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길삼봉전' 5화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 •  7 years ago 

5화

어느 날 번듯한 차림새를 한 공장 동료가 찾아왔다. 와서 아쉬운 소리부터 했다면 당연히 내쳤을 것이다. 속빈 강정일 수도 있다는 경계는 할 수 있는 나였다.

세파에 찌들다보니 그런 경계는 본능적으로 발동한다. 하지만 그 놈은 철저하게 그런 심리를 비켜갔다. 와서 한정식 집에 데려가 밥을 샀다. 내가 카운터 앞에서 머뭇거리자 호탕하게 웃으며 두툼한 지갑을 꺼내 돈을 냈다. 그리고 룸에도 데려갔다. 동네에 있는 노래방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룸이었지만 화끈한 여자들이 있었다. 나는 혈기 왕성한 스물네 살이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여자는 밤새 그 동안 쌓여있던 나의 모든 것을 상냥하게 받아 주었다. 충분한 팁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온 것도 아니고 며칠 뒤에 그 놈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제법 고급스러운 승용차를 타고 왔다.

놈은 이번엔 통장을 보여줬다. 내가 적금보다 훨씬 큰 액수가 예쁘게도 찍혀 있었다. 이제 경계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내 적금 따위를 노릴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놈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내가 몸이 달아 물어볼 때까지. 나는 결국 묻고야 말았다.

“뭘 해서 이렇게 많이 번 거야?”

놈은 표정을 싹 바꾸고 대답했었다.

“너라면 바로 말해주겠어? 물론 난 너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다르지?”

“그래.....그렇구나......알았어. 그냥 난 궁금해서.”

“뭐 그렇다고 못 알려줄 건 아니고.”

“알려줘도 뭐 내가 어떻게 하겠어? 공돌이가 딱이지 뭐. 난. 그냥 부러워서 그래.”

“누가 너한테 바코드로 공돌이라고 딱 찍었어? 그거 누가 결정하는 거야? 너도 인생 바꿀 수 있어.”

“송충이는.......”

“우린 사람이거든? 거기다 여긴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야. 뭐든 될 수 있는 거라고. 나를 봐봐. 사실 성실한 걸로나 인간성으로나 너보다 훨씬 못한 거 우릴 아는 사람이면 다 알잖아.”

“무슨 소리야. 절대 그렇지 않아.”

“하지만, 물론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 뭐 그리고 버려야 할 것들도 많고. 그 게 어려운 거지.”

“그렇지? 쉽지 않지? 그러니까 네가 대단한 거잖아.”

“너도 될 수 있다고. 아니, 나보다 더 잘 될 수도 있지. 물론 나보다 더 노력해야 되겠지만.”

“세상 이제 알만큼 안다. 나도. 노력만으론 안 돼. 안 될 놈은 절대 안 돼.”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사람 잘 만나면 된다. 이끌어 줄 사람 하나만 만나면 되는 거야. 뭐더라 삼국지에서도 나오잖아. 유비가 공명을 만나서 인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지. 야망도 업그레이드 되었고.”

솔직히 그 말은 좀 아니었다. 나도 삼국지를 겨우 만화로만 봐서 그닥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말로 조금 틈이 생겼었다. 놈은 그 틈을 바로 발견하고 다음 수를 놨다.

“나도 그 분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어.”

당연히 나는 물었었다.

“누구........”

“왜? 만나고 싶어?”

“아이, 내가 어떻게, 뭐, 그분이 만나줄지도 모르는 거고, 나야, 뭐, 만나고 싶어지지만, 뭐........”

나는 분명하게 미끼를 물었었다.

그 뒤로는 조금 뻔한 전개니까 건너뛰자.


나는 진짜 다 때려 부었다. 가진 건 물론이거니와 빚까지 내서 쏟아 부었다. 처음엔 내 밑으로 열 명, 그 뒤론 오십 명, 백 명. 그 정도 하니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써야 했다. 나는 놈이 가르쳐 준대로 항상 지갑을 두툼하게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통장에 들어온 돈은 그대로 놔두어야 했다. 보여줘야 했으니까. 그래서 빚을 지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과 그들의 주변사람들까지 악착같이 끌어들였다.

천 명.

그 목표가 진짜 어렵게 이루어졌을 때, 겨우 내가 버는 돈이 빚의 이자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더는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제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서 곧 빌딩도 지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모든 망상을 이끌어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스승님이다. 그는 야금야금 나의 목표를 높이기 시작했고, 내가 더 끌어다 붓게 만들었고, 나는 솔직히 보이는 건지 모르겠는 내 미래를 나보다 더 선명하게 그려주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누군가 자살했다. 경찰이 추적하기 시작했다. 일단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달래야 했다.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우린 당당하다고, 그렇게 겨우 다독이고 있는데 일가족이 모두 자살해버렸다.

언론이 포문을 열고 우리의 모래성에 엄청난 포격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혼비백산 모두 도망들을 가느라고 바빴다. 나는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다.

그때 스승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속내를 다 보였다. 아니, 그렇게 가장했다. 나를 속였다. 눈물까지 펑펑 쏟으시며 억울하다고, 모두가 잘 사는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 곧 자릴 잡을 건데, 여기서 멈춰야 해서 너무나 억울하다고 서럽게도 우셨다. 나도 울었다.

자신이 모두 책임지고 감옥에 갈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이제 사업은 끝났다고, 너도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돈 뭉치를 내밀었다. 나는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여기서 꿈을 접으시면 안 됩니다. 모두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는 자수하겠다는 스승을 말리기 시작했다. 스승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내가 무릎을 꿇고 펑펑 울며 매달렸을 때에야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경찰서에 들어갔다. 내가 진짜 대표라고, 모두가 피해자라고, 나는 그렇게 진술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모든 서류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스승님의 또 다른 제자가 찾아왔을 때,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스승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그러자 그 제자가 말했다. 나를 빼기 위해 변호사를 사고 백방으로 인맥을 총동원하고 계신다고.

믿어야 할까?

나는 그 순간 고민에 빠졌다. 고민을 시작한 순간 사실 반은 넘어간 거다. 제자가 나머지 반을 덮어쳤다.

곧 나올 거라서 다음 사업에 센터장 자리를 만들어 놨다고, 내 이름이 박힌 근사한 명함을 내밀었다. 내 사무실 사진도 보여줬다. 멋진 인테리어의 사무실에 고급스러운 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탁자엔 내 이름이 딱하니 박힌 명패가 있었다.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3년을 살았다. 스승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진짜 꽤 유명한 변호사가 변호를 해줬고 꼬박꼬박 영치금을 넣어줬으며, 나를 위해 법원에 제출했다는 탄원서 뭉치를 직접 보기도 했다.

스승은 나중에 말했었다.

버리긴 아까운 놈이었다고, 내가 울 땐 진짜 우는 거였다고, 그 진정성을 높이 산다고 했다.

출소하고 나오는데 교도소 앞에 고급차가 멈춰 서서 나를 맞이했다. 스승이 직접 나와 있었다. 솔직히 나오기 전에 교도소에서는 다시는 안 볼 거라고도 생각했고 보면 패버려야 되겠다라고도 생각했으나 실제로 보니 눈물이 났다. 스승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진짜 속내를 보였다. 이번엔 사업의 이면까지 다 보여주었다.

‘너는 이제 진짜 내가 아껴준다.’

멋진 말이지 않은가? 나는 또 홀딱 넘어갔다. 그의 수족이 되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또 다른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 제자가 말한 센터장은 못되었지만 센터에서 제법 높은 자리에 앉았다.

내가 끌어오지 않아도 이미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그룹을 그냥 내 밑에 둘 수 있었다. 아파트도 얻었다. 사업을 배우겠다며 어린 여자 아이들이 따랐다. 그 중에 몇 명은 밤에도 내 집에 들어와 여러 가지 속내를 속삭였다. 물론 속옷도 벗었다.


승승장구. 드디어 내 인생이 고속도로에 올라 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판을 덮을 때가 된 것 같다.

난 또 들어가라는 건가 긴장했다. 하지만 각오했다. 그만큼 누렸으니까. 그래서 자신 있게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이번에 덮어 쓸 사람의 사진이었다.

나는 스승이 시킨 것보다 더 치밀하게 서류들을 작업했다. 그리고 한 사람을 교도소에 보냈다. 그리고 면회를 가서 그를 달랬다. 사진도 보여주고 명함도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살아갈 집도 보여줬다. 그에겐 나오면 바로 명의를 넘겨주겠다고 아직은 보는 눈이 많다고 했지만 그 집은 사실 월세로 얻은 집이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난 어느 날 그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사고로 죽었다. 모른다. 스승이 손을 쓴 건지는. 나는 아니다.

아무튼 그 후 6개월 동안 스승을 따라 중국과 동남아에 여행을 다녔다. 염가 놈도 그 때 만났다. 놈은 스승 대신 상세한 사업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오만 생색을 다 내고 거들먹거리면서. 그리고 중요한 것들은 스승이 따로 불러 가르쳤다.

나는 스승의 명령에 따라 삼국지를 다섯 번 읽어야 했고 염가 놈의 명령에 따라 그 졸린 심리학책들을 외워야 했으며 마지막으론 성경을 다섯 번 읽어야 했다.

그 후 난 진짜 달라졌다.

그 전까진 사실 스승님이 달고 다녀서 그 덕에 누리고 사는 것이라 실제 내 인생이 확실하게 달라졌다기보다는 뭔가 그냥 운이 따라줘서 잠시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항상 뭔가 어색했는데, 그 날 아침부터 거울에는 이제 확실하게 달라진 내가 보였다.

세상은 밀림이다. 약육강식인 것이다. 나는 이제 야수가 된 것이다. 어떤 놈이든 내 먹이라고 생각되면 목을 딱 물고 늘어질 자신감이 생겼다.

스승님이 나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염가 놈과 함께 돌아가 사업을 하나 삼키라고 명령했다. 바닥부터 다져서 하나, 하나 탑을 쌓다가 확 빼는 게 아니라 누군가 거의 다 쌓아 놓은 탑을 뺐어야 했다.

염가 놈에겐 이미 식구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은 역시 놈이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나는 서류를 엮고 그 사업의 수뇌부를 엮는 일을 준비했다. 염가 놈은 야금야금 식구들을 집어넣어 서서히 그 그룹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그룹의 수뇌부에 침투해서 신뢰를 얻었다. 스승과 염가 놈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끌어다 대니 손쉽게 수뇌부에 자릴 잡을 수 있었다.

그 그룹은 원래 정통 MLM(멀티레벨마켓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슬쩍 다른 사업을 내밀었다. 부동산 사업, 정확히는 아파트 사업이었다.

처음엔 시큰둥해하던 수뇌부들이 내가 스승의 지원을 받아 작업해서 만든 수익을 보더니 슬슬 미끼를 물었다. 전체 다 앞에서는 기획안을 내밀고 뒤로는 따로 하나 씩 불러서 이간질을 하며 따로 챙겨주겠다는 미끼를 던졌다. 곧 수뇌부가 내 손바닥 위에 놓였다. 아니 스승의 손바닥 위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그리고 염가 놈이 작업해서 포섭한 하위 그룹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놈들이 하나 둘 각기 뒤로 돈을 빼돌리기 시작하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을 때,

스승은 확실하게 수뇌부들을 작살냈다. 언론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집중 포격을 퍼부었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나서 잠수를 탔고 염가 놈이 하위 그룹들을 뒤에서 조종해 수뇌부를 확실하게 보내버렸다.

그 그룹을 삼킨 스승은 바로 여행 사업이라는 급조한 아이템을 내밀고 거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염가 놈이 뒤에서 받쳤다. 나는 스승의 뜻에 따라 완전히 물러서서 다음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염가 놈이 아직은 아니라고 태클을 걸었지만 스승님은 이제 자립해도 될 놈이라고 내 손을 들어주었다. 아마도 둘이 굿캅 배드캅 놀이를 한 것이리라. 예전 같으면 고스란히 모르고 당했겠지만 이젠 알면서 당한다. 당한다는 건 같지만 그건 천지차이다.

난 우선 내 식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품을 내서 터트릴 사업이 아닌 나중엔 버리고 뜨더라도 사람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터트렸을 때, 속았다는 걸 알아도 어찌 할 수 없이 너무도 확실하게 당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더 그 사람을 따른다. 정치인들이 쓰는 방법이다.

나는 규모는 크지만 시드머니는 작은 판을 만들었다. 스승님은 그런 나의 생각을 읽고 대견스럽다 하시며 칭찬해주셨고 염가 놈 모르게 나를 밀어주셨다.

거기서 석가 놈을 만났다. 그때 석가 놈은 지금의 놈과는 다르다. 나를 위해서라면 심장이라도 꺼낼 것 같은 충신이었다.


소설 같은 걸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이 정도에서 과거는 그만 접어야 되겠다. 앞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으로 할 이야기 중간 중간에 맞춰 넣기로 하자. 이런 걸 회상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렇게 하자.

삼국지를 읽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 어떻게 이런 걸 썼을까 존경스러웠는데 나도 어쩌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면 욕하려나?

욕 하지 마라. 모르긴 해도 삼국지를 쓴 사람도 처음부터 그렇게 멋진 소설을 쓰진 않았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 물론,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진짜 내가 겪었지만 도무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서 소설의 형식을 어설프게 빌리는 것뿐이니까.

요즈음에 난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서 새로운 도전이 해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월가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여의도 인간들을 작살내고 싶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끝이 나면 진짜 도전해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그 이야기를 공개 하는 거다. 그럼 이 이야기의 제목으로 정한 길삼봉전의 2부가 되겠지.

아, 일단 1부부터 잘 해보자. 나의 과거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가자.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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