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현대 인도의 요기-그리스도, 바바지
힌두교 경전 에서 '아바타라'는 신이 인간의 육신으로 하강한 상태를 말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영적 진보의 각 단계를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분류하고 있다.
싯다(완성된 존재)는 지반무크타(살아있으면서 자유를 얻은)의 단계부터
파라무크다(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죽음까지도 정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의 단계로 진보한 것이다.
후자의 단계는 마야의 속박과 생사의 윤회로부터 완벽히 탈출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파라무크타는 육체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다.
만일 파라무크타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는 천상의 축복을 이 지상에 전하기 위해 신성한 계획에 따라 선택된 중재자,
즉 화신 인 것이다.
화신의 형체는 얼핏보면 별로 특이한 점이 없지만,
필요에 따라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고 땅바닥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이런 특징은 어둠과 물질적 구속에서 벗어난
내부의 자유를 외부로 드러내는 상징적 증거이다.
위대한 예언자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별하고 장엄한 목적을 띠고 이 지상에 온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사명이 완수되는 대로 즉시 지상을 떠난다. ...
다른 화신들은, 역사상의 어떤 획기적인 사건보다는
여러 세기에 걸쳐 서서히 이뤄지는 인간의 진보와 관련된 일을 맡고 있다.
그는 바바지(존경하는 아버지)라는 단순한 이름을 선택했지만,
라히리 마하사야의 제자들이 바친 또 다른 존칭으로는
마하무니 바바지 마하라즈 (지고의 무아경에 든 스승), 마하요기(대요기),
트람바크 바바와 시바 바바(시바의 화신들이 갖는 호칭들) 등이 있다.
바바지가 여러 세기에 걸쳐 육신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모든 인류에게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오로지 뉘우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영적인 향상을 위해서
탈레스는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음을 가르쳐주었다.
그를 비난하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죽지 않습니까?"
탈레스가 대답했다. "별차이가 없기 때문이오."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는 무형의 영혼이다.
강제적인, 혹은 업력에 의한 육화는 곧 무지(아비댜)의 결과이다. ...
삶과 죽음은 오직 상대성의 세계 안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