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에 어느 시골마을에 칠득이라는 총각이 살았습니다.
칠득이는 가난해서 장가도 못간 노총각으로 살았지만 나름 성실했습니다. 어느 날 해가 진 후에 그의 집에 어떤 아가씨가 와서 서성거리고 있었지요. 칠득이는 처음 맡아보는 그윽한 향기에 문을 열어보니 곱고도 귀한 티가 흐르는 아가씨가 서있었답니다.
“아가씨는 뉘시오?”
“저는 공덕천이라 하온데 제가 집안 일을 좀 해드리고 의탁하고자 하온데 받아주시겠습니까?”
칠득이는 깜짝 놀라서 이게 꿈인가 하고 볼을 꼬집어보고는 말했습니다.
“아니 난…아가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저는 재물을 늘려주고 재수를 더해주며 집에 복을 부른답니다. 저를 믿어 보시겠어요?”
“이렇게 고운 아가씨가 더구나 재물복을 부른다니…하지만 나는 가진 것도 없는 가난뱅이라 곤란합니다.”
“저를 물리치신다면 아쉽지만 가보렵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리하여 공덕천은 칠득이 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날 이후 칠득이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공덕천은 새벽에 일어나서 물을 길어놓고 밥을 지어 정성스런 아침상을 차려 올렸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청소를 하고 집안밖을 정갈하게 하였으며 마을에 나가 삯바느질거리도 받아오는데 그 솜씨가 빠르고도 교묘하여 얼마 안가 주문이 폭주할 지경이었습니다. 칠득이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녀에게 마음 깊이 반했으므로 어느 날 넌지시 청혼을 했습니다.
“이 보오. 내 복에 어떻게 그대를 만났는지는 모르나 내가 싫지 않다면 우리 정식으로 혼례를 치름이 어떻겠소?”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혼례라 함은 간단한 일이 아니니 우리 조금 더 서로를 알고 나서 고려함이 좋을 듯 합니다.”
어느 날 공덕천은 삯바느질 건으로 마을에 나갔고 칠득이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칠득이는 공덕천의 예쁘고 참한 모습을 떠올리며 절로 입이 벙글어지고 있었죠.
그때 뭔가 이상야릇한 악취가 풍기며 머리를 풀어헤친 한 여인이 그의 집에 비척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온몸은 더러웠고 얼굴은 추했으며 헝클어진 머리채에는 이름 모를 날벌레가 윙윙거리고 있었습니다. 칠득은 우선 그 냄새가 거북하여 코를 틀어쥐었는데 여인은 입을 열었습니다.
“날이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이 댁에 제가 좀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그게 뭔 소리야? 그쪽이 누군지 알고 내 집에 재워?”
“저는 흑암녀라고 합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고요. 다만 제가 머무는 자리에는 고생이 따르고 땀을 흘려야 하며 아픔이 끼어들고 재앙이 출몰하며 재물은 흩어지곤 하지요. 뭐 그뿐입니다.”
칠득이는 기가 막혀서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꺼지지 못해? 재수없게스리…”
그리고 싸리비를 흔들어대며 그녀를 몰아내버렸습니다.
그날 늦게 마을에 갔던 공덕천이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집을 둘러보고 칠득이의 몸에서 냄새를 맡아보곤 했지요.
“왜? 나한테서 안 좋은 냄새가 나오? 아까 어떤 더럽고 냄새 나는 여자가 나타나서 내가 쫓아버렸는데.”
공덕천은 놀라며 물었습니다.
“혹시 흑암녀가 왔었나요?”
“아 맞다! 자기가 흑암녀라고 하더만? 어떻게 그런 여자를 알아요?”
공덕천은 대답을 않고 멍하니 어두운 하늘가를 바라보았습니다.
다음 날-아침밥상이 놓여있었고 거기 편지 한장이 놓여 있음을 알고는 칠득이는 편지를 펴 보았습니다. 그것은 공덕천이 남긴 글이었습니다.
“흑암녀는 제 쌍둥이 동생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른 곳에는 늘 함께 하게 되어 있지요. 그녀가 있을 수 없는 곳은 저도 머물 수 없답니다. 그래서 저도 떠납니다.”
건너마을에 또 한 청년 팔복이는 집 앞 마당을 쓸고 있다가 한 여인을 보고 빗자루질을 멈췄습니다.
“뉘시요?”
“저는 흑암녀라 하온데 배는 고프고 갈 길은 멀어 잠시 의탁하려고 왔습니다.”
“들어오시구려. 찬은 김치와 상추에 막장 뿐이지만 밥도 좀 남아있으니 잘 됐네요.”
흑암녀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긴장이 풀렸는지 방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좁은 방은 그녀의 악취로 금방 가득 찼습니다. 팔복이는 아무렇지 않은듯 그녀에게 담요를 하나 덮어주고는 불을 때기 위해 장작을 마련하여 아궁이에 넣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불을 때고 가마솥에 물을 가득 데워서 그녀가 목욕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팔복이 역시 그런 기대 따위는 애당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흑암녀는 뻔뻔스럽게 팔복의 집에서 며칠을 놀고 먹었습니다. 팔복은 단칸방에 살았지만 그녀를 아랫목에 쉬게 하고 자신은 튓마루에서 자는 것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그의 집 문 앞에 지극히 곱고도 귀한 용모의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팔복이를 보고 미소 지었으며 그의 뒤로 방문을 빼꼼히 열고 눈이 마주친 흑암녀를 보고는 더욱 환히 웃으며 손을 서로 흔들었지요. 그리고는 팔복에게 인사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복을 부르는 공덕천이라 하온데 이 집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아, 그건 되는데 방이 하나뿐이고 이미 손님이 있어서…”
팔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덕천은 종종걸음을 걸어 방을 향했고 흑암녀 역시 공덕천을 향해 반가이 걸어 나왔으며 그 둘은 스르르 한 몸이 되는듯 싶더니 흑암녀는 공덕천의 그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팔복이는 공덕천과 며칠 후에 혼례를 치르게 되었고 알콩달콩 잘 살았답니다.
이것의 원전은 옛 경전에 나오는 짧은 설화입니다. 영상으로 보시려면 유튜브 여기서 보시고요. 가입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