시작했으니 집중이 안 될 거야. 네 사람 식구들이 총 동원 돼는 것도 힘들 거고. 하지만 모르지 스승님께서 움직이신다면.”
승훈이 맞다는 싸인을 보내왔다. 그렇다면 이젠 석가 놈의 속내를 털어야 한다. 다행히 석가 놈이 내 생각을 읽었다.
“우리 재지 말자. 내가 먼저 다 털어 놓을 게. 자 아직 놈들이 생각을 굳힌 건 아니야. 그쪽 보스들도 이것저것 따져보겠지 시간은 있어.”
“그래서?”
“반대로 이쪽에서 찌르고 들어가는 거야.”
“어떻게?”
“가리봉 쪽을 움직일 거야.”
“가리봉?”
“한국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 그 쪽에 머리 하나 키워서 식구들 짜고 사업하나 해서 돈과 함께 그 식구들을 그대로 놈들에게 넘기는 거지.”
순간, 놈이 달리 보였다. 그래 맞다. 놈도 야수다. 그러니 나와 동등한 위치를 잡았지. 나도 모르게 늘 후배였다고 놈에게 경계를 늦춘 건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는 허점을 보여야 한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그럼 내 식구들 안 뺐기고 놈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지. 놈들이 원하는 것도 줄 수 있고. 내가 들어가서 담판을 지을게. 그게 원하는 거지?”
석가 놈은 예상대로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마무리를 짓고 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진 건가? 천하의 조보한이 조금 만만해보이려고 하네? 지금 당신이 들어가면 인질 되는 거야. 모르는 거 아니지?”
허점을 보일 때는 정말 잘하면 쉽게 물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확실하게 드러내야 한다.
“아니야. 내가 가는 게 확실해. 중국에 넘어가는 척만 하기로 했지만 아주 넘어가서 확실하게 할 게. 이번에 도움들 받은 것도 있으니까.”
석가 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작전대로 넘어가는 척 하고 돌아와서 신분 세탁해. 그리고 식구들만 받쳐줘. 내가 할게. 넘겨주기 전까진 내 프로젝트고 가리봉 식구들도 내 식구들이야.”
“몇 장짜리 프로젝튼데?”
“한국에 와서 일해서 중국으로 보내지는 돈들 어마어마하더라구. 거기다 이미 넘어간 돈들까지 땡기면........당신 이번 사업 반절은 될 거야.”
“세 장?”
“아직 그림 다 그려진 건 아니야.”
그래. 놈은 그걸 원한 거다. 내 식구들 중에 버릴 놈들을 가져다 쓰고 털어버리겠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면 마감조가 알아서 털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니 누군가 확실하게 총대를 메야 한다.
석가 놈의 속내를 확실하게 알았으니 이제 더 들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 놈은 내 굳은살만 회를 뜨겠다는 거다. 나로선 손해 볼 게 없다. 놈이 확실하게 내 뒤처리를 도울 테니까. 이제 남은 문제는 염가와 스승. 두 사람이다. 석가 놈과 그 부분을 확실하게 해놓을 필요가 있다.
“스승님과 선배님께는?”
“당신이 사업하느라 바빠서 놓쳤을 테고, 아마도 몰라도 큰 문제없을 테니까 두 분도 말씀 안하셨을 텐데 이미 일본 쪽 그림 그리고 계신 거 같아. 그리고 이번엔 우리 식구들 돌려 받히기 할 필요가 없어. 가리봉 식구들에 당신 굳은 살 식구들이면 충분해. 내 식구들도 일부만 참여할 거야. 그림 다 그리고 보고만 하면 될 거야. 그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실 거라는 건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거고.”
나는 승훈에게 철수하라는 싸인을 보내고 물이 담겼던 잔을 비워 석가 놈에게 내밀어 위스키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건배를 하며 말했다.
“그래, 다 알아 들었어. 석회장님의 사업을 위해.”
석가 놈이 건배를 받곤 덧붙였다.
“조대표님의 사업을 위해!”
잔을 한 번에 비운 뒤 석가 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일어섰다.
“그럼 가서 내가 한 놈 보낼게. 그 놈 포함해서 그 놈 식구들 잘 떠가.”
석가 놈이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가리봉 같이 한 번 가자.”
나는 나가던 발걸음을 석가 놈의 눈을 보았다. 그래 놈은 지금 말로는 부족한 거다. 내 굳은살 식구 보내는 걸로도 부족한 거다.
“거기 가서 도장도 좀 찍어줘. 가리봉에 작업을 해 놓은 놈이 하나 있어. 대표가 될 놈이지. 그 놈이 당신을 존경한다고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러네.”
내가 바로 대답을 못하자 석가 놈이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내 석가 놈의 표정이 방긋 하고 풀렸다.
ㅡ 다음 화에 계속....
직접쓰시는거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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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1화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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