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흥은 딸 손소저를 불렀다. 면전에 대고 크게 꾸짖었다.
“너와 주봉진이 정분이 났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냐?”
손소저가 얼굴을 붉힌 채 눈썹을 낮추고 말없이 오래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임부인이 있는 곳에 갔다가, 마침 들어오던 주봉진과 마주쳤습니다. 저는 꽃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봉진이 제가 쓰는 붉은 종이에 자기 감정을 시로 쓰기는 했습니다만, 이 외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곁에 있던 시비에게 물어보시지요. 제가 숨기는 게 없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손만흥이 시종을 시켜 임부인 방으로 가 주봉진이 책 사이에 끼워뒀던 붉은 종이를 가져왔다. 펴보니 시가 한 수 쓰여 있었다. 그 시는 이렇다.
길 따라 봉래산 정상에 오르니,
부용화 한 송이 사람을 보고 피었네.
이 몸은 향기 훔치는 나비 되리다,
꽃 수풀 속에서 하루 백 번 날아다니겠소.
손만흥이 시를 다 본 다음 손소저에게 돌아가 쉬라고 했다. 주위 시중드는 사람을 모두 내보낸 뒤 손만흥이 아내 이씨에게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이득이 될까?”
이씨가 말했다.
“황시랑이 남긴 아들 황극은 뒷날 우환이 될 게 틀림없어요. 또 말을 들어보니 주봉진과 황극은 의형제 사이고 말이에요. 지금 만약 주봉진을 사위로 들이고 임씨를 잘 모시게 하면 다른 날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쳐도 원수가 되지는 않겠지요. 내가 주봉진 됨됨이를 보니 얼굴 길이가 3척에 기상이 아주 탁월하고 능력도 출중한 게 보통 인물이 아니더라고요. 세상을 널리 뒤져도 얻지 못할 인재에요. 내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다른 말 말아요.”
손만흥이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이 이치에 맞기는 맞아.”
손만흥은 즉시 주봉진을 불러들였다. 주봉진은 병이 났다고 하며 오지 않았다. 손만흥은 두세 차례 주봉진을 다시 불렀다. 주봉진은 끝내 오지 않았다. 손만흥이 화가 나서 말했다.
“하 이놈 보게. 이 몸이 좋은 뜻으로 부르는데 번번이 거절해? 따로 처리해야겠구먼.”
손만흥은 즉시 처남 이홍석을 불러 일처리를 의논했다. 이홍석이 말했다.
“지금 비록 주봉진을 사위로 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녀석은 한 여자에 연연할 인물이 아닙니다. 황극과 함께 복수하려는 마음을 조금 늦출 수는 있겠지요. 마땅히 계택을 세워서 주봉진을 불러들인 다음 단칼에 죽이고 임씨 여편네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게 이른바 풀을 뽑되 다시 싹이 나지 못하도록 뿌리까지 없앤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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