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 ft.나무꾼-묵툰4화-엉키고 흩어지다
저의 등장에 선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저는 등을 지고 있었기에 보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사실 그녀의 옷을 훔친 입장이라 마음이 심히 쫄려서 그녀를 정시하지 못했지요.
“제가…옷을 잊어버렸어요. 어떡해…”
저는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지만 정신을 추스리고 말했지요.
“이런 밤에 처자가 산에 옷가지도 없이 있으면 매우 위험할 것이니 일단 우리 집에 가심이 어떠하오?”
그녀는 다른 선택이 없음을 아주 빨리 깨닫더라구요.
저는 그날 나무꾼 직업선택 이후 처음으로 지게에 나무 아닌 여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볼새라 나는듯이 집으로 달렸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부의 연을 맺었고 알콩달콩 살면서 자식도 둘이나 낳았습니다. 이름 지을 줄 몰라서 그냥 큰애와 막둥이라고 지었습니다.
제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한 거죠. 아내가 된 선녀 역시 우리의 거친 삶에 빠르게 적응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그녀는 날개 옷을 한번만 입어 보고 싶다더군요. 아! 그 일은 회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왜 나는 마음 약해져서 날개 옷을 보여줬을까요?
그녀는 날개 옷을 입자마자 바로 두 아이를 양손에 안아 들고 하늘로 날아올라 버린 걸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그녀가 날개옷을 입고 두 아이를 안고 몸이 두둥실 뜨긴 했으나 아무래도 무거운 탓인지 제가 그 발목을 잡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는 전 그 손을 풀어주고 말았지요. 그것도 후회스러웠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흩어져 사라진 것 같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 후 몇 년을 살았습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지요. 모든 것이 꿈처럼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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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말이 나왔으니 저도 할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애 아빠를 놔두고 애들을 데리고 튀다니! 이게 아내가 할 짓인가요?
가족을 찢어 생이별을 시킨다는 게 될 말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저에게는 노모가 계십니다.
즉 제 아내의 시어머니가 계신데 인사 한번 고하지 않고 훨훨 날아올라버리다니! 그게 어느 하늘 법도랍니까?
이 노총각 아들이 늦은 나이에 색씨 하나 데리고 왔다고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데…
그리고 아이들도 그렇지. 인간세상에서도 이별을 하는 경우에는 자식들에게 부모중 한쪽을 선택하게 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는 가난하긴 하지만 엄연히 나무를 해서 파는 그런 나무꾼이라고 하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 엄마가 두 애를 하늘로 데리고 가면 키울 수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리고 애엄마는 하늘 출신이라지만 애들은 엄밀히 말하면 천인과 인간의 혼혈인데 어떤 인종차별을 받을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하늘나라에 우리 애들의 입국이 거부되어 중음계 난민촌에 임시수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듯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없이 우리 가족의 평화를 무너뜨린 그 여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소중한 애들을 되찾겠다는 결심을 했죠.
그런데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문득 처음 선녀들의 강림을 알려준 그 사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사슴을 수소문하여 결국은 만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를 재회하게 된 사슴은 놀라서 눈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애써 진정하며 먼저 인사를 하더군요.
“나무꾼님! 이게 몇 년 만이오? 어째 표정이 안 좋군요?”
난 그간 내가 겪었던 최고의 행복과 지독한 불행에 대해 사슴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참, 인간이란...복을 줘도 그걸 챙기지 못하고 걷어 찬다니까…”
나는 사슴의 남은 한쪽 뿔을 거머쥐고 물었습니다.
“자, 긴말하지 말자. 그 선녀가 산다는 하늘에 올라가는 방법을 알려다오. 안 알려주면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왜 일개 사슴인 내가 그런 방도를 알거라 생각하오?”
“그래도 넌 선녀들이 언제 어디로 오락가락 한다는 것을 내게 알려줬지 않냐! 그리고 내가 또 누구에게 이 일을 묻겠나? 사냥꾼에게? 이 이상한 운명 속으로 날 밀어 넣은 니가 방법을 대야지!”
“당신이 그 선녀 옷을 숨기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하늘에 파다하게 소문이 퍼졌소. 그 이후로 선녀들은 일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선녀들이 목욕을 지상에서는 안한다고?”
“하지만 이곳 선녀탕의 물맛은 놓칠 수 없었나 봅니다. 매월 보름날 두레박만 보내서 그 물을 길어간답니다.”
“오호?!”
“어떡하려고요?”
“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번 오른 나무는 절대로 놓치지 않지! 하늘 끝까지 쫓아갈 거다.”
드디어 보름날이 다가왔습니다. 난 어머니께 반드시 가족을 데리고 돌아오겠노라고 약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손을 저었죠.
“하늘에 이르러 네 가족을 만나거든 돌아올 생각 말고 거기 정 붙이고 살아라! 내 생각 따윈 말고.”
“그래도 어머니를 어찌 홀로 버려두겠습니까?”
“지상에서 하늘로 가면 승천이지만 하늘에서 지상으로 오는 건 추락이다. 아주 바보짓이지.”
난 일단 고개 숙여 인사 드리고 연못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달빛 아래 너울너울 내려오는 무선 두레박 중 하나에 몸을 숨겼지요. 그리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라는 이 한마디 속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여러분이 아실까요?
제 몸은 하늘의 청량한 기운 속으로 진입하면서 와들와들 떨려왔습니다. 그건 추워서 떤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탁한 것들을 털어내는 진동과 같았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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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를 금빛 새들이 오가며 아름다운 음으로 노래하는데 그것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난 그들보다도 탁하고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난 천국에서 살라고 해도 못 살 것 같아.’
그 생각을 하고나서 저는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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