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병에 대한 흔한 오해'
군생활 동안 당번병(고위급 간부의 비서직), 병기관리병(변기 아니고 총 같은 병기), 교육행정병, 취사병 등 여러 보직들을 옮겨 다녔지만 마지막에 정착한 보직은 취사병이었습니다. 흔히들 PX병과 함께 취사병을 꿀보직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물론 힘든 훈련도 받지않고 밥만 하면 되니 목표물에 총기를 겨누고 절도있는 제식과 패기 넘치는 걸음걸이 군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취사병의 하루일과인 400, 500여 인분의 재료 박스를 들어다 나르고 쌀 두포대를 삽(?)으로 씻고 냉동된 닭을 오함마로 때려깨기를 수십차례, 한 양동이에 30인분의 국을 수십번 떠나르다 보면 머릿속에는 '요리'라는 단어 대신 '노가다'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거기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고 남들 다 쉬는 휴일에도 밥은 먹어야 되니 휴일이라는 개념도 없습니다. '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떤 일이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적어도 취사병은 꿀보직과 거리가 먼 보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짬밥의 퀄리티'
흔히들 짬밥을 오래먹은 병장들은 끼니를 거르기 일쑤입니다.
" 야, 오늘 점심 메뉴가 뭐냐?
"아 또 고추장국이야? 누구야~ PX가서 짬뽕면 좀 사와라~!"
'요리'라기 보다 '노가다'에 가까운 일이다 보니 부대마다 짬밥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입니다. 짬밥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맛있게' 먹는 것보다 단순히 '먹는데' 목적이 있는데다 호텔조리학과를 다니다 온 대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 '맛'에 대한 고집이 있는 간부가 있지 않는 한 의례히 짬밥 퀄리티에 대한 기대는 '제로'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이런 말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아싸, 내일 나 의무대 간다. 너네 의무대 밥이 사단 전체에서 제일 맛있는 거 알지?"
취사병으로 보직을 받기 전 일요일 햄버거식(일명'군데리아')이 나올 때면 스프를 좋아했던 제게 늘 떠오르던 의문.
'스프를 왜 이렇게 국처럼 물같이 끓이는 거야? 스프가루를 아끼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스프를 떠가는 선후임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맛있게 끓인다고 누구하나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다지만 일부로 사람이 못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 마냥 대충 만들어지는 스프가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끓이면 저렇게 끓이지 않을텐데.
스프도 많이 넣고 후추를 많이 넣어서 맛있게 끓이겠어.'
'BOQ 취사병'
스프를 끓여볼 기회가 뜻하지 않게 빨리 와버렸습니다. 도무지 행정병은 체질이 맞지 않았던 제게 취사병 보직에 자리가 났으니 한번 해보겠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스프에 대한 기억도 한몫 했는지 '그래,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에 그 날로 취사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양파와 파를 까는 잔일부터 시작해 계급에 맞는 일들이 정해져 있었기에 쌀을 씻고 국을 끓이는 일 정도가 다였지만 시간도 빨리 가고 매번 다른 메뉴들에 따른 조리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스프를 끓이게 된 날, 워낙 대량이다 보니 스프가루와 후추, 소금의 양을 어느정도 넣어서는 티도 안나 제가 먹어 맛있을 때까지 수없이 반복하며 만족할만한 스프를 끓였고 분대장이 스프를 왜 이리 많이 넣었냐며 눈치를 조금 주었지만 그 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스프를 3, 4그릇을 퍼 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메뉴얼대로 이뤄지는 조리과정을 하나씩 배워가며 병사취사장에서 적응 중이던 어느 날, BOQ 간부숙소 취사병 부사수를 뽑는다는 얘기를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분대장은 얼마간 고민을 하더니 들어오지 얼마 안된 저를 간부취사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후에 듣자니 오래 데리고 있었던 후임이 간부취사병으로 가서 꿀빠는 게 싫었다나 어쨌다나. 그렇게 BOQ 식당으로 내려가게 된 저는 그 곳에서 '마스터'를 만나게 되는데...
'Master'
대대급 이상의 부대에는 인원수가 400~500명을 넘어가게 되면 민간조리원이 한명씩 배치됩니다. 저희 부대에도 병사식당에서 재료 다듬는 일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고 점심 시간이 지나고 저녁 준비할 때쯤 항상 오셔서는 일을 하러 오셨는지 수다를 떨러 오셨는지 의문일 만큼 옆에 서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시다가 퇴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간부식당으로 내려간 첫날, 저는 그 분이 부대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간부식당은 간부숙소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장교, 부사관의 식사를 제공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목상 목적일 뿐, 사실 간부식당은 대대에서 가장 파워가 쎈 '대대장'의 점심 한끼 식사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죠. 항상 저녁 준비할 때쯤 나타났던 아주머니는 이 한끼 식사를 위해 초빙된 프로였던 것이었습니다.
'종합예술 요리'
마스터를 만나고 난 후 '노가다' 대신 '요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인원이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감소한 이유도 있었지만 이제는 '맛' 뿐만 아니라 '데코레이션', '플레이팅'까지 신경을 써야했으니 다각도로 많은 부분을 고심하게 되었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역시 '마스터'는 '마스터'인 이유가 있었으니, 알고 보니 마스터는 오랜 살림경력과 음식점 장사 경력으로 무장된 요리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메뉴들을 선보였지만 역시나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건
'시금치 무침'.
'김치 하나로 밥 먹는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시금치 하나로 밥 먹는다.'는 얘기는 들어 본적이 없던 제게 '요리라는 건 마법 같은 게 아닐까?'하는 의문을 들게 했던 마스터의 요리는 경이로웠습니다. 시금치 무침은 역시 첫번째로 '데친 정도'가 중요합니다. 씹을 때 간과 함께 어울어지는 식감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자칫 많은 시간을 데치게 되면 한데 뭉쳐버린 시금치의 식감을 헤치게 되어 간을 아무리 잘해도 기똥찬 시금치 무침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빻은 마늘과 굵은 소금, 들기름 한방울(강원도에서는 요리에 맞게 참기름과 들기름의 용도가 달라집니다. 고향 부산에서는 들기름이 있는지도 몰랐죠.)이 더해져 마스터의 손에 의해 잘 버무려진 시금치 나물이 완성되려는 찰나, 마지막 비법 가루를 준비합니다. 그것은 바로 '설탕'이었습니다. 인위적으로 음식을 달게 하는 설탕을 넣어 요리의 단점을 감추려 하는 요리를 좋은 요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탕과 소금은 단 맛을 더 강하게, 짠 맛을 더 강하게 서로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며 음식의 감칠맛을 더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단순한 요리인 시금치 무침에서 인생 요리를 발견했듯, 흔하고 흔한 설탕에서 요리에 대한 매력을 발견한 것이었죠. 인생은 이토록 늘 그렇듯 단순함 속에 위대한 것을 숨겨둔 것인가 봅니다.
"야, 맛있게 잘 먹었다~!"
대대장이 지휘봉을 들고 식당을 향해 걸어오는 순간, 모두가 비상사태에 돌입합니다. 뜸들이기를 마친 압력밥솥에서 첫 그릇을 뜨기 시작합니다. 이미 플레이팅은 모두 끝마친 상황, 대대장이 자리에 앉는 타이밍을 맞춰 밥그릇을 내려놓습니다. 대대장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사를 준비한 동료들과 그 날 당번인 간부 모두가 초긴장 상태에서 대기합니다. 간부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대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시 한번 눈은 설겆이 하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대대장 방향으로 귀를 기울입니다. 대대장이 나가면서 한마디 툭 던집니다.
"야, 박OO!"
"일병, 박!O!O!
"야, 맛있게 잘 먹었다.(전형적인 장교말투)
"감사합니다!"
대대장이 식당을 나간 후 식사당번인 간부가 그제서야 한숨을 쉬며 한마디 합니다.
"휴~ 야, 고생 많았다."
그 후 대대장의 긴장감 백배 피드백 속에서 그 날, 그 날의 요리를 평가받으며 마스터의 제자로 성장해가던 군바리는 각종 마법의 가루들을 섭렵하며 적어도 집에서 해먹는 집반찬류의 요리들은 간을 보지 않고도 간부들에게 좋은 평을 듣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아직도 그 사실을 전설로만 전해들은 어머님과 제 와이프에게 저는 입만 산 요리사로 남아 있습니다. 요리 무림을 떠난지 어언 12년,그 언젠가 제대로 실력발휘할 날이 온다면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마스터, 제 실력은 아직 녹슬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끓여주시던 닭죽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우리 사이...
옛사이...
ASAHI...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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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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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그 실력을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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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실력을 정녕 보고 싶으신 겁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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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꼭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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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ㅋㅋㅋ 정녕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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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일 @corn113 님의 레시피를 따른 야채튀김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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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기대하겠습니다! 야채튀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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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님 잘보고갑니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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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대세 지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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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라뇨..ㅠㅠ 아닙니다..
혼자 이래저래 구상하는데
혼자로는 너무 벅차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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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 사단 1종계원 출신인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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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종!!! 그것도 사단 1종이셨다니!!! 님하 스프가루 좀 넉넉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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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프...썩어나죠..... 제가 분대장도...한 1년이상 해서.... 넉넉한 군생활했죠.... 보수부대 보급통제 분대장...으로써...1종부터.... 종 구분없이.... 넉넉한 생활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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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이 새록새록하게 하는 포스팅입니다.
녹슬지 않았을 실력을 기대해 봅니다~ ^^; @zionjohn 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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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실력 발휘 한번 해보겠습니다!ㅎㅎ 응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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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밌게 보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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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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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력을 저도 꼭 확인하고 싶네요 ㅎㅎ 재밌네요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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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력을 오늘 한번 시험해보려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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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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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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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직을 안해본사람은 고충을 모르죠 ^^ 저도 운전병 출신인데
흔히 취사병과 마찬가지로 운전병은 꿀보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반대
입니다 ㅠㅠ 밤중에도 운행에 불려나갈때도 있고 남들쉴때 운행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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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직을 안해본사람은 고충을 모르죠 ^^ 저도 운전병 출신인데
흔히 취사병과 마찬가지로 운전병은 꿀보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반대
입니다 ㅠㅠ 밤중에도 운행에 불려나갈때도 있고 남들쉴때 운행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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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군 울타리 내에서는 솔직히 안 힘든 일이 없죠. PX병한테 물어도 마찬가지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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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니 ...
저는 스프를 먹어본적 없네요
일요일에 먹는 라면도 퉁퉁 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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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메뉴가 또 더 다양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일요일에 라면식도 나왔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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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군대 생각도 나고.. 잘 읽었습니다. 군대 국 (속칭 똥국...) 도 국이지만, 군대리아에 나오는 스프는 정말... 일반 스프에 물 한 통 부은 느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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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프를 스프답게 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스프가루가 필요하더라구요.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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