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아는 생각의로는 꿰뚫어 알 수 없다
사실 눈치 빠른 상근기라면 만공스님께서 모든 것을 내
려놓고 '침묵'에 드셨을 때 모든 일을 마쳤어야 옳다. 그런데
도 중생들이 번뇌 • 망상을 끊지 못하고 괴로워하기에, 만공
스님께서 더욱더 친절한 설법을 펴시기 위하여, 주장자를 높
이 치켜드시고 법상을 큰 소리가 나도록 3번 치신 것이다.
'탕!' • '탕!' • '탕!'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요상한 퍼포먼스로
도 비칠 수 있는 이 행위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
고자 함인가?
만공스님의 말씀에 이미 답이 있다. 우리의 '참 자아' 자리는
'생각'을 떠난 자리이기에, '마음 있음'(有心)으로도, '마음 없
음'(無心)으로도 그 자리를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이 있다"
고 함도 생각이요, "마음이 없다"고 함도 생각이기 때문이다.
'참 자아' 자리에는 '마음'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고, '있다
. 없다'는 개념도 붙일 수 없다. 오직 "존재할 뿐이다!" 그 자
리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생각을 내려놓을 뿐이다!
이것도 '말'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라, 혹시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킬까 염려하시어, 만공스님께서는 몸으로 힌트를 던져주
셨다. 그것이 바로 '탕!' • '탕!' • '탕!'의 참 의미다. '탕!'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일체의 번뇌 • 망상 없이 그 소리를 듣
고 있는 그 자리에 과연 '나 • 나의 것'에 집착하는 '에고'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대가 아무런 잡념 없이, '나 • 남'의 구별 없이, '안다 • 모른
다'의 개념을 버려두고 턱하고 그냥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
는 순간, 그대는 잠깐이었을지언정 그대의 '참 모습'으로 존
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친질한 법문이가? 이래도
모르겠는가? '탕!' • '탕!' • '탕!'
세상 모든 생명 모두가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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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2월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