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니? 좋니!!
좋니의 성공을 '월간 윤종신' 등 윤종신 사단이 그동안 취해 온 경영전략의 결과로 해석하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일례로 아래 티타임즈의 뉴스를 보면, 월간 윤종신, 투게더 어쩌고 등 여튼 윤종신이 그동안 취해온 음원 발매 방식이 좋니의 성공 원인이라고 말하는데,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월간 윤종신 음원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건 크게 보아 좋니, 말꼬리, 오르막길 등이 있는데 좋니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곡은 '지각흥행'이라고 불릴만큼 뒤늦게 흥했다. 좋니는 6월 말에 나와 지금 흥하고 있으니 약 2달 뒤에 뜬 거다. 위의 두 곡과 함께 붙여 말하긴 좀 어렵다.
사실 윤종신 사단의 결과가 항상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다. 일례로 모든 가수가 색깔을 잃고 '미스틱화' 혹은 '윤종신화'된다는 점이 걸림돌이 된 적도 있다. 박지윤, 퓨어킴 등 말이다.
윤종신의 콘텐츠 운영전략보단, 윤종신의 제작 전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윤종신, 김훈, 마루야마 겐지의 공통점
윤종신과 김훈 그리고 마루야마 겐지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놀고 있다. 윤종신은 MC이자 가수고, 김훈은 소설 작가고 마루야마 겐지도 작가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들은 매우 정기적으로 작업물을 제작 및 배포한다는 점이다.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이라는 자기 고문 프로젝트를 통해 매월 음원을 꾸준히 발매하고 있고, 김훈과 마루야마 겐지는 매일매일 일정량의 글을 쓴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훈 인터뷰 : [강연] 작가 김훈 "나는 왜 쓰는가"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셋 모두 "독자 조까.." 이런 마인드가 있다는 점. 겐지는 문학을 스스로와의 싸움이며 궁극의 작품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고, 김훈도 모든 글쓰기를 본인에서 출발한다. 윤종신도 최근 인터뷰에서 대중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종신 인터뷰 : 27년차 그가 사는 법… "크리에이터는 읽히면 죽지요"
이 점에서 셋의 공통점은 1) 존나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만든다 2) 대중? 뭐.. 그까이꺼.. 일단 내가 먼저 리드한다, 드루와!
ㅎㅎ; 이정도 마인드.
셋의 공통점에서 추출한 결과는 하나다. 매우 정기적으로,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 치열히 고민해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 이를 통해 본인의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윤종신의 세계관은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비슷할지언정' 전혀 좁지 않다. 점점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연애 초기의 기쁨을 이야기하던 윤종신에서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윤종신이 됐다. 물론 음악적 스펙트럼은 내가 음알못이라 패쓰.
김훈의 문체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고다이 마초고(최근 생리 논란 역시 이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겐지 할배도 책의 제목을 "난 길들지 않는다"로 지을만큼 야수다. 윤종신 역시 매한가지. 본인의 성향이 너무 강해 본인의 페르소나를 찾으면 대박인데 (박재정), 아니면 흠좀무 (지윤이 누나, 어킴이 누나)다. 비슷한 캐릭터로 '토이' 유희열이 있다.
공감의 세계관, 그 오묘한 아름다움
윤종신의 가장 큰 무기는 무엇보다 솔직함이다. 타블로 같은 경우 문학집을 낼 정도로 문학적 표현에 집중하고, 김이나는 캐릭터에 집중한다. 윤종신의 가사는 솔직하다. 그리 문학적이지도 않고, 제3의 캐릭터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윤종신은 듣는 이가 '한번쯤 겪을법한 상황'을 가사로 만들어낸다. 대개, 이런 가사를 쓴 노래가 성공했다.
예를 들어 김연우가 부른 '이별택시'는 헤어진 다음에 택시 안에서 펑펑 우는 - 누구나 겪었을 법하지만 공유하고 싶지 않은 그 찌질한 상황 - 자체를 그려낸다. '환생'은 연애 초기 혹은 신혼이라면 공감할 만한 가사고, '오래전 그날'과 '너의 결혼식'마저 다 공감할 법한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남자 화자를 상정하기 때문에 여자 청자들은 "???" 할 수도 있는데, 정서 자체가 아예 유리되어 있진 않다. 아재라면 기억할 법한 'Annie'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1월부터 6월까지는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남긴 댓글로 뮤직비디오를 새로 만들었다.
후기 윤종신의 대표격인 '너에게 간다' 역시 헤어진 연인을 다시 보러 가는 두근반세근반 하는 느낌을 표현했고, 내일 할 일과 동네 한 바퀴 역시 마찬가지. 90년대 초중반 락발라드와 버즈와 슴가워너비 류의 가사가 "너어어어를 만나지 ㅇ낳아서 서서서서서 워어어엉 하늘은 왜 너어어어어어를 데려가~~~~"(대개 뮤직비디오 결말은 시한부 여친의 죽음이나 조직의 복수로 인해 남자가 죽는다. 존나 치안강국 대한민국 어디 감?)
이렇게 허세덩어리라면, 윤종신의 가사는 찌질하고, 솔직하고, 공감할 만하다. 애스크드, 다음 카페 익명 댓글 아니면 쓰지 않을 법한, 네이트 판이라든지 친구들과의 카톡방이나 아니면 술자리에서 취해서 흑역사를 꺼낼 때 아니면 말하지 않을 법한 그런 상황을 생생히 묘사한다.
좋니도 뭐 헤어진 여친이 새 사랑 만날 때 좋냐 ㅠㅠ 시발 ㅠㅠ 난 이렇게 아픈데 ㅠㅠ 시발 망해라!!! 인생!! 저주!!! 시발것!! 앙어란ㅁ이ㅓㄹ아ㅣ넘ㅇ리넝리ㅏㅓㅇㄹ니ㅏㅇ먼ㄹ
이런 거 아니냐.
공감대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공감대일 거다. 사회-경제적 기반이 윗세대와 너무 달라지고, 아랫 세대 역시 '저출산'이라는 우리와 다른 변수를 맞이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낀세대' 혹은 '망한 세대' 혹은 '완불' 등으로 불리는데, 이러니까 윗세대와 아래세대 등 수직적 대화보단 수평적 대화를 선호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조언이나 이야기에 "아니 시발 그때는 그거고 지금 아니잖아 시발 새ㅉ갲기드라!" 는 말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치인트와 같은 신데렐라류 콘텐츠나 우결의 말도 안되는 환상이나 도끼와 제이팍의 머니스웩이 부럽긴 한데, 보다보면 뭔가 허하다. 우리 이야기가 아니거든. 연플리나, 전짝시는 흠. 물론 연애는 제 이야기도 아닙니다만 주륵.
막상 이렇게 찌질한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기엔 좀 그렇다. 왠지 약해보이거든. 당장 취준이든 뭐든 남들도 하기 바쁜데 이렇게 혼자 찌질해지면 너무 루저되는 기분이니까 대나무숲에 징징댄다. 마찬가지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해"라는 치기 어린 찌질함과 "아 시발 인생 좆됐나.."싶은 불안과 "시발 나만 이런 거야?!" 라는 적당한 외로움까지 이해하면 윤종신이 왜 먹히는지 안다.
"야 너만큼 찌질한 경험 나도 있오..."라고 조용히 옆구리를 찌르고 "ㄱㅊㄱㅊ 아직 인생 길고 찌질해질 일도 많다" 고 위로 아닌 위로도 해주고, "너만 그런 거 아님 ㅎㅎ 나도 같이 ㅠ " 이렇게 짠내나게 위로한다.
이 코드로 윤종신의 콘텐츠를 읽어보자.
그동안 1) 정기적으로 구축해온 2) 자기만의 세계관 (여기선 찌질함과 솔직함) 으로 3) 공감대를 형성하니 다시금 재평가 받는 거다.
사실 화려한 파티보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게 요즘 콘텐츠의 흐름이다. 딩고가 만든 "연예인이 뭐 해준다면-"류도 일반인에게 있을 법한 일에 연예인이라는 환상 1그람을 끼얹고, 브이앱이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다양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다.
이런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선호한다는 것이 증명된 사람들에게 윤종신 노래가 안 먹힐 리가 없다.
아니, 근데 왜 지금요?
"아니 그동안 이런 노래 많았는데 왜 윤종신 것만?! 아니 심지어 왜 좋니만?!" 이란 질문에 대해 대답하자면, 뭐 세로 라이브 빨이 아닐까 싶다.
세로 라이브 자체가 모바일에서 공유되기 쉬운 형태고, 퍼블리셔도 딩고에다가, 커뮤니티에서 누구나 댓글을 쓸 법한 콘텐츠다. "나도 저런 경험 ㅠㅠ" "종신..하.." 뭐 등등.
다시 말하자면 1) 사람들이 모여있는 플랫폼에서 보기 좋은, 공유하기 쉬운 형태 2) 콘텐츠 내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하다못해 '나만 보기'로 공유할 법한 3) 지하철, 버스에서 혼자 집에 가며 보기도 편한 콘텐츠니까 흥한 거다.
만약에, 세로 라이브가 아니었다면... 안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사가 윤종신에 대하여
글쓰기에 왕후장상이 있는 게 아니지만, 대개 문학가를 글쓰기에 최고봉에 세워두는 게 조선식 예절이다. 하지만, 난 윤종신과 싸이가 글을 가장 잘 쓴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가사를 보면 누구보다 솔직하다. "이거 진짜 자기 경험 아니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야 시발 이거 부인이 들으면 뚝배기 각인데?" 라는 생각도 든다.
그정도로 솔직하게 쓴다. 본인이 겪은 사랑이 아니면, 본인의 일화가 아니면 쓰지 못할 정도로 솔직하고 묘사가 생생하다. 싸이가 신나게 놀았던 양아치의 가사라면, 윤종신의 가사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찌질한 감성 그 자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스스로를 수십번씩 들었다놨다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참 대단하다. 일을 하고, 나이를 먹고, 카메라 앞에 서다보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노홍철도 무한도전 300회 쉼표 특집에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방송에서 보이는 캐릭터에 너무나 동화되어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윤종신의 솔직한 가사는 방송인으로서 만들어야 할 페르소나, 그 페르소나를 마주하면 겪는 수많은 갈등을 해쳐낸 결과다. 스스로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넓혀내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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