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 딸이라네.”
주봉진이 언뜻 그 소녀를 본 다음, 마음속에 춘심이 호탕하게 일어났다. 다시 꽃숲을 돌아보며 눈빛을 좌우로 흘렸다. 그 소녀 얼굴이 반쯤 보이더니, 언뜻 몸 전체가 보였다. 눈길을 건네며 감정을 천천히 따라 보냈다. 소녀가 잰걸음으로 내당에 들어가자 풍기던 향기가 끊기고 아득히 그림자조차 없었다. 이때 임부인이 술과 안주를 갖춰 주봉진을 대접했다. 주봉진은 술을 몇 잔 들이켜자 흥취가 일어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벽 위쪽을 보니 붉은 종이 수 폭이 걸렸다. 주봉진이 물었다.
“이것은 부인께서 쓰시는 것인가요?”
임부인이 말했다.
“이것들은 주인집 딸이 때때로 이곳에 와 시를 쓸 때 쓰는 종이라네. 지금 여러 장 남았을 게야.”
주봉진이 기쁨을 이기지 못해, 붓과 벼루를 청해 붉은 종이를 핀 다음 시 한 수를 적었다. 이로써 애틋한 감정을 빗댔다. 그 시는 이렇다.
길 따라 봉래산 정상에 오르니,
부용화 한 송이 사람을 보고 피었네.
이 몸은 향기 훔치는 나비 되리다,
꽃 수풀 속에서 하루 백 번 날아다니겠소.
잠시 뒤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주봉진이 인사를 드리고 자기 침실로 갔다. 달빛이 휘황하고 꽃향기가 코를 찔러 황홀했다. 이에 스스로 말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으뜸가는 일이란, 성현을 섬겨 그 덕과 언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버금가는 일은 문장을 닦아 바른 도를 지키고 오로지 매진하는 것이다. 그 밖에 임금님에서 서인까지 모두 즐기고 욕망하는 것은 바로 미녀뿐이다. 지금 생에 어찌 그 여인을 얻어 나를 곁에서 모시게 할 수 있을까?”
주봉진은 노래를 불렀다.
둥글고 곱고 고운 은그릇 같은 얼굴,
맑고 차디찬 살구 같은 눈동자,
곧고 오똑오똑한 옥 같은 코,
가늘고 굽이진 먼 산 같은 눈썹,
아리땁고 생기 있는 복사꽃 같은 뺨,
흔들리고 휘청이는 버드나무 같은 표정,
매끄럽고 함치르르한 먹구름 같은 머리카락,
깨끗하고 밝은 흰 살촉 같은 귀,
향기롭고 그윽한 앵두 같은 입,
작고 섬세한 봄 파 같은 손,
붉고 주름진 석류 같은 치마,
부드럽고 풍성한 비단결 같은 허리띠,
한 줌이 될 듯 버들 같은 허리,
반쯤 드러난 금빛 연꽃 같은 발이어라.
저 미인은 천 가지 어여쁨을 갖췄고 만 가지 아름다움이 있어 어떤 어머니가 저렇게 낳았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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