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수인 2. - ‘되기를’

in krsuccess •  5 days ago  (edited)

수인은 무력한 자신이 바뀌기를 바랐다. 남들에게 똑똑하게 보이고 싶었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화가가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떤 예술을 할지도 몰랐고 뭔가를 열렬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사놓은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듯 그냥 막연하게 ‘되기를’ 바랐다. 자신이 속물 같았다.

어느 날 문득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적어도 똑똑하게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수인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30분 이상 읽었다. 책 읽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육 개월이 지나면서 책 읽는 습관이 완전히 몸에 배었다.

십 년 동안 거의 천 권을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들에게 똑똑하게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모르는 것이 많아졌다. 이대로 이렇게 자신의 삶이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과 절망이, 원래부터 수인의 내면을 뒤덮고 있던 무력감 위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 철학, 심리학 책을 파고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더욱 커진 불안이 수인을 덮쳤다. 뭔가를 알게 된다는 건 모르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을 이해하게 될수록 인간들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수인은 십 년 전보다 더욱더 인간들을 피했고 자신감은 더 떨어졌고 더 무력감에 빠졌고 자신은 변화될 수 없다고 느꼈다. 수인은 여전히 하지 못했다. 수인은 여전히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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