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뱃속에 데리고 사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뱃속에 숨겨둔 마음이니 심복(心腹)이라고 불러도 맞겠네요.
바로 변명(辨明)입니다. 이 심복부하 덕에 궁한 자릴 모면한 적이 많이들 있으실 겁니다.
이 변(辨)이라는 자는 대략 말과 말을 잘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변호사처럼 말 잘하네! 라는 표현도 있죠?
그래서 변명이란 것도 여간 말재주 없이는 쓸 수 없는 전가의 보도이기도 합니다. 명은 물론 밝을 명입니다. 날 일 더하기 달월이라고도 합니다만 더 근원적인 것은 눈 목(目)에 달 월(月)입니다. 눈으로 달을 보니 밝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변명을 제가 끊어버린 계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동료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적이라는 거-언제 받아도 아프지 않습니까?저는 그 아픔이 너무 싫어서 얼른 제 속에 오래 살고있는 심복 변명(辨明)을 불렀지요. 그 애는 제 속을 어찌나 그리 잘 아는지… 변명은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말이죠. 그때 주인님이 짜증을 낸 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구요. 먼저 상대가 너무 말을 함부로 하고 이성을 잃은 것 같아서 사실을 왜곡하지 않도록 약간의 제동을 걸었던 겁니다. 이 정도도 반응을 안해주면 아마 상대는 더 심하게 기고만장 설쳤을 걸요? 밀리다 보면 나중엔 머리 꼭대기로 올라타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이 변명이 올라와 해준 이 말을 제 입으로 옮겨서 제 앞의 동료에게 해주면 됩니다. 그런데…제 안에 백색 스폰지 같은 덩어리가 쑤욱 올라오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언어에는 빛알갱이들이 스며 있었습니다.
“변명님! 초면에 실례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진념이라고 합니다. 지금 변명이 하는 이야길 들어보니 마치 주인님을 위하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주인님을 마도(魔道)를 걷게 밀어내고 있군요.”
변명이 안색이 바뀌며 말했다.
“넌 뭐냐? 최근에 들어온 사상염두라면 예절을 지켜! 어디 주인님과 왕고참인 내가 대화를 하는데 너 같은 초짜가 끼어드나?”
진념이 말했습니다.
“하하! 이보게, 변명! 난 자네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쫀쫀하고도 장구한 세월을 다 지켜보았네. 난 주인님과 동시에 생겼으며 헤아릴 수 없는 시공을 누려온 존재야.”
그러자 변명은 약간 기가 죽어서 말했습니다.
“아, 이런…미처 몰라뵜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변명 한마디가 주인님을 마도로 밀어낸다는 말씀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문제의 원인을 밖으로 돌리면 그게 곧 마도라네!”
“에이! 왜 이러시나? 밖은 남이고 안은 나잖습니까? 밖으로 탓을 해야 주인님이 덜 공격받고 덜 상처입죠.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몰라서 그래요?”
“공격과 상처와 고통….그것이 진정한 적이란 말인가? 너 같은 간신배가 창궐하니 주인님의 층차제고가 걸리적거렸던 것이다.”
“챗! 그래서…어쩔 건데? 주인님은 날 얼마나 총애하시는데..”
진념이 내게 말했다.
“주인님! 의식이 청성할 때 명해 주십시오! 이 간신배를 오늘부로 제거하시렵니까?”
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변명! 마지막으로 네 추악한 이름을 한번 불러본다. 진념! 변명을 제거하라! 그리고 그 친구 핑계도 끌고 나가 참수하라!”
그 바람에 갑자기 옆에 있던 변명의 절친 핑계까지 끌려나가 목이 잘렸답니다.
변명과 핑계-그들이 사라지자 뱃 속이 얼마나 편하던지…오! 여러분 뱃속에서 잔뜩 무언가 긴장하는 가 본데요?
이토록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