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이야기 23.

in krsuccess •  3 months ago  (edited)

공원 산책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걷기 전용길이라 자동차,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는 다닐 수 없는 길이다. 자전거도 타면 안 된다.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길바닥에는 곳곳에 ‘우측통행’이라는 글자가 페인트로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여름 햇빛이 너무 ‘강력’해서 우산을 쓰고 걸었다.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건 적어야 한다. 길을 걷다가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한 손으로 메모하기 시작했다. 우측통행으로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길 오른편 끝에 바짝 붙어 섰다. 다행히 길에 사람들이 드물었다.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길이 좁지 않아서 내 왼편에 사람 세 명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넉넉했다.

메모를 하던 중, 앞쪽에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좌측보행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었지만 휴대폰에 코를 콕 박고 걸어오지는 않고 나름 앞을 주시하며 걷는다. 길에는 그녀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앞서 말했듯 내 왼편에 비어 있는 공간은 넉넉하다.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다시 메모에 집중했다.

순간, 그녀가 내 옆을 스치듯 걷다가 내가 들고 있는 우산살 끝 부분에 이마를 꽁 박고 지나갔다. 우산을 들고 있던 왼손에 고스란히 그 충격이 전해졌다. ‘어, 좀 아팠겠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려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없이 가던 길을 걸어갔다. 아팠을 텐데. 아마도 가만히 서 있던 나를 본인이 치고 갔기 때문에 고통을 참고 그냥 걸어간 것 같다. 음. 이건 무슨 상황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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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문득 궁금해져서 자료를 뒤져보았다. ‘우측통행’이 아예 법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도로교통법 제8조 4항>
④ 보행자는 보도에서는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한다. <개정 2021. 10. 19.>

단, ‘원칙’ 일뿐 처벌 규정은 없다. 그리고 ‘보도’, 즉 인도나 지하철 내부 등 걷기 전용으로 조성된 길에만 해당한다.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동네 골목길은 해당되지 않는다. (따로 법조항이 있다) 그런 길은 변수가 많아서 좌측통행이 더 안전한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굳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사람이 앞에 오면 서로 공간을 내주면서 피해 주는 것이 공동체의 매너일 것이다. 우측통행이 ‘원칙’이라는 용어로 법에 표기되었으니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자동차나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피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우측으로 서로 피해 주는 것이 헷갈리지도 않고 편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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