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빈 잔

오래 알고 지내는 K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하고

항상 샤프하여 일마다 완벽하게 처리했다.

K선배 앞에서는 모두들 주눅이 들어

술자리, 식사자리를 같이 하자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자리를 멀리했다.

더욱이 잘난 테를 안내면

그래도 사람이 주변에 있을 텐데

기어이 테를 내어 주변을 불편하게 했다.

엉게덩게 사람들 하고 잘 지내는 H후배와는

이따끔 씩 자리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 날 선배는 그 후배를 붙잡고 하소연 하듯이

외롭다고 얘기하였다.

후배는 선배에게 빈 잔이 되라고 말을 했다.

선배는 빈 잔이 무얼 의미하느냐고 되물었다.

후배는 선배가 빈 잔처럼 비어있어야

사람들이 빈 잔을 채우려고

가까이 오는데 그렇지 않으니 외롭다고 말을 했다.

또 빈 잔을 채우 듯

허점있는 빈 구석을 메우는 역할이 있을 때

그들은 기뻐하면서 ‘내가 메꾸었지’라고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닌다고 선배에게 말을 했다.

후배는 선배에게

① 일부러 남들이 들어 올 수 있는

빈 구석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② 그들이 빈 구석을 메꾸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흔쾌히 받아주고

③ ‘내가 메꾸었지’하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껄껄거리며 환대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선배는 세 개 모두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선배는 가까운 후배 말은 잘 듣는 편이어서

조금씩 생활태도가 바뀌는 것 같았다.

요사이 몇 개월은 선배는 무얼 하는지 소식이 없었다.

6개월 쯤 지나 술집에서 후배는 선배를 우연히 만났다.

후배들이 앉은 자리는 두 세 테이블 건너 앉아서

선배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 화제가 되고 있는지 대충 알았다.

‘K, 이놈아, 똑똑한 줄 알았더니 헛똑똑이지 무어냐.

글쎄 나부러 oo를 모르겠다고 알아 봐 달라고 해서

내가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좀 알아 봐주었더니

나부러 고맙다고

오늘 술을 사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지.

오늘은 K가 사지만 나도 기여한 데가 있지.

안 그러냐?’

‘그럼, 맞아! 이것은 M이 안 도와주었으면

내가 혼자 그것을 할 수 없었지.

위에서도 잘 했다고 칭찬도 해서

내가 한 잔 산다고 했지.

다들 많이 먹으라구’

후배는 K 선배가 세가지 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역시 샤프한 선배라고 감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