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자식 보다 더 자식 같은 사람들 3

in krwrite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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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보다 더 자식 같은 사람들 3 @jjy

박면장은 오늘도 혼자 아침을 들고 설거지를 하고 주섬주섬
빨래를 널고 집안을 돌아보고 집을 나선다.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잠이 드는 생활이 올 해로 벌써
오년이 넘는 것 같다. 처음엔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점심내기
고스톱도 하고 남의 사무실에 들러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그도 시들했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집은 박면장의 조부께서 자리를 잡으시고
고생 끝에 땅마지기를 장만하시고 몇 해만에 지으신 집이었다.
그 터에서 아들 딸 낳아 장성하고 그 무릎에서 커나간 손주들이
스물이 넘는다고 좋아하셨던 집이다.

중학교 졸업하고 몇 해를 농사일 거들고 지내다
우연한 기회에 면사무소에 다니게 되었다.
독학을 하며 한학을 공부했던 박면장의 필체는
군청에서도 이름이 났다.

박봉이라고 해도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라 끝으로 두 동생들이
대학을 다니게 되자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형의 은혜를 잊으면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동생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렀다.

박면장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때 가족계획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장손으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에
미개인 소리를 들어가며 딸 둘을 낳고 정승판서 벼슬 보다 어렵다는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도 착실하게 성장을 했고 박면장도 나이가 들어 정년을 맞았다.
주위에서는 그 동안의 경력도 있고 하니 지자체 선거에 나가 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마다하고 조용히 살고 싶었고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싶은 꿈도 꿈으로 남았다.

혼자 지내는 생활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집안일은 하나 안하나 똑같았고 그도 싫증이 나고 심심하면
다방엘 갔다.

은영이는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이었다.
커피 한 잔 같이 마셔주면 몇 시간을 이런저런 말로
근심을 털어주고 어떤 때는 어깨도 주물러 주고
눈이 침침해 잘 안 된다고 안경도 닦아주고 손톱도 깎아주는 등
유흥업소에 있는 아가씨라고 해도 어찌나 살갑던지
같이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갔다.
입맛 없을 때 냉면이라도 같이 먹고
팥빙수 먹고 싶다고 어리광 부릴 때는 더 없이 귀여웠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내가 있는 요양원엘 가면
아내의 얼굴은 냉장고에서 오래 묵은 과일처럼 시들어가고
이제는 남편의 얼굴도 가물가물 한지 한 참을 빤히 처다 본 다음에야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런 아내를 두고 돌아온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덤덤한지 오래다.

혼자 불 꺼진 집으로 들어서는데 스마트폰이 울린다.
동생이 이번 일요일에 오겠다고 하는 말만 하고 먼저 끊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막내까지 합류해서 두 동생들이
침통한 얼굴을 하고 형 앞에 앉았다. 말인즉 형이 다방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낯 뜨거운 소문에 남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며
이제 그 정도 하셨으면 자식들 생각해서라도
아들 얼굴 깎이는 일 없이 조용히 사시라고 핀잔이다.

박면장은 꼭 하고 싶은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너희들 학교 다닐 때 새벽밥 해 먹이고
교복 빨아 입힌 형수 요양원 한 번 찾아가 봤느냐는 말은
그런 사람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서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갔다.
집과 남은 재산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다방 여종업원에게 마음이 갔다 해도
그 뼈아픈 외로움을 메워주는 사람은 자식도 아니고
부모대신 학비를 대준 형제도 아니었다.

엄마가 약장수에게 바가지를 쓰고 사들인 허접한 물건은
물건이 아니라 위로였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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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야... 결국은 조강지처에게
돌아갔다는 스토리인가요..? ㅋ

자기가 평생동락의 반려라는 사실도 모르는
그러나 곁을 지킬 사람도
마음을 줄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외로움은
그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그 심정을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 처지를 돌아보면 허튼 소리는 더더욱 할 수 없을테구요.
자신이 무슨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
무언가를 많이 말할수록 본인은 뿌듯하고 속시원할겁니다.
반대로 그것을 알면 알수록 입을 열기가 어려워집니다.
인생살이는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세월이 갈 수록 할 말은 줄어듭니다.
아니 줄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나온 삶이 진리가 아니었음에

말을 줄이고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가끔 입이 간지러워 짐을 느끼지만,
가볍게 물리치지요.
덕분에 분위기도 부드럽고
마음도 편해집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홀로되신 어머니와 친구분들께서 오전오후 약장사놀이학교 출퇴근 중이지만 그 고독한 하루를 메꾸시는 걸 뻔히 알기에
만류할 수 없죠. 그 허접한 물건은 "위로" 와 닿습니다^^

요즘 독거노인이 사회문제라고 하지만
함께 사시는 분들도 속마음까지 챙겨주는 자식은 없지요.
배우자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아줌마들의 수다나 관광버스 춤이나
결국은 같은 맥락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