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이어진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쨍한 맑고 화창한 날이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흐린 날을 좋아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너는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너는 이 첫 문장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너는 맑은 햇빛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청명한 하늘이나 시원하게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고, 그런 하늘과 바다를 만끽하며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너는 그런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는 것과 좁은 방 안에 있는 것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청명한 하늘이나 드넓은 바다를 볼 때 이 세상이 더욱 비좁은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방구석에 가만히 있는 것 역시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여행보다는 좀 나았다. 그런데도 너는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너에게 여행이란, 한 평도 안 되는 독방에서 근육이 퇴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생존운동에 불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