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 경판본 현대어역(8)

in krsuccess •  3 years ago 

“맑은 물인가, 흙탕물인가. 부처님 계시는 맑은 세상은 여신(女神)께서 노니소서. 밤은 다섯 날, 낮은 일곱 날, 유리[????] 여섯, 사십 명 용왕, 팔만 명 황제 이곳에서 노니소서. 내 집을 지키는 신은 기와집 신이요, 네 집 지키는 신은 초가집 신이라. 집마다 망태기 신, 오두막 신, 가택 신은 오셔서 계절마다 노니소서. 17살 어린 신, 27살 어른 신, 57살 늙은 신 세 분 성주가 노니소서.”

또 다른 무당이 말했다.

“신당에 사는 뻐꾸기야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속 빈 마른 나무에 새잎 나라고 우는구나. 새잎이 시든 자리에 진짜 잎이 나겠구나. 혼령이구나, 혼령이야. 버드나무 우거진 산에 한 해 마지막 날이 왔구나. 영영 세상과 이별하니 정해진 운명이 없는 길이로다. 첫째 부처님, 둘째 부처님, 모든 부처님, 내 몸에 내리신 벼락신이시여.”

또 다른 무당이 말했다.

“바람이 부는구나! 달나라의 달이로구나. 태양의 아내이신 달의 여신이시여, 제물을 받으시고 내려오소서. 하루는 열두 시간, 한 달은 30일, 1년은 12달, 윤년은 13달, 모든 일을 도와주시는 안광당, 국수당 여신, 개성 땅 덕물산 최영 장군의 아내 신, 왕십리 아기씨당 여신, 고개마다 다스리시는 성황당 여신은 제물을 받고 내려오소서.”

무당들이 저마다 이렇게 말했다. 놀부가 이 모습을 보고 술 먹은 고양이처럼 정신을 못차렸다. 무당들이 장구통으로 놀부의 가슴과 배를 때리며 난장판을 벌였다. 놀부가 울면서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 죽읍시다.”

무당들이 말했다.

“다른 죄는 없다. 우리가 기도한 값을 내되 한 푼이라도 남고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5000냥만 내놔라!”

놀부 어쩔 수 없이 5000냥을 준 후 이렇게 생각했다.

‘박을 갈라서 좋은 게 나오면 좋은 것이고 나쁜 게 나오면 그만두자.’

놀부가 한 통을 가르며 언청이한테 당부했다.

“이전에 갈랐던 박은 다 엉터리였다. 옳고 그름을 따질 사람도 이제 없으니 어서 톱질을 시작하자.”

언청이가 말했다.

“어허 또 사고가 생기면 누구에게 떼를 쓰려고 하는 것이냐? 우스운 소리 말고 복 있는 사람이랑 톱질하거라.”

놀부가 말했다.

“이 못난 놈아. 내가 이렇게 맹세했잖아. 만일 내가 다른 말을 하거든 내 뺨을 개 때리듯 때려라.”

놀부가 우선 열 냥을 주었다. 언청이는 그제야 할 마음이 생겼다. 언청이는 작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와 손을 씻은 다음 박에 톱질했다. 놀부는 반만 가르게 한 다음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고 틈으로 눈알이 쏟아지도록 봤다. 박 속에서 금빛이 빛났다. 놀부가 금빛을 보고서 일이 되어가는 형편이 좋다고 생각해 아는 체하며 말했다.

“이 언청이야. 저 금빛이 보이느냐? 이번에는 완전히 황금이 가득 들었을 것이다. 어서 갈라 보자.”

이렇게 말하고 ‘자꾸자꾸 톱질하세.’라고 노래하며 박을 갈랐다. 쫙 가르고 보니 등에 짐을 진 장사꾼이 멈추지 않고 자꾸자꾸 나왔다. 놀부가 놀라서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비추는 것이오.”
“비추는 것이라 하니 손거울이냐 유리거울이냐, 천리를 비추는 천리(千里) 망원경이냐, 만리(萬里)를 비추는 만리 망원경이냐? 도대체 무엇이냐?”

“들여다보면 정신이 어질어질한 요지경이오. 얼씨구 절씨구 신선이 노니는 연못인 요지에서 열린 잔치를 둘러보소, <숙향전> 속 이선의 짝 숙향, 당나라 현종의 짝 양귀비, 항우의 짝 우미인, 여포의 짝 초선 다 있소. 어디 그뿐인가? 양소유의 짝 여덟 미인도 있소. 난양공주, 진채봉, 정경패, 가춘운, 심요연, 백능하, 계섬월, 적경홍 다 둘러보소.”

이렇게 말하며 집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놀부는 어쩔 수 없이 돈 500냥을 줘서 내보냈다. 또 박 한 통을 갈랐다. 1000명도 넘는 초라니[화회 별신굿에 나오는 양반의 하인]가 한꺼번에 달려 나와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바람아, 바람아. 이른 봄에 부는 찬 바람이 우리를 불렀는가, 동남풍이 우리를 불렀는가? 대자로 끝나는 말을 하여보자. 하나라 걸왕(桀王)의 보석 궁궐과 누대, 애첩인 달기와 희롱하던 주왕(紂王)의 녹대(鹿臺), 멀고 먼 봉황대, 보기 좋은 고소대, 만세무궁 춘장대, 궁궐을 지키는 금군이 머무는 오마대, 한무제의 백양대, 조조(曹操)의 동작대, 천대(千代), 만대(萬代), 저기 있는 대, 여기 있는 대, 온갖 대라. 열매가 익은 줄기도 대[줄기]로구나. 긴 대[줄기]야.”

한꺼번에 내달으며 놀부에게 달려들었다. 초라니들이 놀부의 덜미를 잡아 쓰러트렸다. 놀부가 거꾸로 고꾸라지며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초라니 형님들. 도대체 왜 이러시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두들겨 병신 만들지 말고 말로 하시오. 말씀만 하시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놀부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초라니가 말했다.

“이놈아! 목숨이 귀하냐? 돈이 귀하냐? 네 목숨을 보전하려거든 돈 5000냥만 내어라.”

놀부가 생각했다.

‘이번 박은 도무지 틀렸다. 말을 듣지 않고 돈을 안 주려고 생떼를 써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놀부가 5000냥을 주며 말했다.

“앞으로 탈 박에 무엇이 들었는지 혹시 알면 알려주시오.”

“우리는 다른 박은 잘 모르겠으나, 어느 박인지 몰라도 분명히 금이 들었을 것이니 갈라 봐라.”

이렇게 말하더니 초라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놀부가 초라니의 말을 들으니, 참을 수 없는 욕심이 솟아올랐다. 달려가서 박 한 통을 따와서 언청이에게 톱질을 시켰다. 언청이가 위로하는 척하고 말했다.

“이 사람아,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네. 다음에 타는 박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돈을 들이면서 두들겨 맞는 자네 모습을 보니 내가 차마 더는 톱질을 못 하겠네. 오늘은 그만하고 4ㆍ5일 뒤에나 다시 갈라 보세.”

놀부가 말했다.

“아무렴 그럴 테지. 아직 돈이 남았네. 두들겨 맞으면 맞는 게지.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 마저 갈라 보세.”

언청이가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각오했으니 내가 더는 말리지 못하겠네. 하여간 이번에 박 가르는 값도 먼저 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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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과 쪽박이 여기에서 나온 모양입니다. ㅎㅎ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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