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큰스님들에게 배우는 마음 챙김의 지혜100

in krkrsuccess •  last year  (edited)

1000013435.jpg
참 자아는 생각의로는 꿰뚫어 알 수 없다

사실 눈치 빠른 상근기라면 만공스님께서 모든 것을 내
려놓고 '침묵'에 드셨을 때 모든 일을 마쳤어야 옳다. 그런데
도 중생들이 번뇌 • 망상을 끊지 못하고 괴로워하기에, 만공
스님께서 더욱더 친절한 설법을 펴시기 위하여, 주장자를 높
이 치켜드시고 법상을 큰 소리가 나도록 3번 치신 것이다.
'탕!' • '탕!' • '탕!'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요상한 퍼포먼스로
도 비칠 수 있는 이 행위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
고자 함인가?
1000013482.jpg
만공스님의 말씀에 이미 답이 있다. 우리의 '참 자아' 자리는
'생각'을 떠난 자리이기에, '마음 있음'(有心)으로도, '마음 없
음'(無心)으로도 그 자리를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이 있다"
고 함도 생각이요, "마음이 없다"고 함도 생각이기 때문이다.
'참 자아' 자리에는 '마음'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고, '있다
. 없다'는 개념도 붙일 수 없다. 오직 "존재할 뿐이다!" 그 자
리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생각을 내려놓을 뿐이다!

이것도 '말'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라, 혹시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킬까 염려하시어, 만공스님께서는 몸으로 힌트를 던져주
셨다. 그것이 바로 '탕!' • '탕!' • '탕!'의 참 의미다. '탕!'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일체의 번뇌 • 망상 없이 그 소리를 듣
고 있는 그 자리에 과연 '나 • 나의 것'에 집착하는 '에고'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대가 아무런 잡념 없이, '나 • 남'의 구별 없이, '안다 • 모른
다'의 개념을 버려두고 턱하고 그냥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
는 순간, 그대는 잠깐이었을지언정 그대의 '참 모습'으로 존
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친질한 법문이가? 이래도
모르겠는가? '탕!' • '탕!' • '탕!'
1000013481.jpg

1000013721.jpg
세상 모든 생명 모두가
평안하십시오
()()()

2024년2월5일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