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 전투) 8-6 화산 전투 이후

in leedaeyong •  5 years ago 
    1. 5 08:00 경 제1중대에게 식사와 실탄이 보급되었음. 제1중대 장병들은 43시간 굶은 끝에 밥을 먹을 수 있었음.
  1. 9.5 16:00시경 고지에 있는 제1중대에게 신병이 보충되고 화염방사기 하나가 배속되고, 이 화염 방사기에는 사수와 부사수가 따라왔음. 이날 적군은 북쪽 멀리서 장거리 기관옹 사격 또는 소총 사격을 간간히 해올 뿐, 아군을 공격해 오지는 않았음. 아군은 박격포 및 야포사격과 기관포 사격으로 이에 대항했음

50.9.6일도 전날과 같이 적군은 북쪽 멀리서 장거리 가관총 사격 또는 정찰대에 의한 소총 장거리 사격등을 제1중대 지역에 심심치 않게 가해올 뿐 별다른 공격은 없었음. 아군은 전날과 같이 야포, 박격포, 기관총 등으로 이에 응수했음. 이 날 우리 육군의 첫 현지 임관소위들이 제1대대에 부임해 왔으며 각 소총 중대에는 3명식의 현임 소위들이 소대장으로 보직되었음

50.9.7 15:00 시경 제7연대 제2대대가 화산지역으로 이동해 왔으며 제1대대는 828 고지 북방 무명고지 및 화산성 북단고지대 진지를 제2대대에게 인계하었음. 제2대대에게 진지를 인계한 제1중대는 동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2km 이동하여 배치되었으며, 제1중대 좌측에는 제2중대가 이동 배치되었음. 제1대대 OP는 제3중대 지역으로 이동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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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7 제2대대는 하산성 북단 고지대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적군의 무기를 수집하여 후방으로 수송하는 등의 전장정리를 하였음

50.9.7일부터 북진 반격작전이 시작되는 50. 9.16일까지 제1대대는 매일같이 수색대를 전방으로 내보내 적정을 살피면서 신병의 교육 및 중대휴식을 취하였음. 이 기간 중 제7연대 제2대대도 이렇다할 적과의 교전없이 날을 보냈음.

이대용 장군은 춘천전투와 신령 화산전투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두 전투모두 전사상 유례가 없는 교과서적인 내용이었다, 춘천전투는 파쇄공격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타격해서 공격을 지연시켰고 화산전투에서는 치열한 백병전을 치루었다, 이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김용배 중령이었다.

이대용 장군은 김용배 중령이 연대장으로 부임해서 얼마지나지 않아 전사하고 나자 나중에 전사기록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김용배 중령의 전공을 가로채는 것을 경험했다. 아마도 그래서 춘천전투와 신령전투를 특별히 자세하게 기록한 것 같다.

이대용 장군 생전에 만났을 때 신령의 화산전투에 대해서는 실제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제2대대가 나중에 전장 정리만 해놓고 자기들이 신령의 화산전투를 모두 다 치른 것 같이 이야기 하고 다녔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던 적이 있었다,

또한 춘천전투에서도 북한군의 진격을 결정적으로 저지한 것은 제1대대장 김용배 소령의 적의 의표를 찌른 파쇄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전투현장에서 도망갔던 심일 중위의 육탄공격 때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이대용 장군은 전장에서 전사한 김용배 중령과 의리를 지키고자 했는지 모른다. 평생 그는 김용배 중령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나 놀라운 것은 생사가 오가는 전투현장에서도 시간만 나면 기록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전사기록은 모두 시간날때마다 수첩에 기록했던 것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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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article @wisdmandjustice,interesting your works sir.

잘정리되어서 읽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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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남겨서 우리가 그현장을 경험하게되었네요. 감사하네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