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수인 1.

in krsuccess •  6 days ago  (edited)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더욱 아름답게 보존하고 싶은 미학적 열정 때문에.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수한 이기심 때문에.

딱하지만 이렇게 그럴싸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고 싶어서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싶어서다. 최대한 인간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집안에 콕 틀어박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아서다. 편집자나 마케팅 담당자를 만나야 하겠지만 가능하면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출퇴근 시간에 밖에 나가야 하는 끔찍한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과 맞닥뜨리는 건 고통이다. 나는 죽어서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곳이 지옥이다. 감옥이다. 나는 충분히 벌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내 이름은 수인이다.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대로 살고 있다.

인간들. 나를 감시하고 끊임없이 괴롭히며 벌주는 교도관들.

내 몸을 툭툭 치며 지나가는 인간. 고막을 찌르는 큰 소리로 가래 뱉는 인간. 아무도 없는 넓은 길에서 휴대폰에 코를 박고 굳이 한쪽에 바짝 붙어 걷는 내 앞으로 돌진하는 인간. 내리지도 않으면서 지하철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인간.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큰소리로 통화하고 떠드는 인간. 바로 내 앞을 걸어가며 담배 연기를 쏟아내는 인간. 새치기하고. 밀치고. 윽박지르고. 나를 고문하는 교도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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