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a의 정치이야기 4. 채홍사, 꺽이어진 봄.

in kr •  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Yuria입니다. 오늘로 4번째네요. 군사반란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이번편에서 마무리를 지으려하고 합니다. 지겨우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

https://steemit.com/kr/@yuria/yuria-1
Yuria의 정치이야기 1. 잘못 끼워진 첫 단추, 하지만 시민.

https://steemit.com/kr/@yuria/yuria-2
Yuria의 정치이야기 2.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폭압적인 시기

https://steemit.com/kr/@yuria/yuria-3
Yuria의 정치이야기 3. 독재의 정당성. 경제발전은 만능의 변명?

그럼 오늘도 시작하겠습니다.


주의: 이 글과 앞으로 포스트될 글들은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작성되는 편파적인 글입니다. 개인의 정치사적 판단에 따라 작성되는 글이므로 제 정치세력들에 대한 기계적 중립 요구는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또한 합리적 토론을 넘어 인신공격성 발언들이나 판단에 대한 비난은 모두 사법절차를 밟을것을 명시합니다.


이전까지의 2~3편에서는 군사반란정권의 비민주성을 주로 다루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룰 이야기는 조금 다른데요, 오늘 포스팅할 주제는 다름아닌 한명의 힘없는 개인들에게 가해진 국가독재권력의 추악하고도 더러운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MeToo

요새 미투운동이 한창입니다. 억울한 성적 피해를 당해야했던 피해자들이 변화된 사회의 흐름에 맞춰 용기를 내어 전면석상에서 가해자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실명과 얼물마저 공개하고 나온 피해자들의 이 고변은 피해자들에게 애꿎은 낙인을 찍는 이 사회의 그릇된 성 문화를 고칠 기회이기도 합니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갑을관계에서 피해를 입어야했던 피해자들의 외침에 편승해 성별로 사람들을 나누고 중증 피해망상증으로 성별간 대결을 부추기는 꼴페미 & 극진주의자들이 미쳐날뛰고 있고,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을 주저앉히려 정치공작 냄새가 풀풀나는 일들마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 사례1: 더민주 우건도 충주시장 후보 악의적인 비방 글 허위로 밝혀져
http://m.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5748)

(사례2:정봉주 미투 최초 기사 요약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isa&no=1028348
But
정봉주 23일 검찰은 정봉주에게 만약 집회 등 나갈경우 강제구금한다고 ㄷㄷ
http://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1983863)

(* 위의 사례2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밝혀지는 정황이 정치공작 냄새가 풀풀 나는 사례입니다. 두개 글을 읽어보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저열한 실체들이 폭로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막아서는 안됩니다. 민주와 개혁을 이야기하고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언제고 한번 치뤄야 하는 홍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타국보다 열배이상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우리사회의 진보성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몇년내로 사그라들며 극진주의자들이 설 곳은 사라지고 무고죄 형량강화와 성범죄자들 처벌강화로 귀결되리라 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억울한 이들을 무고한 쓰레기들도 댓가를 치뤄야 할 겁니다.

극진주의자 & 정치공작론자들의 헛소리를 구분해 진짜 피해자들을 돕고 사회를 바로세우는 현명하고 합리적인 시민대중의 수용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혁명을 이루어낸 이 나라의 시민대중들이라면 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갑자기 왜 뜬금없는 미투 이야기냐구요?

그건 오늘 이야기할 이 주제야말로 70년대의 미투운동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채홍사(採紅使)

사자성어 '흥청망청(興淸亡淸)'의 유래가 된 이 단어는 조선시대 연산군이 전국의 용모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 올리게 한 '채홍사(採紅使)'라는 관직명에서 유래됩니다. 왕이 자신의 여색을 위해 전국단위에서 여성들을 공출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채홍사가 1960~70년대에 부활합니다.

2005년, 故 김재규측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가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책을 통해 박정희의 추잡한 여자관계를 폭로한 겁니다. 그는 1980년 2월 19일, 김재규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루어진 접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을 증언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사못 충격적입니다.

["왠만한 일류 연예인들은 전부 불려가."..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거쳐 간 여성이 200명쯤 됐다."..]

그는 왠만한 일류 연예인은 모조리 박정희에게 불려갔으며 세간에 떠돌던 간호장교 이야기,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 등의 소문도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거의 모든 여성연예인이 박정희를 거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당시 한겨레 21에서는 전 중앙정보부 소속의 안가 관리직원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그는 중중이 여자들을 조달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진 마담 2명을 활용해 200여명의 여성 중에서 박정희를 성접대할 여성들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 방식에 대한 증언 또한 구체적인데, '접대 여성은 한 차례 이상 넣지 않는다. 대통령 눈에 들어 혹시 임신을 하거나 대통령이 여성에 빠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라며 '대통령이 찾으면 만류해보다가 잘 안 되면 추가로 딱 1번만 더 접대하도록 한다'고도 합니다. 또한 그는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이 아니면 모든 안가는 24시간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면서 "하루 중 언제라도 불시에 대통령이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지구원들이 대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증언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당시 10,26 사건을 수사했던 합동수사본부소속의 수사 제1국장 '백동림'은 박정희에 대한 김재규의 불만과 비판이 마침내 미움으로까지 증폭된 데는 박정희의 복잡한 여자관계도 작용하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의 여자관계가 지나칠 정도로 난잡하였다고 여러 차례 불평을 했답니다. 10.26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의 여자관계 수사를 했는데,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여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때문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도대체 박정희의 엽색 행각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 걸까요?


이후 밝혀진 사실은 경악스럽습니다. 10.26 사건의 현장이었던 궁정동 안가와 같은 대통령 전용 '관립(官立) 요정'이 서울시내에만 모두 5곳이나 달했다는 것입니다.


10.26이 벌어진 궁정동 안가.

그리고 중앙정보부 소속 의전과장 '박선호'라는 인물이 박정희를 위한 채홍사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음탕한 술자리는 한달에 10여차례나 열렸으며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만해도 1백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그는 "저기 걸린 달력에 나온 미녀 모두가 안가를 다녀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채홍사의 실질적인 최종역할은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증언에 따르면 [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먼저 경호실장 차지철이 심사했다. 차지철은 채홍사에게 '돈은 얼마든지 주더라도 좋은여자를 구해오라'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리고 차지철의 심사를 통과한 여자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서약과 함께 그날의 접대법을 엄격하게 교육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정희 자신이 여자들을 직접 지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로 영화나 TV를 보다가 맘에 드는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 '한번 보고싶다.'고 하는 식이었는데 그러면 즉시 불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연예계에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고 하네요.

"갑작스런 궁정동 연회의 차출 지시로 영화나 TV 프로 촬영 스케쥴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납득할 만한 설명없이 연예계의 힘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이런일로 한두차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에계의 제작진 사이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06164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b=bullpen2&id=6133987&select=title&query=&user=&reply=
http://c.hani.co.kr/hantoma/1824600


다음은 김현철 칼럼니스트가 취재한 직접적인 피해자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소리 김현철 칼럼니스트

[1960년대 후반까지 영화 두 편에 주연 여배우로 출연, 한국 영화의 톱스타로서 앞날이 촉망되던 미모의 영화배우(서울 명문대 출신)가 당시 결혼 1년 만에 첫아들까지 얻는 등 행복한 신혼생활로 동료 선후배 배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 호사다마’라 했던가? 운명의 여신은 이 여인의 행복에 샘이 났던지 행복한 이 가정에 살살 바람을 불어 넣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청와대의 채홍사(採紅使, 연산군 때 전국의 창기 중 미인을 뽑아 왕에게 바치던 벼슬아치) 한 분이 집에 나타난 것이다. “각하께서 모셔오라는 명령이십니다. 잠간 청와대에 다녀오시게 화장하시고 15분 이내로 떠나실 준비를 하세요“하는 게 아니가!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워낙 박정희대통령의 부름에 응했던 연예인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체념과 함께 사랑하는 남편과 갓난 아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그러면서 “이제 갓난애의 엄마로서 신혼 유부녀입니다. 홀로 있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저는 좀 빼 줄 수 없을까요?”하고 애원했다.

당시 많은 연예인들이 각하의 부르심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였던 것과는 달리 이 여인은 현 남편과 만날 때 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순진한 여성이었으니 각하의 부름은 상상도 못 했던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허나 각하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런 말이 통했겠는가.

“잠깐 다녀온다는데 웬 말이 그렇게 많아요?”하고 위압적인 자세를 취한 채홍사의 자세를 보고 더 반항했다가는 자신도 또 영화제작 스탭인 남편도 당장 영화계에서 매장될 것을 안 여인은 순순히 따라나설 밖에 없었다.

안내된 곳은 청와대가 아닌 그 옆의 다른 장소(후에 알고보니 궁정동 안가)로 그 다음 날 새벽까지 각하의 ‘성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눈이 퉁퉁 부어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뜬 눈으로 밤을 샌 듯 샐쭉해진 얼굴에 눈물이 글썽, 역시 울고 있는 부인의 설명을 듣고 부드럽게 위로해 줬다. “옆집에서 검은 차가 당신을 태우고 갔다기에 다른 연예인들처럼 우리에게도 차례가 온 것을 알았다”며 부인을 부둥켜안고 한 없이 울었다.

그런데 1회용으로 끝나던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이 여인에게는 1주에 한 번씩 계속 채홍사가 찾아 왔다.

한 달이 지났다. 그간 체념 속에서 살아 온 남편은 이날따라 울상을 하면서 “여보, 놀라지 마, 나 오늘 무시무시한 곳에 끌려갔다 왔어, 최단 시일 내에 당신과 헤어져야 두 사람 모두 심신이 편할 거라는 협박이야, 아무래도 우리 갈라서야 하나봐. 어쩌지? ”하며 울먹였다.

부부는 밤새도록 뿌리칠 수 없는 운명을 원망하며 울고 또 울었다. 둘이 모두 사는 길은 빠른 시일 내에 이혼하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길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 밖에는 다른 길이 안 보였다.

그러고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남편은 바로 그 뒷날부터 자취를 감추었고 방안에서는 남편이 쓴 쪽지 한 장이 발견됐다. “여보,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밖에 기다리고 있어, 따라가야 해. 날 찾지 마. 그게 당신도 사는 길이야. 우리 아이를 잘 길러 줘. 먼 훗날 다시 만나, 사랑해 여보. ” 이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각하는 한 밤 중에 여인과 몸을 섞고 나더니 내가 부자 미국인을 소개할테니 당장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 살라고 명령했다..(후략)..]

그리고 이 칼럼을 국내로 옮긴이는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의 소리'에서 이에관해 취재를 했는데 그 피해자가 '김삼화'씨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쪽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www.amn.kr/sub_read.html?uid=9908


10.26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다.

어쨌든 군사반란으로 국가를 사유화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박정희의 18년 독재는 1979.10.26일 종말을 고합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고 김재규가 술자리에서 박정희와 경호실장인 차지철을 향해 총을 발사한 겁니다.


데미 갓 슬레이어 발터PPK. 히틀러도 박정희도 이총에 죽었다.

한가지 치떨리는 점은 이 당시에도 박정희 엽색행각이 여전히 지속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경호실장 차지철)로부터 행사가 있다는 소식에 '박선호'는 주방에 연회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후 행사를 도울 여성을 구했었고, 이 당시 섭외된 여성들은 당시 모델 겸 배우였던 여대생 신재순과 가수 심수봉이라고 합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1952년생이었으니 그보다 3살은 어린 55년생 여대생을 불러다 술자리에서 자신을 접대하라고 시킨 셈입니다. 그야말로 발정난 개XX와 다를바가 없었죠.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어쨌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이 유언을 마지막으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김재규의 공으로 18년간 이 나라를 독재의 그늘에 빠뜨리고 시민들을 학살하던 희대의 독재자는 술자리에서 딸보다 어린 여대생 주무르며 양주 처마시다가 총맞아 죽습니다.

그야말로 쓰레기 독재자다운 죽음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다시 18년만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돌아올 기회를 얻게 됩니다.


(* 한가지 더 다행인 점은 당시 박정희말고 같이 뒤진 차지철-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 대표적인 강경론자였다는 점입니다.이 당시 부마항쟁(부울경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이 격화되자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 300만을 죽였는데 우리라고 데모대 100만∼200만명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라고 했다네요. 정말 잘 죽었습니다.)


서울의 봄

수십년간 나라를 폭압과 공포로 억눌러오던 독재자가 죽었습니다. 자연히 독재자의 죽음이후 그동안 억눌려왔던 시민들의 민주적 욕구가 폭발하며 온 나라에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열망이 피어오릅니다. 그야말로 봄이 왔습니다.


프라하의 봄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처럼 이 '서울의 봄'도 그다지 좋은 결실을 거두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독재자가 총칼을 들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내 사조직 '하나회'는 10월 유신 당시처럼 총칼을 들고 나라를 뒤엎습니다. 대선에서 DJ에게 50만표로까지 추격당하며 권력상실의 위기에 몰리자 친위쿠데타(10월 유신)로 권력을 장악했던 박정희처럼 전두환은 사조직 하나히를 동원해 정부기관과 방송사등을 점령하고 진압군을 와해시킵니다.


대한민국이 다시 어둠의 장막속으로 잠겨듭니다.


그러나 저항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학 방학을 이유로 쿠데타에 대한 지식인 계층의 대처와 항명서는 뒤늦게 이어진 겁니다.

대학가가 개강을 맞이하는 3월이 되며 신군부에 의한 군부장악과 안개정국에 대한 상세한 사항이 알려지며 다시금 저항의 불길이 타오릅니다. 3월 4월 5월, 시대의 어둠에 저항하는 민주의 목소리는 1980년 5월 15일 오후 3시경, 마침내 서울역 인근에 서울시내 30개 대학생 10만 명이 모임으로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당시 대학생들을 위시한 민주화 세력은 '계엄철폐'를 외치며 민주화 일정 제시를 요구했으며 신군부와 최규하 과도정부에 대해 대규모 성토 대회를 열었습니다. 임시연단으로 세워진 버스 지붕 위에서는 "서울역을 사수하자"는 외침이 퍼졌고 시위대 역시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그러나 인파가 생각보다 많이 모이자 당시 지도부 사이에서는 해산이냐 진군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솔직히 처음 예상보다 너무나 많은 수의 인원이 군집했다. 이 많은 인원 수를 통제할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대로 계속 청와대까지 진군하다간 사분오열되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지 모른다. 일단 각 학교로 해산 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진군하자- 심재철

(*
심재철은 이후 새누리당으로 넘어가 누구보다 극렬한 수구인사가 됩니다.

vs


지금 이 상태에서 해산을 명하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게 끝난다. 이 많은 인원이 현재 여기서 복귀한다면 신군부는 어떤 보복행위를 할 지 모른다. 결단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걸 끝내야 한다 - 유시민

당시 서울역 앞 서울 소재 대학교 총학생회장 16명이 서울대 마이크로버스와 서울역 대합실 그릴을 임시본부로 정하고 사후대책을 논의합니다. 그러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충돌이 벌어질 경우 대규모의 유혈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하에 결국 해산결정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이는 유시민의 예상처럼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공수부대가 왔다는 소문에 겁을 먹고 연설대(버스) 위에서 8시 30분에 해산 결정을 내리며 마지막 기회가 사라진 겁니다.

유시민 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 등 반발하는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 시위 참여자들은 8시 50분 경부터 썰물처럼 귀가하였고 결국 9시 40분경에는 해산을 반대하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고려대학교도 해산하여 귀가함으로서 서울의 봄은 일단락됩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 사건'입니다.

다음날(16일)경 55개 대학교 학생대표들이 이화여대에 모여 회의를 하지만 대중동력없이 무엇이 가능할까요? 지어졌다. 4월 통합협상 결렬 뒤 다시 만난 김대중-김영삼 양김 또한 신군부에게 '계엄해제', '정부 주도의 개헌 포기' 등 6개의 개헌안을 공식 제시했지만, 이미 호기를 놓친 상태에서 학생이건 양김이건 둘 모두 신군부의 음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기회를 놓치지 않은 신군부의 계엄령이 선포됩니다. 전두환은 시위 주모자들을 기습적으로 체포하고 동맹데모에 나선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합니다. 강준만 교수의 평가처럼 이 사건은 '한국인이라는 동족의 이성을 믿은 과오'로 평가될 것입니다.


5.18 민주항쟁. 그리고 학살

10.26이후 12.12 군사쿠데타. 그리고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항쟁은 연속선상에 놓인 하나의 거대한 흐름입니다.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군사반란 세력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결국 피로서 진압된 현대사의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1979.10.26 박정희 사살

1979.12.12 전두환의 신군부 쿠데타

1980.3 이후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대학 & 지식인들 중심의 반독재 투쟁

1980.5 서울역 회군

그리고 1980.5.17. 신군부의 계엄령 선포.

위에서 상술되었다시피 1980년 4월부터 신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기 위한 시민 집회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1980.5월, 서울역 회군으로 대중영향력이라는 호기를 상실하면서 민주화 동력은 크게 약화됩니다.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해 시위주도자들을 불법 구금했고 가장 거세게 일어난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합니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에 노여움으로 말하네

  • 정태춘, '5.18'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망월동의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민중가요 ‘5월의 노래’ 중.

독재권력에게 자신들의 집권을 방해하는 시민들은 더 이상 지켜야할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해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와중에 헬기까지 동원해 사격을 가하였고 대검으로 사람들을 찔러죽였습니다.

길가던 어린아이 임산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계엄군은 총칼로 자신들을 지켜야할 시민들을 찌르고 때려죽입니다.


이게 국군입니까?

당시 증언입니다.

[공수부대원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을 하고 있었다.

"야이 씨발년아 어디서 데모질이야!"
"왜- 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할머니 한분이 만류하고 나섰다

"아이고, 내 새끼. 왜들 이러요?"

하지만 공수부대원은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찼고

"이 씨발년은 또 뭐냐? 너도 뒤지고 싶어?!"

할머니가 쓰러지자 군홧발로 얼굴을 뭉개버렸다.

그리고 여학생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그어버렸고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4]

당시 23세였던 이선씨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따, 공수부대 겁나게 무서웠던지라. 도망가는 사람의 등을 대검으로 콱콱 찔러뿔고 잡은 사람을 때릴 때도 얼굴이나 머리통을 주로 때렸던지라."]

박남선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42~43쪽에는 당시의 참혹함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습니다.

[..(선략)..하지만 불에 타고 있는 MBC쪽으로 계엄군의 탱크가 무서운 속도로 쳐들어왔고 이때 미처 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탱크에 밟혀 처절한 비명을 울렸으나 그렇게 깔린 사람들은 그만 육신이 산산이 으깨지고 말았다..]

당시 24세에 억울하게 죽어갔던 임산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선략)..이때 인근 버슈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디리던 임신 8개월의 임산부(최맹/ 당시 24세)도 조준사격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아이고 내새끼 미애야! 아이고 아이고.."

"워매워매. 뱃속에 아기가 뛰고 있네. 아기는 살려야지. 병원에 연락좀 해주시오잉.."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살리지 못했다.]

당시 광주 120여개의 개인병원과 3개의 종합병원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들이 밀려들어왔고 피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여고생 박금희(18)양도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했는데 헌혈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진압군의 총에 맞고 살해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

이들이 사람일까요? 아니오. 저는 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베트남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습니다. 학살로 경험을 쌓은 우리 군이 잔혹한 술수와 민간인 학살로 베트콩의 유격전을 원천차단하며 당시 격전지였던 마을 곳곳에 한국군에 대한 증오비가 선 것입니다.

참조: 베트남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 기억할 것'...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16141

그런데 이 미친 새끼들이, 이번에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학살전을 전개합니다.


헬기


화염방사기


탱크


총기에 대검까지.

이새끼들한테 광주민들은 더 이상 자국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어떤 군대가 자국민에게 이런 무자비한 학살전을 전개합니까?


인간도 아닌 쓰레기들,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국민 수십 수백의 죽음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쓰레기같은 잔혹함.

그러나 이들은 오늘도 역사를 마주하길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마주하고 뉘우치기는 커녕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며 역사의 본말을 호도하려 합니다.

(* 이 북한군 개입설은 미 CIA비밀문서로 박살납니다.
: '5.18 북한군 개입설' CIA 기밀문서가 박살냈다 "북한의 행동이 전두환 돕는 결과 가져올 것 알고 있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9073)

그리고 전두환 문어대가리 새끼는 이런 미친 X를 지껄입니다.

이새끼들이 보수입니까? 아니죠. 이들은 그저 보수를 참칭하는 쓰레기들일 뿐입니다.


매국에서 기원하여


독재에 부역해 시민을 학살하고


그저 자신들의 이익과 안위만을 챙기려는 쓰레기들

이들이 보수라구요?

아니요.

이새끼들은 그냥 마피아보다 더한 쓰레기들일 뿐입니다.


그렇게 시민들의 민주를 향한 열망은 무참하게 꺾입니다.

짧았던 서울의 봄은 꿈결처럼 사라지고 무자비한 총칼의 흉탄속에 결기와 희망은 사라집니다.

총칼이 권력을 탈취하고 민주대한의 헌법은 유린당합니다. 군사독재의 어둠은 깊고도 잔혹해서, 너무나 폭압적이어서 그 시대를 살아가던 그 수많은 이들중 그 누구도 그 끝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행적에 대해서는 격론의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3당야합 이전까지의 그 민주적 열망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기에 감히 여기에 인용합니다. 시대의 거인 YS의 외침처럼 감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벽이 이미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민주와 자유를 향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전진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억압받고 탄압받더라도 정의를 향한 우리 대한민국 시민들의 전진은 결코 꺽이지 않았습니다. 꺽이어진 봄의 끝에서 새로운 봄의 시작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시 시민이 있었습니다.

Yuria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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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날들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팔로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