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같은 영화

in krsuccess •  2 days ago  (edited)

<바그다드 카페>(1987) 퍼시 아들론 감독.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Calling You’라는 주제곡은 알고 있었다. 개봉 당시에는 이 노래가 밤늦은 시간의 라디오에서도, 가끔 들르던 카페나 술집에서도 자주 흘러나왔다. 음악 마니아였던 과 친구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나한테 이 노래를 들려주며 제베타 스틸의 목소리에 폭 빠져든 이유를 사뭇 장황하게 설명했다.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같이 <바그다드 카페 OST> 앨범을 들으며 싸구려 양주(아마도 캡틴 큐)를 홀짝거리고 침대 모서리에 기대어 그 나이 또래의 현학적인 대화를 나른하게 드문드문 나눴던 정경이 흑백의 목탄 스케치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Calling You’는 너무나도 멋지고 마법 같은 노래였다. 이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주변 공간에 퍼져 나가면 내 주위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습기를 잔뜩 빨아들인 솜뭉치처럼 몽환적인 쓸쓸함으로 푹 젖어드는 것 같았다.

그때는 막연하게 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바그다드 카페>가 <파리, 텍사스> 같은 어둡고 무거운 예술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 제목도 그랬고. ‘바그다드’와 ‘카페’라니. ‘파리’와 ‘텍사스’처럼 뭔가 생뚱맞은 조합이었다. 그리고 ‘Calling You’라는 이 멋진 노래가 자아내는 꿈같은 이미지도 나의 이런 막연한 판단에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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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감상.
보면서 행복해지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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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요즘처럼 분노하게 되는 (정당한 분노지만) 세상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맑은 물 같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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